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조종하는 게 따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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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우리는 역사를 인간이 만든다고 믿는다. 위대한 왕과 정치가, 혁명가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역사는 인간의 의지로만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7세기로 돌아가 보자. 이 시기 세계는 이상한 변화를 겪는다. 날씨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은 길어지고 여름은 짧아졌으며, 기온은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우리는 이 시기를 ‘소빙하기’라고 부른다. 소빙하기는 약 14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지만, 특히 17세기에 그 영향이 가장 극심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기후 변화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날씨가 바뀌자 농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수확량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 결과 식량이 부족해진다. 그리고 식량 부족은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연구가 등장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곡물 가격의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분석했다. 그는 밀 가격 데이터를 통해 이 시기 유럽 전역에서 식량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음을 밝혀낸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가격을 움직이고, 가격이 인간의 삶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날씨 → 농업 → 가격 → 사회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은 점점 불안정한 상태로 들어간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굶주리기 시작한다. 이유도 모른 채 수확이 줄어드는 현실을 지켜봐야 했다. 굶주림은 분노를 낳고, 그 분노는 폭동과 전쟁, 혁명으로 이어진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사회 불안이 급격히 증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30년 전쟁(1618~1648)이다. 종교 전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과 기후 위기가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이 흐름은 유럽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한다. 기후 악화로 농업이 붕괴되고, 농민 반란이 이어지면서 결국 왕조가 무너진다.


조선에서도 기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의 기록에는 특이한 장면이 등장한다. 조선의 왕 인조가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넜다는 기록이다. 오늘날의 한강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사람이 걸어서 건널 만큼 얼지 않는다. 이 기록은 단순한 전쟁 장면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혹독한 기후를 보여 주는 증거다. 조선 역시 소빙하기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다. 기후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유럽에서 시작된 변화는 중국과 조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람들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흔든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원인을 찾기 시작하지만, 기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대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책임을 돌리는 일이 반복된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반드시 원인을 만들어 내고, 그 원인은 종종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다.


이처럼 소빙하기는 단순한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 질서를 흔든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환경이다.

날씨가 바뀌자

경제가 흔들렸고,

경제가 흔들리자

사회가 무너졌으며,

사회가 무너지자

정치가 바뀌었다.


이 흐름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기후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상 기후, 폭염, 가뭄, 홍수는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농산물 가격을 흔들고, 에너지 수요를 바꾸며, 국가 간 갈등을 유발한다. 이미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국제 시장이 흔들리고,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경제 지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환경의 흐름을 함께 읽어야 한다. 역사는 분명하게 말해 준다. 날씨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역사를 인간이 만든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 자체가 하나의 착각은 아닐까?


우리는 기후를 ‘배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말 배경일까? 아니면 우리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아닐까?


우리는 경제를 분석하고, 정책을 논의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하지만 그 모든 판단이 이미 주어진 환경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바로 그 외면이야말로 지금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가장 강력한 조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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