폭넓은 소통과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창작 노동의 대가기준 마련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미술, 시각예술 분야에서 예술가 개인에게 밥벌이의 부담을 전가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이들의 작업 자체를 노동으로 바라보고, 창작 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의 요구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를 통해 예술가의 창작 작업이 경제 활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미술 생태계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창작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 그 대가를 받아야 할 예술가들이 정작 이런 논의가 진행 중인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가기준을 논의하려면 시각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폭넓게 소통해야 한다. 또한 대가기준에 대한 내용도 현 시점에서 이야기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해지고 구체화돼야 한다.
미술작가의 창작 활동에 대한 아티스트 피 제도가 공공미술 전시나 행사에 도입될 것이란 이야기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회자된 바 있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유야무야된 것 같더니 지난해 9월 초 언론을 통해 국공립미술관 5곳이 이 제도를 시범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며 의아해했다.
지난 6월 2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미술창작 대가기준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홍태림 미술평론가는 “정책 당사자인 예술인을 꾸준히 소외시켜왔으며, 지금도 시각예술 분야 대다수 예술인은 아티스트 피가 어떤 기준을 근거로 작동하는지 모른다. 아티스트 피가 추진되는 과정을 시각예술인과 폭넓게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시범운영했다는 ‘작가보수제’를 개편한 ‘미술창작 대가’ 기준안이 소개됐다. 창작 대가 항목을 기존보다 확대해, 작가들에게 인건비 성격의 용역 대가와 함께 신작과 구작, 사후 출품작까지 저작권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용역 대가를 통해서는 4대 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조치를 적용할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의 용역 대가를 과거 전시 횟수와 함께 전시 장소(등록미술관, 미등록미술관, 국내전, 국제전)와 성격(개인전, 단체전)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는 내용도 나왔다. 예를 들어, 등록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작가는 해당 전시 횟수를 1회로 인정받는 데 반해, 미등록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은 0.5회로 책정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작가들은 창작 대가기준 마련 자체는 환영하지만, 등급별로 작가들을 구분해 인건비를 계산하는 방식이 예술가 그룹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비제도권 작가들의 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출했다. 소위 잘나가는 작가에게 더 많은 인건비를 보장하고, 신진작가나 대안전시 등 비제도권 내에서 활동하는 작가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판단이다. 이는 곧 미술 생태계의 다양성에 반하는 처우이기도 하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창작 활동과 관련한 계약이 아직도 낯설다. 외국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전시 관련 인터뷰나 작가와의 대화 등 작은 활동조차 계약이 일상화돼 있다. 이 토론회에서 작가들은 창작 대가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관련 제도들이 안착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창작 대가 기준안에서, 대가 지급 대상은 비단 작가만이 아니었다. 큐레이터와 평론가 역시 전시기획과 미술평론이란 창작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이 마련될 전망이다.
다만 큐레이터는 상근기관에 소속돼 있을 경우와 독립 큐레이터처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달라, 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한 제도가 정착되면 큐레이터 인건비가 보다 투명하게 공개돼 외국인 기획자에게 터무니없는 기획비를 제공하면서도 전시의 질은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산 문제로 전시기획에 투입하는 노동 시간을 줄이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평론가들은 이 제도가 젊은 평론가 양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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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진희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