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

by YOSEBI

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회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또한 정식적으로 합회로부터 채용이 되어 5년째 전도사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교단은 채용된 지 5년이 되는 해에 안수 면담과 심사를 거쳐 이듬해에 안수예식을 진행한다.


나는 안수를 바로 앞둔 해를 보내고 있다. 안수 면담도 1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에 올해는, 요즘은, '안수'라는 거룩한 책임과 부담 때문에 특히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수'란 무엇일까? 특별히 목사의 안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다시금 돌아보며 이렇게 글로 적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성경에서 안수는 여러 목적과 의미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간단히만 살펴보자.

첫째는 축복의 전달(창48:14-20,마19:13-15,막10:16)을 위한 것이다.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안수하여 축복했고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심으로 복을 나누어 주셨다. 둘째는 죄의 전가(속죄)하는 상징적 행위로 안수를 거행했다(레1:4,16:21,민8:10-12). 그렇게 구약의 성소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가져온 제물에 안수함으로 자기 죄를 전가하였고 제물의 피흘림을 통하여 용서를 받았다. 셋째로는 성령 및 은사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안수를 했다(행8:17-19,행19:6,딤전4:14). 사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나 에베소 신자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수를 통해서이다. 또한 안수는 병자나 연약한 자의 치유를 위해 진행하기도 했다(눅4:40,막16:18,행28:8). 마지막으로, 특별히 안수는 사역자를 임명하거나 직분의 위임을 위해서 행해졌는데(민27:18,23; 행6:6, 13:3; 딤전4:14,딤후1:6), 내가 내년에 받게 될 안수도 여기에 해당되는 예식이다.


Q. 안수는 누가 받기에 합당한가?

안수는 누가 받기에 합당할까? 나는 목사 안수를 앞두고 이미 안수 받았던 바울의 이야기를 돌아보았다.

바울은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사건 때 회심하게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가 AD34년 가을이었으므로, 그의 회심은 AD35년 초라고 생각된다. 부울은 침례를 받은 후 금식을 끝내고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행9:19,20). 하지만 이는 유대인들의 증오를 일으켰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기에 그의 제자들이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밤에 광주리에 그를 담아 성 밑으로 달아 내려 피신시킨다(행23-25). 바울은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아라비아로 갔다(갈1:17). 그리고 바울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가 열심히 전도했다(1:17). 바울은 다메섹에서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갔는데(1:18) 그것이 3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다가(행9:29) 다시금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로부터 벗어나도록 예루살렘 형제들이 바울을 다소로 피신시킨다. 이때가 AD38년경 그의 나이 34살 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고향 다소로 온 바울은 안디옥에서 찾아온 안디옥 교회 지도자였던 바나바가 불러 줄 때까지 무려 6년이란 세월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AD45년 경,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택하여 안수를 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 파송한다(행13:1-3). 그렇게 바울은, AD67년 어느 여름날에 순교하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22년 동안 사도로 활동).


정리해보면, 바울은 회심한 후 3년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보냈고, 고향에서 6년을 보낸 다음, 10년째 되어서야 안수를 받고 공식적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며 사도직을 감당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 바울도 단시간에 안수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때에 안수를 받았던 것이다.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바울은 안수를 받기 전의 10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었을까?'

아니, '하나님께서는 그 10년 동안 바울을 어떻게 준비시켰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질문은 안수를 앞두고 있는 내게 참으로 중요한 묵상거리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바울을 "수련"시키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 초반 3년 기간 "겸비와 수련의 기간"

바울의 10년 수련의 기간 중 초반 3년 간 있었던 아라비아는 어떤 곳인가? 광야였다. 모세가 40년을 보냈던 미디아 땅이 있는 곳이자, 시내산이 있던 곳이었다(김승학 박사 주장).

이 한적한 광야에서 바울은 조용히 연구하고 명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완전히 회개하였을 것이며 그에게 남아 있던 유대교의 모든 신학과 사상이 무너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신학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와 기도 중에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고전1:1)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가 열심히 전도하면서(갈1:17) 보냈을 것이다. 이처럼 초반의 3년의 시간은 바울에게 겸비와 겸손, 하나님의 학교에서 수련을 받았던 것이다.


- 그 후 6년 기간 "인내와 기다림의 기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은 겸비와 수련의 기간을 거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님께서는 바로 안수를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특별한 시간으로 초청하셨다. 바울은 사명을 확인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게다가 신변이 위험해지자 고향으로 물러가 6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고향에 머물러 소극적으로 생활해야 했던 6년은 말이 6년이지 정말 길고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6년이라는 세월은 소명에 흔들림이 생기고 다른 마음을 품으며 다른 일을 시작하고 정착하기에 정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던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니었겠는가?


나도 안수를 받기까지의 바울의 이러한 생애를 돌아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훈련들을 잘 수련받고 있는가?' 하며 말이다.


나는 하나님께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훈련받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이었던 내 삶이 깨어지고 무너졌던 것이었다.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나 자신이 주도하여 무언가를 선택하며 20대를 보내왔었다. 선택하는 일이 언제나 쉽고 가벼웠으며 책임도 내가 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6080세대로 형성된 시골 교회에서의 목회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목회자라고 내 생각대로 교회를 운영할 수 없을 뿐더러, 아무리 열정적으로 비전을 선언해도 성도들을 움직이는 것은 내 영역 밖의 일이었다. 5년동안 하나님께서는 처절히 나를 깨뜨리심으로 이 사실을 알게하셨고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배우게 하셨던 것 같다.

이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주를 의지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목회로의 부르심에 대하여, 생명력 있는 설교에 대하여, 목회자로서의 비전과 개인적 사역활동에 대하여, 한평생 복음을 위한 삶에 대한 인정하는 일 등에 대하여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모든 것들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신 것 같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목회자들 가운데서는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인내와 기다림의 특별한 훈련까지 받기도 한다. 아직 함께 목회할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거나,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거나, 개인적인 사정과 교회나 합회의 인정을 받지 못해서 안수를 기다리는 목회자들도 있다. 하지만 바울도 6년을 더 기다려 10년 만에 안수를 받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 자신이나 안수를 준비하는 어떠한 목회자들은 걱정되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특별한 인내와 기다림의 훈련까지도 잘 수련받아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사업을 부르심을 받는 나와 모든 목사들이 주님 안에서 잘 훈련받아 교회를 위해 섬기며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로 바로 서게 되길 기도한다.


Q. 목사 안수는 누가 주는 것인가? 그리고 목사 안수의 필요와 기대는 무엇인가?

바울과 바나바가 안수를 받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행13:2). 그 지시와 명령으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을 사도로서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 안수식도 외형적으로는 교회와 합회가 목사에게 안수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권위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 안수는 왜 필요한가?

엘렌G화잇의 저서 중 [사도행적]이라는 책을 보면 그 필요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교도 세계의 선교사로서 보내심을 받기 전에 이 사도들은 금식과 기도와 안수로써 엄숙히 하나님께 봉헌되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충만한 성직의 권위를 받아서 진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침례식을 거행하고 교회를 조직하도록 교회로부터 권위를 받았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하게 될 어려움을 미리 보시고 그들의 사업이 도전을 받지 아니하도록 그들을 공적인 봉사 사업을 위하여 구별하라고 계시로 교회에 지시하셨다. 따라서 그들의 안수식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임명에 대한 공식적인 승인이었다. ... 바울과 바나바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그들의 사명을 받았으므로, 안수 예식 자체가 어떤 새로운 은혜나 실제적인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해진 직무에 임명함을 인정하는 형식이요, 그 직무에 대한 그 사람의 권위를 승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교회의 인이 하나님의 사업에 찍혔다. ...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 모든 신자들이 유지해야 할 그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과 연합하고 교회는 교회와 연합하도록 계획하셨다. 이리하여 인간 도구는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기관들이 성령께 복종하게 될 것이므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의 조직되고 잘 지도된 수고를 하도록 연합하게 될 것이다."(행적,160-164)


요약하면, 안수의 필요는 사역의 공식적 인정과 교회의 질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협력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안수를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선교에 열정이 있고 뛰어난 언변으로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지경은 땅끝까지 뻗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를 주었고 이들을 통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신약 성경에서 안수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물론 안수하는 지도자의 역할은 감당했다(행6:6; 8:17).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수를 받지 않았던 그들이, 예루살렘에서만 사역을 감당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모국에서는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지 않아도 복음을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들도 타국에서 사역해야 했더라면 바울처럼 안수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질서와 연합에 관한 것이다. 바울이 안수를 받지 않으면 마주하게 될 교회와의 문제들, 성도들 간의 불화, 지도자들 사이의 알력, 설교의 권위, 사역의 연합 등 공동체적으로 연합을 이루어 복음을 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교회가 인정한 지도자를 통하여 교회는 질서가 잡히고 교인들로 유기적인 조직체를 만들고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 교인, 교회의 질서와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협력하여 주의 은혜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전하실 수 있게 하셨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의 안수에도 적용된다.

목사의 안수는 효과적이고 힘 있게 복음 전파를 위하여 권위를 받아야 하며, 교회의 질서와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난 5년의 나의 목회를 돌아보면 안수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나의 5년 전 모습은 아직 결혼도 안 했을 때였고, 이제 막 30대의 문턱을 통과한 전도사에 불과했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신학도 공부하고 목회에 채용되어 열심히 봉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교회를 지도하기엔 힘이 부족했다. 젊은 나이에 계속하여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나이와 경험을 능가하는 영적 권위와 힘이 필요했다.


나에게 있어서 안수는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딤전4:12)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이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롬8:28)과 연합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고 생각된다. 안수를 준비하는 이 시점, 나의 소명을 재확인하게 하시며 목회에 대하여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사도행적] 책에는 안수받은 바울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공식적인 안수를 받은 것을 그의 평생의 사업의 새롭고 중요한 신기원을 여는 표로 삼았다. 그가 후에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의 사도직의 시작을 기산 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행적,164)".


지금까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한 나의 시간들, 학과 전도사, 학생 전도사, 교육 전도사, 임시 전도사, 그리고 채용후 5년의 수련 전도사 시간들. 합치면 얼마나 될까? 12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채용된 시점에서 계산해도 5년이 되었다.

하지만 바울이 그랬듯, '나도 안수를 받은 해부터 나의 목회의 연수를 기산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하나님과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승인한 목회말이다. 그러니 안수를 받은 후부터 나의 목회 연수를 기산해보자. 그리고 초심처럼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며 언제나 부족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목회를 할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주님!

부족한 저를 당신의 교회를 섬기도록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죄된 제 자신을 보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의지케 하소서!

안수를 위하여 훈련받고 준비되게 하시고, 성령이 시키는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안수받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를 섬길 때 하늘의 권위로 하게 하시어, 영혼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하시고 질서 있고 연합된 모습으로 주의 일꾼들과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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