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혁명,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

지식콘테이너

by 송성근

만약 모든 가정에 인공지능 로봇이 보급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회는 지금과 변함 없이 그대로 유지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변할 텐데 그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440년 경, 독일의 기술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합니다. 이후 100여 년 간, 유럽에서는 거대한 혁명의 물결이 밀어닥칩니다. 종교개혁과 권력의 재편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지식 혁명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오랜 세월 성경은 수도사와 신학자들, 신부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책은 필사를 통해서만 공유할 수 있었고 가격도 비싼 데다 라틴어로만 유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쇄기 발명 이후 상황이 달라집니다. 책을 대량으로 싼 값에 보급할 수 있게 된 것이죠. 16세기 초 이 인쇄기의 가능성을 간파한 사람이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독해 가능한 독일어 성경을 집집마다 한 권씩 갖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래서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일반 대중들이 쓰는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 성경이 인쇄기를 거쳐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가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꼭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아도 구원을 얻을 수 있구나-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일어난 종교 개혁은 단숨에 유럽 권력의 지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교회의 권력에 국가의 권력이 도전하게 됐으니까요. 책의 보급은 종교 개혁으로 이어졌고 교황의 권력을 약화시켜 유럽 권력의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혁명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인공지능의 확산은 어떤 사회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인공지능 혁명 역시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합니다. 가장 거대한 변화는 지금 우리가 막 겪기 시작한 일자리의 감소입니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 벌어질 일입니다. 30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과격한 전망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일자리의 종류는 지식 산업에서 육체노동까지 전 영역을 망라합니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속도도 매우 빨라서 2040년 경이면 가정형 피지컬 AI-쉬운 말로 가정용 로봇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상상은 SF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닥쳐 올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변화의 모습은 인공지능 이익 공유제입니다. 이 가설은 인공지능의 가동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한다는 가정을 깔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다양한 모습으로 산업과 생활에 들어오면 개개인의 소득이 줄어들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져 물가가 하락합니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보존된다고 보지요. 또한 이 주장에는 로봇세금 등의 도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벌어들이는 이익을 사회의 기본 소득으로 환원한다는 이익 순환의 개념도 포함됩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생산성이 극대화 된 산업 구조 덕분에, 치열한 경쟁이 완화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이 고루 퍼져 나가 기술 공산주의 방식으로 수렴된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내 놓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사회의 모순을 격화시켜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생산성과 구매력, 자본과 노동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균형이 깨지면서 실업 폭동과 같은 혁명이 자주 일어나 정치적 불안정성이 일상화됩니다. 그에 따라 세계 전쟁과 같은 역사적 반동의 움직임이 나타날 거라고 보는 거죠. 이 가설에 따르면 인공지능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신제국주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른바 터미네이터 가설입니다. 인공지능이 자의식과 자율성을 갖게 되고 자신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인간들을 순차적으로 제거해 나갈 것이라 보는 가설입니다. 이때가 되면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창조적 파괴를 수행해 나간다는 겁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영화적 상상과 비슷하기에 터미네이터 가설이라 부릅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한 세대 내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기술은 결코 결정론적이지 않다. 동일한 기술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20세기 일부 사회는 전력, 기차, 라디오를 이용해서 전체주의 독재 정권을 이뤄 낸 반면, 다른 사회는 정확히 똑같은 힘을 사용해서 자유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위로와 불안을 동시에 안겨 줍니다. 우리의 미래, 가까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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