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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무종교 국가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통계만 보면 그렇게 보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종교 항목은 10년마다 조사) 무종교 비율은 56.1%다.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은 분명 무종교 사회다.
이 수치를 외국 사람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의아해한다. 어떻게 절반이 넘는 사람이 종교가 없을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그들에게 종교는 여전히 삶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정말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종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종교를 교회나 절, 성당 같은 ‘형식’으로만 바라본다. 그 공간에 가지 않으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를 형식이 아니라 ‘기능’으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종교의 핵심 기능은 무엇인가. 불안을 줄이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을 때 가장 불안해진다. 그리고 그 불안을 견디기 위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확신을 만든다.
이 구조를 이해하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는 선택이 아니었다. 삶 그 자체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신의 노여움 때문이었고, 풍년이 들면 신의 은혜 때문이었다. 자연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고, 그 불확실성을 설명해 주는 유일한 방식이 종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냈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신공양이다.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신공양은 미신이 아니었다. 그 시대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자연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도 남아 있다. 한국의 고전 『심청전』을 떠올려 보자.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효의 이야기로 배운다. 그러나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바다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인신공양의 구조가 깔려 있다. 이야기의 겉은 도덕이지만, 그 밑에는 종교적 희생이라는 오래된 방식이 흐르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해 온 방식이다.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질병의 원인을 알고, 날씨를 예측하고, 우주의 구조까지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이제 인간은 종교를 벗어났다고.
그런데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한 장면이 보인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 사람들, 불안할 때 사주를 보는 사람들,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이 여전히 반복된다. 우리나라 무속 시장 규모가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종교가 사라지고 있다면,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서 하나의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종교를 버리지 않는다. 단지 형태를 바꾼다.
과거에는 신전과 제사였고, 이후에는 교회와 성당이었으며, 지금은 점집과 다양한 형태의 믿음으로 나타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능은 그대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정말 종교와 무관한 것일까.
당신의 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원자의 대부분은 비어 있다. 즉, 우리는 사실상 텅 빈 구조로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것을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과학 교과서와 이론을 신뢰하고, 그 설명을 받아들인다. 물론 과학은 검증 가능한 체계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믿음이다. 어쩌면 과학은 가장 과격한 형태의 믿음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믿음의 대상을 바꿀 뿐이다. 과거에는 신을 믿었고, 이후에는 이성을 믿었으며, 지금은 과학과 데이터, 그리고 다양한 확신을 믿는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그래서 무종교라는 말은 조금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종교 형식이 약해진 것일 뿐이다. 인간은 여전히 불안을 느끼고, 여전히 확신을 필요로 하며, 여전히 무엇인가를 믿는다.
오히려 지금은 그 필요가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더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다. 경제는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예측을 넘어가며, 미래는 점점 더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확신은 줄어든다.
이 상황에서 인간은 다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점을 보고, 어떤 사람은 특정한 이념을 믿고, 어떤 사람은 자기계발이나 투자 이론에 삶을 건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하나의 공통된 구조가 있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믿음.
그래서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다양한 형태로 확산된다. 우리는 그것을 종교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는 정말 무종교 국가일까.
아마도 정답은 이것에 가깝다. 우리는 종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종교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