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의 추억

by 송성근

과학 수사 드라마에서 신발은 매우 중요한 단서다. 키와 체형, 걸음걸이까지도 신발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발에 묻은 흙이나 먼지 성분을 검사하면 직업이나 사는 지역도 알 수 있다. 나도 가끔 네 신발을 보며 그런 과학 수사 비슷한 걸 한다. 어디에 다녀 온 거지? 신발에 왜 흙이 잔뜩 묻었지? 신발이 발에 안 맞나? 새로 사 줘야 하나? 아유, 이 냄새 좀 봐. 도대체 신발을 빨아 신기는 하는 거야? 또 잔소리가 나오려고 한다.


어린 시절 흑백 사진에서 나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사진이니까 197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그 때는 고무신이 흔했다. 내가 좀 더 자랐을 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풍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고무신을 신고 있다. 시장에 가면 쭈글쭈글한 검은 피부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할머니들이 광주리에 채소를 담고 팔고 있는데 죄다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무신이 싸구려 신으로만 여겨지는 건 아니었다. 명절이 되어 친지집을 방문할 때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서 곡선이 아름다운 고급 고무신을 신고 길을 나섰다. 요즘 같은 캔버스 소재나 합성 고무 재질의 신발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고무신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1980년대가 되어 우리나라 경공업 분야의 발전으로 다양한 재질의 운동화가 쏟아져 나왔다.타이거, 슈퍼 코밋, 스펙스 같은 국내 상표들이 유명했다. 아동용 신발 한 켤레 가격은 1만 원에서 2만 원대 초반이었다. 2만 원이면 고급 신발에 들었다. 내가 이 가격을 어떻게 정확히 기억하느냐?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시장 신발’이 아니라 ‘타이거 슈즈’를 신었기 때문이다. 내 신발을 사러 시장엘 갔는데 어머니는 브랜드 슈즈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시장 신발 쪽만 기웃거렸다. 내가 시장 신발이라 부르는 신발들은 허름한 지하 공장에서 낡은 미싱으로 마구 찍어내는 신발을 말한다. 재질도 형편 없어서 조금만 신어도 비닐 껍질이 일어난다. 박음질도 엉망, 축구 몇 번 하고 나면 발가락이 나올 정도로 처참하게 찢어지는 경우도 흔했다. 신발을 자주 뜯어 먹는다고 타박을 들었는데, 오래 신는 방법은 신발을 신고 걷기만 할 뿐 어떤 놀이나 운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신발을 사야 했다.


타이거는 달랐다. 친구들이 타이거 슈즈를 신고 운동장을 달릴 때면 힘찬 발굽으로 들판을 내달리는 버팔로처럼 보였다. 타이거는 인조 가죽으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강했다. 거기다 나는 브랜드의 힘도 알고 있었다. 타이거 슈즈를 신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 눈빛이 달라질 것이었다. 나는 그걸 사달라고 떼를 썼다. 딱 내 발 크기에 맞아 보이는 하늘색 타이거 슈즈가 눈앞에 있었다. 그걸 보고서, 얄궂은 비닐 재질로 마감된 시장 신발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가격 차이가 제법 컸다. 시장 신발은 7천 원, 타이거 슈즈는 2만 몇 천 원이었다. 당시 콩나물 가격이 한 봉지에 몇 백 원 하던 때다. 2만 몇 천원이면 일주일 식구들의 식대나 다름 없었다.


나는 어머니와 합리적인 협상을 벌였다. 싸구려 시장 신발을 사서 몇 개월 신고 버리느니 튼튼한 신발을 사서 오래 신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제법 합리적으로 들렸다. 언제나 내 신발은 구멍이 나 있거나 찢어져 있었다. 어머니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버팔로 가죽처럼 튼튼해 보이는 타이거 슈즈를 사는 데 동의했다. 대신에 조건이 있었다. 튼튼하고 오래 신는 신발이니까 한 치수 아니 두 치수 큰 것으로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운동화 줄만 꽉 맨다면 큰 신발도 내 발에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의 협상은 가결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브랜드 신발을 가진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 신발은 호랑이 무늬처럼 검정색 줄무늬 세 개가 또렷하게 새겨진 종이 상자에 포장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타이거 슈즈 운동화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골목 축구를 하기 위해 원정 경기를 떠났다.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마을에 축구하기 좋은 골목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우리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차지하고 놀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골목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장을 쓰려면 1~2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타이거 슈즈를 신고서 신나게 골목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내 운동화는 절대로 찢어지거나 터지는 일이 없다. 이게 어떤 건데, 인조 가죽으로 만들어진 타이거 슈즈가 아닌가. 나는 힘차게 뛰었고 슟도 엄청 세게 날렸다. 문제는 그 힘찬 슟 때문에 벌어졌다.


기분 좋게 한 번 슟을 날렸는데 운동화가 발에서 벗겨져 어느 집 담장을 넘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오래 신으라고 두 치수 큰 운동화를 산 게 화근이었다. 운동화를 산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오른쪽 신발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 집 철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밤이 되었는데도 그 집은 불이 켜지지 않고 사람들도 들락거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 혼자만 덩그렇게 불 꺼진 집 앞에 있었다. 결국 나는 운동화 한 짝만 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절뚝거리는 발로 울면서 걸어 갔던 기억이 난다.


운동화 한 짝을 잃어 버렸다는 말은 저녁밥을 먹고 한참 있다가 꺼냈다. 그 사이 나는 재빨리 더러운 양말을 벗고 발을 씻었다. 저녁 먹는 내내 울상으로 앉아 있어 누나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말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밥상머리에서 꾸중을 듣고 싶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밥상이 치워졌을 때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당시 아버지는 석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석탄 난로를 때는 학교며 병원에 석탄을 마대자루에 담아 공급하는 일이었다. 2만 몇 천 원은 당시 아버지 일당으로 며칠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을 것이다. 그 돈을 홀랑 날려 먹은 것이다. 신발 한 짝은 어디 가서 쓸 데도 없었다. 당장 내일이면 나는 낡은 비닐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야 할 판이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내가 한 번 더 길게 설명을 했다. 내가 어떻게 요리조리 슟을 했는지도 말했다. 그리고 신발이 두 치수 큰 것도 말씀 드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편하게 앉아, 그 말씀만 하셨다. 그날 밤 잠들면서까지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신발은 내게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침묵이 너무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게 얼마 짜린데 라는 말을 골백 번도 더 했다. 다시는 비싼 신발 사 주나 봐라, 그런 말씀도 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지금 당장 그 집 가서 신발 찾아 오라는 말씀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정말로 그래야 하나 망설였다. 시간이 밤 11시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침묵은 꾸중보다 무거웠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돈의 무게를 배웠다.


어머니는 다음 날 하교 후에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찾아 갔다. 전날과 달리 집에는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 소리도 났다. 어머니는 철문을 두드리고 사람을 불렀다.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어 주었다. 어머니는 신발 한 짝이 혹시 이 집에 없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골목에서 축구를 하다가 신발이 벗겨져, 그러니까 신발이 날아가 그 집 댁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면 들어와서 찾아 보슈, 하고 말했다. 어머니와 나는 대문을 지나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머니 손을 놓고서 집안 여기저기를 수색했다. 하지만 신발은 없었다. 할머니 외에도 다른 가족들이 나와 어수선한 마당을 불편한 심기로 쳐다 보았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들어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 때에야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이 있었다. 신발이 그 집으로 날아 들었다면 연못으로 빠졌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난감한 일이었다. 날은 어두웠고 연못에는 징그럽게 생긴 잉어들이 가득했다. 깊이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들어가면 허리께를 넘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어머니가 연못으로 들어갔다. 한 켤레에 이만 원이니까 한 짝이면 만 원 짜리 신발이다. 입고 온 치마 뿐 아니라 블라우스까지 다 젖었다. 상체를 숙여 혼탁한 연못을 뒤지느라 온몸이 물에 젖었다. 때는 11월이었고 날이 차가웠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연못을 들쑤셨다. 잉어들이 놀라 수면 위로 풀쩍 뛰어 올랐다. 그 집안 사람들은 뭔 일이 단단히 났나 보다 하고 그 광경을 지켜 보았다. 신발을 발견한 장소는 연못 안도 아니었고 어머니도 아니었다. 그 집 꼬마 아이가 저기 있다, 하면서 풀숲 아래에 곱게 놓인 신발을 가리켰다.


그렇게 해서 내 타이거 슈즈는 무사히 내 발에 다시 신겨졌다. 집으로 다시 삼 사십 분을 걸어 가면서 어머니는 오돌돌 떨었다. 치아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온갖 욕을 해대면서, 두 번 다시 비싼 신발 사 주나 봐라 하시면서 떨면서 집으로 갔다. 나는 그 타이거 슈즈를 삼 년 넘게 신었던 기억이 난다. 작아서 더 이상 못 신을 때까지 신었다.


사내 아이들 운동화에서는 발냄새가 심하게 난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다녀서일 게다. 인생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는 발에서 나는 발냄새와 운동화가 닳아 교체되는 주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어서는 발냄새가 나지 않는다. 신발이 닳아서 교체하는 경우도 드물다. 낡고 오래 돼서 바꾸는 거지 신발이 닳거나 터지거나 찢어져서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지금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 발냄새가 오죽 심해야지!


너의 운동화에는 가끔 피로가 묻어 있기도 하다. 구겨진 채로 벗어 놓고 들어간 운동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네 운동화는 소년의 세계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세계를 조용히 열어 보인다. 그 신발 안에는 긴장된 시험 시간과 친구와의 웃음, 부모의 기대와 스스로의 불안이 함께 눌려 있다. 네 운동화는 도시의 먼지와 함께 너의 하루를 짊어지고 있다.


밑창의 닳음은 단순한 마모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의 마찰이다.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너는 얼마나 피로했을까. 학교와 학원과 길바닥을 걸어 다니며 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지금 보내는 네 절정기가 운동화 바닥에서 닳고 있을 때 너는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찼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운동화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신발은 너를 대신해 말하고 있다. 소년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운동화는 이미 너의 세계를 증언한다. 그것은 네가 지나온 길과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함께 품고 있다.


사람의 존재는 추상 속에 있지 않다. 그는 길 위에 있다. 밟히고, 더러워지고, 닳아가면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운동화는 그 닳음 속에서 사춘기의 진실을 보여 준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불안하고, 그러나 걷고 있기에 살아 있는 존재, 그가 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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