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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18. '가족'이라는 테두리 혹은 굴레

에이징 솔로(김미경) &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실 이 책은 내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여러 차례 추천해 준 책이었다.

그 지인 중 한 명은 이 책을 읽고 결혼을 결심했고, 내년 3월 결혼 예정이기도 하다.

결혼 생각이 없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노골적인 제목과 부제(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는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서 굳이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트레바리 페어링 리스트에 넣은 이유는 단지 '어느 가족'을 너무 다루고 싶었고, 이 영화와 페어링 하기 꽤 괜찮은 선택지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자도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아쉬운 점과 한계는 분명하다.

또한, 남성 비혼의 이야기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이에 대해 프롤로그에서도 설명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제목과 부제 때문에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읽었던 것 같다.

배우자가 있다는 것이, 자녀가 있다는 것이, 과연 평생 혼자가 되지 않는 방법일까.

혼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꽤 어릴 때부터,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부모님도 그냥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조금만 더 크면 저런 말한 것을 기억도 못하거나,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물론, 정말 별생각 없이 한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가고 부모님 지인들의 자녀가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하는데도 내가 전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을 아시자,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연애할 때, 한 번도 내 의지로 연애 중임을 알린 적은 없지만 (독립하기 전만 해도) 연애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차이가 워낙 명확하다 보니 (주말만 되면 약속이 있거나, 혼자 방에서 통화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만 봐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 꾸준히 연애하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결혼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딱히 해보시지 않은 것 같다.

정작 나도 “절대 결혼 안 해! 죽어도 안 해!” 같은 느낌은 아니기도 하고, 살아가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아님 말고" 같은 식이다 보니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혼 혹은 독신” 같은 말로 못 박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거듭된 만남과 이별을 겪는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라고 느낀 탓에 ‘결혼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딱히 부모님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결국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같기 때문에 내가 결혼했을 때보다, 혼자 살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당연히, 나중에(늙어서)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따라왔지만 부모님 세대가 그래 왔던 것처럼 예전처럼 모두가 당연하게 결혼하는 시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혼자 사는 것이 전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기우에 불과할 것이고, 오히려 혼자 살기 더 좋아진 시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도 딱히 이견을 내세우기 힘드셨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포기하신 느낌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신 상황이긴 하다.

내가 결혼했을 때보다, 혼자 살 때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 문제 이긴 하다.

성장과정에서 어떤 결핍이나 콤플렉스 때문에 생긴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애할 때,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가 아닌 상대에게 집중하는 면이 생각보다 강하다.

상대가 나를 실망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데 내가 상대를 실망시키는 것은 참기 힘들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 지나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사람과는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친구가 있는데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난 학생이고 여자친구는 취업을 한 상태에서 사회생활로 힘들어하는 여자친구에게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막연한 공감뿐이었다.

당연히, 여자친구가 나에게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같은 직장을 다니는 선배도 아니고, 내가 정작 어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그런 무력감이 더 날 옥죄워 온 것 같다.

그냥, 내가 이미 접하지 못한 세계에서 힘들어하는 여자친구에게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는 무력감이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그 잠깐의 시간도 견디지 못한 채, 먼저 이별을 말했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 그 외의 이별과정은 거의 동일했다.

상대가 달라져도, 내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같았다.

특출 나게 매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아주 간혹 누군가 나를 먼저 좋아해 주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대부분 내가 먼저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어필한 끝에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별다른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날 믿고 날 만나준다는 것에 대해 의미부여도 좀 남다르게 했던 것 같다.

결국 내 노력으로 만든 인연이다 보니,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표현이 다소 과한 것 같지만…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기도 해서)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자동으로 장착되어 버린다.

일례로, 모든 연인이 늘 약속된 날에만 만나는 것은 아니니깐 불시에 갑자기 상대가 보자고 할 때가 생기는데 혹시라도 그럴 때, 내가 약속이 있거나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연락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서 여자친구가 먼저 어떤 일정이 있는 날 외에는 어떤 약속도 잡지 않는 성향이 되어버렸다.

이런 마음가짐이 상대의 강요나 은연중에 내비치는 바람 같은 것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보니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문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1년이고 10년이고 내내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지내면 서로 행복한 일만 가득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렇게 지내면서 내가 결국에는 지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맞추는 것은 어떤 연인관계에서나 서로 배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지만 (상대가 굳이 그렇게까지 원한 적이 없음에도) 조금도 마음 상하는 일을 만들지 않고 싶어 하는 (가능하지도 않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렇게까지 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에는 내가 지치고 지친 나의 모습에 실망하는 상대방을 마주하는 과정이 반복되게 되었다.

이런 내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타고난 기질? 성향? 탓인지 잘 고쳐지지도 않았고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까지 이르렀다.

나 스스로에게 정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역시 이별한 이후인데, 결국에는 난 100%를 다 쏟았다고 생각하는(뻔뻔하기 그지없다…) 상황에서 이별을 맞이하다 보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황이 주는 상실감과 허무함 등이 물밀듯이 밀려와도 결국에는 금방 극복하고, 혼자가 된 나를 마주하며,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평생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평생 사랑하고 산다는 뜻으로 단순하게 동기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평생 함께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데 있어서, (이미 난 실망시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던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연인으로 발전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사이가 더 편해진 지 오래였다.

적당히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딱히 기대감이나 바라는 것이 없는 편한 사이

나에게 어떤 역할도 기대하지 않는 그런 관계

그냥 친구나 지인 정도라고만 부를 수 있는 관계

결국에는 나는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억지노력이라고 굳이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노력하려다 보니 결국에는 혼자 지치고 충분히 사랑받는다고 느껴졌을 상대를 실망시키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이렇게 쓰다 보니… 너무 비약에 가까워 보이네…) 생각이 확고해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행복은 내가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면, 혼자 있을 때의 행복은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다고 느껴진다면… 너무한 걸까…

앞에 말한 대로 이 세상에 “절대"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고 나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보며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은 이렇다.

"지금이야 젊으니깐 괜찮지, 나중에 후회해" 또는 "지금이야 건강하니깐 그렇지, 나중에 아프면 어떡하려고..."

그런데 내 대답은 이렇다.

"나중에 후회할지 안 할지는 나랑 모든 것이 똑같은 사람이 내가 겪을 모든 시간을 겪은 뒤에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나중에 아플 때 내 간병할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난 평생의 반려자와 결혼을 한 거지, 병시중 들 간병인과 결혼한 게 아니지 않나"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어르신들의 시선은 이 책의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루는 타깃에 가까운 연령대는 따로 있는데 바로 중년 비혼 여성이다.

청년은 '아직 젊으니까', 노인은 '사별로 혼자가 되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중년에 혼자인 사람은 '무슨 문제가 있길래?' 하며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런 시선은 나에게도 남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나이만큼이나 연애여부, 결혼여부를 아무렇지 않게 잘 물어본다.

딱히 이런 질문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도 아니지만, "여자친구 없어요, 결혼 안 했어요"에 대한 다음 반응은 "멀쩡한 사람이 왜.."정도의 뉘앙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실 이런 반응 역시 난 기분이 나쁘진 않다. 오히려 "겉으로나마 혹은 빈말이겠지만 멀쩡하게 봐줘서 고맙네.." 정도의 마음이 든다.

다만, 50이 넘고 60이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저런 말을 들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나마 내가 기준으로 삼은 몸무게를 절대 넘지 말아야겠다와 스타일리시하게 옷을 입을 능력도 안되지만, 최대한 깔끔하게라도 입고 다니자 정도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고, 여성이라 겪는 편견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이 먹은 비혼 여성의 지위가 정말 낮다 라며 분개한 책 속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서도 나이 든 비혼 여성을 초라하고 불쌍하거나, 아니면 재수 없게 기가 센 여자로 보는 시선이 있어요. 기혼 남녀뿐 아니라 젊은 비혼 남녀도 나이 든 비혼 여성에 대해 그런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대가 많아요. 업신여기고 우습게 보죠. 한국 사회에서 비혼 여성이라는 것은 보호자가 없다는 뜻인데, 다른 여성은 남편이 무서워서 못 건드리면서 무서워할 남편이 없는 나는 공격하기 쉬운 대상인 거죠. 건드렸다가 내가 화를 내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되레 비난하고."(p.282)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는 오래전부터 봐왔고, '나 혼자 산다'와 같은 관찰예능은 프로그램 대상을 받을 정도로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1인 가구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렇게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성별과 연령에 의해 소외받는 계층은 만들어지고 있다.

책에서는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려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생계 / 주거 / 고령의 부모 돌봄 문제 / 죽음을 준비하는 비혼 등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바라본다.

책은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모두가 겪을 일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전통적 가족중심'의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편견을 심어줬고, 그로 인해 어떤 계층이 소외받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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