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강남 한복판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있을까?

지식콘테이너

by 송성근

서울 강남 한복판, 한국의 최첨단 IT 기업들과 금융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곳, 하루에도 엄청난 자본과 사람들이 오가는 길. 그곳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강남 ‘테헤란로’입니다. 이곳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걸 아시나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 시절의 한국과, 그 한국이 세계와 맺었던 관계를 만나게 됩니다.


1960년대의 한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시설, 전국민의 90% 이상이 농업 종사자, 사람들은 밥을 굶고,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살아가던 시절입니다. 자원도 없고 돈도 없는 나라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국경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외화를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국이 선택한 곳이 바로 중동이었습니다. 중동에는 석유가 있었고, 막대한 자본이 있었으며, 대규모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는 기술과 인력, 그리고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이 두 조건이 만나면서 한국은 중동 건설 붐에 뛰어듭니다.


사막 위에 도시를 세우고, 도로를 깔고, 플랜트를 건설하는 일들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낯선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에게 중동은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삶을 바꾸기 위한 기회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란은 그 중심에 있던 나라였습니다.


역사에서 이란은 세계사의 중심으로 등장합니다. 이란은 페르시아인의 후손, 사산 왕조의 후예입니다. 중동과 지중해 문명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문명이었죠. 페르시아 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에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치권을 허용했고 활발한 무역을 통해 제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962년, 한국과 이란은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습니다. 중동 붐의 씨앗이 이 때 뿌려집니다. 당시 이란은 석유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국가 인프라를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그 기회를 잡습니다. 1973년부터 중동 붐이 일기 시작해 수십 만 명의 한국 근로자들이 중동으로 나가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세우고, 산업 시설을 구축합니다.


이 관계는 단순한 외교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필요가 맞물린 협력이지요. 한국은 외화를 벌어야 했고, 이란은 개발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는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연결됩니다.


그리고 1977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던 두 나라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게 됩니다. 서울 강남에는 ‘테헤란로’가 생기고,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만들어집니다. 서로의 수도 이름을 서로의 도시 한가운데에 새긴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닙니다. 그 시절의 관계를 지리적 이름으로 남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강남은 급격히 성장합니다. 논밭이던 땅 위에 기업과 금융, 기술 산업이 들어서고,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의 이름이 여전히 ‘테헤란로’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국의 성장 한복판에 중동과의 연결이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과 건설 경험을 통해 쌓은 기술은 한국의 산업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건설 노동자의 달러화 해외 송금, 해외 수주 자금이 급속도로 쌓이면서 한국은 외환보유고를 키우며 국가신용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포항제철과 현대건설의 성장에는 중동 외화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선 산업이 급성장 하여 대형 유조선 건조 능력을 키우게 된 것도 중동 붐 이후였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한국의 산업을 움직이는 연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습니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국제 정세는 크게 바뀝니다. 이란은 서방과 갈등 관계에 들어가고, 한국 역시 국제 질서 속에서 이란과의 관계에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전처럼 밀착된 협력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는 여전히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는 여전히 서울로가 남아 있습니다. 관계는 변했지만, 이름은 남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왜 강남 한복판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있을까? 그 이름은 외교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만들어 낸 관계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국가는 이념으로만 연결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생존으로, 때로는 노동과 자본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런 연결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시의 이름으로, 기억의 형태로,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테헤란로는 단순한 도로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기록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국경밖으로 나가야 했던 시절, 그리고 세계와 처음으로 깊이 연결되기 시작했던 순간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우리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역사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2026년 미국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한국에, 미국 편에 설 것을 요청했습니다.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026년 3월 말 현재, 한국은 아직도 그 요청에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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