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귀에 꽂고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로 내리막을 달리던 때가 있었다. 핸들에서 두 손을 놓았었지,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죽을 뻔한 순간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사백 미터쯤 이어지는 그 경사로를 좋아했고 꼭대기에 서면 한번 멈추어 선 다음 항상 같은 음악을 틀고서 중력에 몸을 맡겼었다.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찔했다.
메탈리카와 스콜피온즈, 1980년대는 헤비메탈의 전성기였다. 폭발하듯 터지는 사운드, 기타의 오버드라이브 연주, 찢어지는 보컬, 거기다 노래 가사는 분노와 자유를 갈망했지. “빛은 꺼지고, 밤이 들어선다. 손을 잡아. 결코 돌아오지 않는 땅으로 떠나자!” 이런 노래들이었어. 당시 나는 교회에 다니는 얌전한 학생이었는데, 헤비메탈을 듣는 게 아무래도 맘에 걸려 크리스천 헤비메탈 그룹 스트라이퍼의 노래를 듣기도 했다. 찬송가를 헤비메탈로 바꿔 부르고 공연 중에 성경을 던져 주는 무지막지한 그룹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나도 주님을 찬양했다. 1980년대에는 뒷머리를 기르는 게 유행이었는데 거기까지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학교 두발 단속에 걸릴 게 뻔했으니까.
메탈리카의 위대한 명반 <Master of Puppets(꼭두각시의 주인)>이 나왔던 때가 1986년이었다. 그 때는 우리나라에 독재 정치가 정점에 달해 있었던 때지. 많은 대학생들이 고문 받고 투옥 당하던 때였다. 거리에는 최루 가스가 날리고, 고무 태우는 냄새가 나던 그 고약한 최루탄 가스 냄새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만약 내가 그 때 대학에 들어갔더라면 나도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을지도 모르겠다. 메탈리카를 듣는 중학생은 나중에 커서 그렇게 될 게 뻔했다. 분노와 자유를 갈망했잖니.
이어폰을 꽂으면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음악만 들렸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 목소리도 안 들릴 만큼 소리를 크게 키우고 들었다. 1988년쯤에 아찔한 교통사고를 당할 뻔 하고 난 뒤로는 소리를 약간 줄였다. 그 때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교차로에서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가로지르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일이었다. 다행히 트럭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급정차를 한 덕분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했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망치듯 내달렸지만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며 뛰는지 나중에는 자전거를 멈추고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에 전기가 이는 것 같았다. 그대로 트럭이 나를 밀고 갔다면 나는 아마 트럭 밑에 처참하게 깔렸거나 공중으로 몇 십 미터는 날아올라 바닥으로 내동댕이 처졌을 것이다. 그런 비슷한 꿈을 꾸며 몇 날 며칠을 잠을 설쳤는지 모른다. 후회와 반성이 몰려 왔다.
그 뒤로는 음악적 감수성이 약간 바뀌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본 사람의 변화랄까. 음악 장르를 바꾸어 조지 윈스턴의 뉴에이지 피아노 연주곡 같은 걸 들으며 돌아다녔다. 맑고 고요하게 퍼지는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헤비메탈을 듣는다는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도 안 들어서 좋았다. 분노와 자유에 대한 열렬한 갈망도 조금 누그러지고 나는 평화와 이상을 꿈꾸는 교회 전도사 같은 사람이 되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서 부드럽게 자전거를 몰며 돌아다녔다. 그 후로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 힙합 같이 몇 번 음악 장르가 바뀌긴 했지만 헤비메탈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았다.
무언가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아슬아슬했던 순간 이후로 말이다. 올림픽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니.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어쨌든 다행히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문민 대통령(김영삼)이 당선된 이후라 내가 굳이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문화의 풍요를 누리던 첫 세대, 엑스 세대(X Generation)라 불리던 그 자유의 세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고, 김건모, 신승훈, 이승환, 김동률 이런 대형 가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가 나의 대학 시절이다.
당시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은 1990년대를 이렇게 회고한다. “갑자기 뭔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가요라는 게 대부분 약간 뽕필이 들어 있어 어딘지 촌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확 사라지고 아주 세련된 분위기로 가더라고요. 노래방 문화도 한 몫 했죠.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려면 아무래도 영어로 된 팝보다는 가요가 편했으니까요. 그래서 팝에서 가요로 많이들 전향했죠.” 나도 그런 무리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그 때는 발라드가 그렇게 좋더라. 신승훈을 죽어라 따라 불렀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항상 신승훈을 불렀다. 조금만 더 고음으로 올라갔더라면 데뷔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승훈이 한참 뜨고 있을 때 나는 군대에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학교를 휴학하고서 잠깐 방황하던 때가 있었는데 나라에서는 그런 내 사정을 돌아보지도 않고 징집 영장을 보내 왔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은 음악 장르랄 게 없었다. 군가만 주구장창 불러 댔으니까. 네가 어디서 주워 들은 <전선을 간다>는 나도 좋아했다. 강박이 또렷한 긴박감 넘치는 리듬과 점층적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약간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 외에도 내가 좋아했던 군가는 <최후의 5분>, <팔도 사나이>, <전우야 잘 자라> 같은 노래가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로 나는 째즈에 빠졌다. 엘라 피츠제랄드나 빌리 할리데이 같은 고전적 보컬 가수부터, 스탠 게츠, 쳇 베이커, 존 콜테르인 같은 유명한 연주자들, 좀 더 현학적인 빌 에반스나 마일스 데이비스까지 그 깊이 있는 여운에 젖어 살았다. 밤에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 음반들을 듣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았다. 째즈 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워 책을 읽는 것도 좋았고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방을 청소하기도 했다. 째즈는 술을 마신 것처럼 긴장을 풀어 주었고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내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째즈를 들으면서 찾아 왔다. 대학에 복학하고 수많은 과제에 눌려 살았지만 째즈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 행복이 가장 컸다. 그 때 나는 책도 많이 읽었고 글도 많이 썼다.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즐긴 것 같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 한 동안은 음악을 듣지 못했다. 지하철 안에서 끈 달린 이어폰은 정말 최악의 장식이었다.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하철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대부분 출퇴근 시간에는 멍청하게 한곳만 바라보거나 졸고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독이 나를 찾아 왔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대부분 서류 작성과 프리젠테이션, 회의, 전화로 이어지던 직장 생활에서 나는 만족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혀,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는 짓거리를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해야 되는 순간에는 말이다. 나 같으면 때려 치운다 하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했다.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우고 대학원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나는 음악이 없어서 고독했던 것이 아니라, 고독에 맞설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째즈를 들으며 밤새 책을 읽던 행복을 다시 누려 보려 했던 것인지도.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블라디미르 슈필만이라는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그 영화에서 나는 처음으로 쇼팽을 만났다. 쇼팽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황폐하게 무너진 유대인 거주 구역 게토에 울려 퍼지는 쇼팽 연주곡은 나를 완전히 사로 잡았다. 너도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이 곡을 듣고 나서 나는 당장 오디오를 장만했다. 과외 알바를 뛰며 대학원 학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긴박한 처지였지만 나는 꼭 내 오디오로 그 음악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큰 돈을 주고 오디오를 장만했고 집에서 처음으로, 이어폰이 아닌 커다란 스피커로 쇼팽을 들었다. 솔직히 영화관에서 들었던 것만큼 극적이진 않았으나 그 후로도 나의 클래식 여행은 계속되었다. 비싼 오디오를 사 놓고 비싼 음반들을 사 모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음악 이야기를 하며 여기까지 왔구나. 지금? 지금은 음악의 천국이잖니. 한 달에 얼마의 돈만 내면 세상 원하는 음악은 다 들을 수 있으니까. 요즘은 아프리카 토속 음악에 조금 빠져 있다. 카리브해에 있는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도 아주 좋다. 들으면 금방 익숙해진다. 4/4박으로 걸으면서 들으면 더 좋다. 아이팟이 있어서 좋은 세상이고, 음악 구독 서비스가 있어서 더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의 천국에서 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어폰은 늘 내 귀에 꽂혀 있었지만, 내가 듣고 있던 것은 음악이 아니라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분노의 시대, 자유의 시대, 고독의 시대, 그리고 풍요의 시대. 나는 그 모든 소리를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 내리막길에서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던 소년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다. 다만 이제는 소리를 크게 키우지 않는다. 세상의 소리도 함께 들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