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사람들을 보며 비춰본 나의 삶

by YOSEBI

들어가는 말


올해 휴가는 아내와 친하고 편한 사람들 몇 명과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다녀오게 되었다.

가서 사건사고(?)도 있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올 수 있었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국가, 언어, 문화, 종교를 가진 발리 사람들을 보며 내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참 감사했다.

발리 사람들을 보며 비춰본 나의 삶은 반성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3가지 면에서 느끼게 되었는데 먼저는 출산계획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며 마지막으로는 개인적 신앙에 대한 부분이었다.

하나하나 나의 생각과 느낀부분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출산계획에 대한 반성

대한민국의 총 인구는 25년 6월 기준으로 51,164,582명이다. 출산율은 2024년 기준으로 여성 1인당 0.75명인데,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2.1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이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약 2억 8천만명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우리가 여행한 발리섬(제주도 4배 크기)만해도 약 440만명이 거주하고 있고 덴파사르에만 약 7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출산율은 어떨까? 23년기준 2.1명으로 인구 대체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데 40여년 전인 1980년대 우리나라의 수준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의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돈"문제이다. 특히 높은 양육비와 주거기 부담은 신혼가정이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집이 없고 아이를 먹여 살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맘놓고 낳을 수 있을까? 일부러 자녀계획을 하지 않는 가정을 제외하곤 이런 돈 문제로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는 가정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출산계획이 늦춰지거나 적게 낳는 것을 계획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다. 신혼 3년차이지만 아직 자녀는 없다. 돈문제라기보다 난임의 이유로... 하지만 우리 가정이라고 오늘날 젊은 가정들처럼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부담과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녀 하나를 키울 때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결혼 후 우리 가정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걱정이었다.


이런 생각에 대한 반성을 이번 발리 여행에서 가지게 되었다.

발리의 관광지들을 다닐 때마다 우린 주로 공유 택시를 이용했다. 공항에 도착해 우붓이라는 지역의 숙소로 이동할 때도 공유 택시를 타고 갔다.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발리 교통 특성상 길이 좁고 차와 오토바이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덕분에 조수석에 앉은 나는 기사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어디 사시는지, 일은 얼마나 하게 되셨는지, 자녀는 몇명인지, 뭐하는지.. 뭐 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대화 중에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 가정에 대한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분이 살고 있는 집은 사실 발리섬이 아닌, 비행기 타고 몇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섬에 있었다. 가족은 아내와 자녀 6명이라고 하셨는데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여행객이 많은 발리에 와서 택시 회사에 취직하여 기숙사생활을 하며 이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참 대단했다. 같은 가장으로서 존경스러웠다.

6명의 자녀 중 아들은 5명 딸이 1명이고 큰 아들은 20대, 막내는 이제 9살이라셨다.

순간 '개발도상국나라이니깐 아이를 많이 나으셨겠지', '이 나라 사람들은 원래 자녀를 많이 낳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인도네시아 출산율도 알게 되고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이분이라고 쉽게 자녀 6명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이분도 가정을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레 한국의 저출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우리 가정도 자녀를 1~2명 낳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분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권장했다.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더라도 가능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말이다.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그만큼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들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집이 비싸면 싼데서 지내면되고, 도시가 힘들면 시골에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참 당연한 말씀인데 이 말씀이 참 와닿았고 반성도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은 참 힘든일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미래라던지 우리 가정의 대라던지, 가정에서 오게 될 행복이라던지 등등... 특히 나는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지금도 큰 관심으로 돌보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다. 그런데 사회적 현상과 돈문제로 자녀계획에 대하여 옹졸하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사실 내 인생도 돌아보면,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비용과 돈을 부모님이 준비해뒀거나 해결해주지 못했다. 살면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없으면 알바를 하면서 벌어 쓰고, 학점을 관리해 장학금을 받으려 애써왔지 않던가?

자녀계획에 있어 걱정하는 경제적 고민은 책임감이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고생에 대한 회피이자 없는 걱정을 사는 오지랖은 아니었나 싶다.


미국 출신의 작가이자 강사인 데일카네기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죽은 어제(dead yesterdays)’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일(unborn tomorrows)’을 걱정하는 것은 아무 쓸 데가 없다. '오늘’은 ‘어제’ 여러분이 걱정하던 ‘내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건 ‘오늘’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오늘’ 뿐이다. 어제와 내일에서 해방되면 현자가 된다. 현명한 사람은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난다."



맞다. 오늘 내가 해야할 것은 걱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이 선택은 미래에 대한 무책임이 아닌 오늘처럼 열심히 살아갈 '다가올 오늘'을 맞이하는 용기라고 생각된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시금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3)

내일에 대하여 내가 염려할 것이 아니다. 내일은 내일이 염려하는 것이다. 즉, 내일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듯, 내 자녀도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키우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굳게 믿자!

그러니 무엇을 더 이상 고민할까?

나의 폐쇄적 계획보다는 우리의 힘이 닿는대로,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자녀를 계획하기로 선택해보자.


2. 삶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한 반성

또 택시 기사 이야기다. 아무래도 관광지를 다닐 때 대화도 하며 가까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루는 발리의 남부지역을 투어하기로 계획했다. 시간 테이블로 일정을 계획했기에 그때 그때 택시를 빌리기보다 하루 통째를 위한 택시를 구했다. 한 분의 기사 덕분에 우리들은 이곳저곳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택시 운전사는 딱봐도 나보다도 어렸다.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니 24살이란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우리의 여행을 위해 일해주었다. 하루 비용은 인도네시아 돈으로 90만 루피아와 팁 10만루피아로 총 100만 루피아였다. 우리나라돈으로 8만 얼마였다. 게다가 택시 회사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순수익은 그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물가가 다르고 화폐의 가치도 다르겠지만 분명 큰 돈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일한 품삯치곤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주어진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큰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한 이 청년의 삶이 참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또 '인도네시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 삶을 감히 누가 판단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하여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도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기꺼이 평범한 일, 사소한 일일지라도 큰 욕심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든다.

나도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로서 지금껏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등 나의 꿈과 비젼을 세우고 달려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실패 속에서 좌절도 느끼고, 남들과 비교하며 무언가 이루지 못한, 쌓아온 재산도 없어 자신감도 줄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20대 인도네시아 청년도 하루 하루를 힘내서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내가 꼭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나도 큰 욕심과 부담을 내려놓고 지금의 내 일을 만족하게 여기고 주어진 일터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보면 어떨까? 이 인도네시아 청년을 보며 작은 용기가 생겼다.


솔로몬의 잠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8-9)

세상에서 너무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만 말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이름 없는 인생일지라도.. 주어진 시간과 관계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연습을 해보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이 그러해보자. 그럼 훗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고백하게 되리라 믿는다!


3. 개인적 신앙에 대한 반성

인도네시아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이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의 주된 종교는 힌두교이다. 힌두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다음 가는 세번째로 큰 종교이다. 인도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로, 인도, 네팔, 발리 등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는 인더스문명의 자연신 숭배부터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3 신을 모시는 브라만교가 인도 토착의 민간신앙과 융합된 종교라고 하는데, 발리에서 그 종교 문화를 일부 느껴볼 수 있었어서 좋았다.

발리에 가보면 사원들과 탑, 조각상을 쉽게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각종 문 앞과 장소에 왠 꽃상자와 향들이 있어서 오감을 통해 힌두교를 경험할 수 있다. 그중에 꽃상자인 '차낭사리(카낭사리)'에 대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발리 힌두교에서는 '데와타 나와 상가(Dewata Nawa Sanga)'라는 아홉 방향의 수호신들이 배정되어 있는데 발리 힌두교 사원 건축과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발리 힌두교 신자들은 하나의 의식에 사용되는 제물로 차낭사리를 사용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차낭사리는 발리 힌두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여 일상 생활에서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차낭사리는 바나나 잎이나 코코넛 잎으로 만든 작은 그릇에 꽃, 쌀, 향, 과자 등을 담아 신에게 바치는 공물인데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차낭사리를 만들고 바치는 의식을 볼 수가 있다. 그 장소도 다양하다. 사원과 집 앞은 당연하고 길거리, 게스트 하우스, 호텔, 가게, 식당, 카페, 자동차, 자전거 바구니, 오토바이 바람막이 사이공간, 해변 모래 심지어 큰 쇼핑몰인 아이콘발리에 입점한 곳들 등 일상생활의 모든 공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차낭사리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강아지들과 고양이들과 닭과 비둘기들의 몫이다. 차낭사리 앞에서 기웃거리는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의식도 의식이지만 주변에 있는 동물들까지 챙겨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 따뜻했다.


발리 힌두교인들의 차낭사리 의식은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닌 감사히 여기는 일상생활이었다. 이들에게 종교는 원할 때, 필요할 때 찾는, 기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일상 자체이며 삶을 살아가는 자세였다. 그것이 '차낭사리'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그런지 발리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긍정적인 것 같았다. 어느 가게에 가도 밝은 미소로 맞아주고, 첫 손님이면 더 크게 환영해주었다.

다음에 또 발리에 갈 일이 있다면, 좀더 발리 사람들과 가까이서 지내보고 싶었다. 그들의 가정에서의 일상과 하루하루의 생활을 가까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하튼 발리인들의 '차낭사리'는 신을 인식하는 가운데 매일을 살아가는 고결한 태도이자 아름다운 자세라고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믿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긴 하지만 오늘날 한국 기독교도 교회와 교인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떠나고 있고 그나마 다니고 있는 청년들도 종교 활동이나 개인적 신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끝이 오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앞으로의 기독교의 역사와 세상 끝에 관하여 어떻게 될지 참으로 암담하다.


이런 시대 속에 살면서 교회는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교회 조직을 변화시켜보고, 교회 건물을 변경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온갖 문화와 방식들을 채택하여 전도하고 선교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얼마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시대와 세대를 향한 교회의 궁극적인 방향은 언제나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할 일꾼이 없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일꾼으로 세운 교회의 직분자나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서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하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하나님의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주의 일꾼 중 하나이다. 하지만 때론 아니, 너무나 하나님의 사역을 의무감에, 책임감에 할 때가 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는데에 있어서도 본성의 나약함을 언제나 탓한다. 나의 약함 중에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믿지만, 정작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운 생애는 여전히 이상일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에 주님은 어떻게 역사하실까?

이 질문의 대답을 발리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매일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이다.


나는 악기 중에 기타를 다룰 줄 안다. 노래도 조금 할 줄 안다.

나는 음악을 배우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매일'의 중요성이다.

특히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매일 매일 기타를 잡고 굳은살이 생겼다 떼어냈다하며 한 곡을 수없이 반복해야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고 연주하는 일에 노련해짐을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하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는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앙도 매일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훈련인가하면, '하나님을 인식'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여러 도움되는 것들이 있다. 기도하고 말씀보는 것, 그리고 성경 통독을 듣거나 찬양을 듣는 것, 또한 지금의 내 모습처럼 무언가를 경험한 것에 대한 신앙적 관점에서 글을 쓰는 것, 영성 일기 쓰기 등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끔보면, 헬스장은 안다니면서 '몸 관리를 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근육을 가지고 싶다', '체력이 좋아지고 싶다'하며 신앙적 이상에 대하여 바라기만하고 자기의 신앙적 기준을 가지고 타인에게 강조하기만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러한 자기 무덤을 파는 식의 신앙에서 탈피해야 한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정말 재림의 징조가 난무한 세상에 우리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개인이 얼른 회복되어져야 하고 그 개인들이 모인 교회의 공동체가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믿음의 능력이 발현되고 가까운 나부터 변화되기 위해선 매일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을 나부터 살아야 할 것이다.

혼자 하기 어렵다면 가족과 주변 성도들과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세겹줄이 될 수 것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발리의 사람들처럼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식하며 살아가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과 사랑을 나눠주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의지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연약함 가운데 능력을 베푸실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