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5

by 인디캣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도 병원-교도소에 갇히면 미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 사람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 모국인과 중국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 없는 TV를 하루 종일 봐야 하는데 이게 바로 미치광이가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아무튼 매튜의 컵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매튜는 컵을 잃어버렸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고 결국 컵을 찾지 못해 새로 컵을 주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매튜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혼잣말을 하고 웃지만 컵과 자기 자리에 대해서는 예민했다. 걸으면서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도 않고 자신의 컵이 아니면 다른 컵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A는 매튜가 정말로 미친 것인지 아니면 미친척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반쯤은 미쳤는데 제정신인 부분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미친 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병원에서 24시간 동안 4년 넘게 미친 척을 할 수는 없다. 밤이 되면 매튜의 미친 웃음소리가 적막한 2인실 복도를 울리곤 했다.


매튜는 잠을 자는가? 잔다면 어떻게 자는가 하는 것이 A의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매튜는 밤에도 웃음소리를 냈는데 거실에 있을 때처럼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다가 자는 건가? A는 나중에 2인실에서 나와 거실로 가는 줄에 서 있을 때 매튜의 감방을 봤다. 거실에서 가장 정상인처럼 보이는, 안경을 쓰고 매일 스도쿠 문제집을 푸는 죄수가 룸메이트였다. 매튜의 룸메이트는 거실에서 매튜로부터 가장 떨어진 채 앉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A의 룸메이트는 아침마다 베개와 이불을 폭행하는 다소 폭력적인 중국인 '타이'였다. 타이는 아내가 있다는데 얼굴이 굉장히 흉폭해보였다. 아침마다 침구를 때리고 창살을 두드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A는 혹시 타이가 자신을 죽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A는 혹시 타이가 자신을 죽일까봐 그가 잠든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A의 문제는 교도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잠재적 살인자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도 A를 보고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A는 그 점을 깨닫고 타이와 싸우면 과연 이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A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고 때리기보다는 맞는 쪽에 가까웠다.


A는 한가지 재미있는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다음번에 거실에 갈 때는 아이 해브 멘탈 프러블럼, 아이 해브 멘탈 이슈라고 크게 외치면서 들어갔다. 대번에 오피서가 화나서 A를 다른 곳으로 끌어낸 다음에 도대체 어떤 의사가 A 보고 미쳤다고 다이그노스 했냐고 물었다. A는 한국의 의사가 자신을 수면장애와 우울증으로 다이그노스했고 적절한 약물을 프리스크립션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피서는 아주 크게 화가 나서 아주 빠른 영어로 크게 외쳤다. A는 임폴라이트하고 빨리 돌아가서 오피서한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피서 주변의 다른 오피서들이 컴다운을 외쳤지만 그 오피서는 너무 화가 나서 주체를 못할 정도였다. A는 순간적으로 제정신이 돌아와서 아임 폴라이트 펄슨, 아이 윌 쏘리 투 오피서라고 말했다. 결국 다시 거실에 간 A는 보스인 오피서한테 사과를 했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따거라고 말하며 돌아다녔다.


거실에 있는 사람들은 A에게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친 줄 모르기 때문에 A는 미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는 자신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며 이 역시 망상의 일종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인도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나서며 아임 크레이지, 아임 크레이지라고 말했다. A는 기가 찼지만 오케이 오케이하며 다시 외국인 테이블에 앉았다. 인도네시아 인은 젊어보였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식으로 미쳤냐고 A에게 물었다. A는 자신이 모든 밀리터리 띵을 다 알고 있으며 트웬티 이얼즈 어고 시절에 듀티 아미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은 A의 뱃지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A는 뱃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인이 말한 뱃지는 그 나라의 계급장을 가리키는 것인데 한국하고는 의미와 체계가 달라서 호환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안 솔저에게 A가 나는 군대에 2년 있었다고 하자 인도네시안 솔저는 6년 있었다고 했다. A는 그건 듀티 아미가 아니라 직업 군인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A는 앞에 앉은 젊은 홀랜드 인이 꾸란을 읽고 있길래 혹시 무슬림이냐고 물었다. 젊은 홀랜드인은 무슬림은 아니고 자신은 여러가지 책을 읽으면서 지평을 넓힌다고 답했다. 무슬림도 아닌데 꾸란을 읽는다. 인도네시안 솔저는 A가 꾸란에 손을 대려 하자 화를 내며 유 언더스탠드? 유 언더스탠드?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인도네시안 솔저는 사사건건 A의 일에 어깃장을 놨고 손가락을 흔들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A가 볼펜 하나로 원 오피서를 다운시킬 수 있다고 농담을 했더니 인도네시아인은 겨우 한명? 내 가족은 여섯명을 죽였다고 말했다. A는 오 댓 이즈 인도네시아 퀄리티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A는 말을 멈추더니 나에게 자신은 미쳤다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A는 자신에게 망상이 찾아온 순간 너무나 기뻤다고 답했다. 왜 기뻤냐고 물으니 A는 이제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이고 자신은 엄청난 글쓰기 경험을 가지게 됐다고 답했다. 감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A는 너무 기뻐서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A는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이제 감옥에 간 경험이 있으니 이걸 소설로 쓰면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A의 그런 생각이 바로 망상이고 A가 미쳤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A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A는 20년 가까이 소설 창작을 해왔고 오랫동안 예술가 지망생 흉내를 냈지만 한번도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한 적이 없었다. 그는 만년 지망생이었고 스스로 그 상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망상이 찾아오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였고, A 스스로 자신을 글쓰기 마스터가 됐다고 느꼈다면 바로 그게 망상이라고, 나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지만 A도 실은 자신이 망상병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은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망상이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A에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A와 너무 많이 얘기했고 정신건강이 오염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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