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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May 19. 2020

오디세우스의 딜레마

아빠 인문학

미안하다. 이번에도 아빠는 금연에 실패했구나. 그래도 이번에는 한 달을 갔으니 작심‘삼일’은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왜 결심한 바를 꾸준히 실천하지 못할까? 오늘은 아빠의 작심삼일을 변명해 보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잘 나갔던 영웅 중에 오디세우스라는 사람이 있어. 평생 전쟁터를 돌아다닌 영웅이었지. 이 사람이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서사시가 ‘오디세이아’(오디세우스의 노래)란다. 우리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탔어. 노 젓는 선원들과 함께 귀향의 설레임이 대단했겠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한 섬을 지나쳐야 했는데 여기에 사악한 인어, 세이렌 살고 있다는 거야. 그래 맞아.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인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반인반어. 세이렌은 노래의 신 뮤즈의 딸로 알려져 있어. 그러니 얼마나 목소리가 예뻤겠니. (에에엥, 하고 울리는 싸이렌 소리는 이 세이렌에서 유래된 말이야.) 거기다 상반신만 보면 완전 역대급이야. (아래쪽 지느러미를 보면 좀 당혹스럽겠지만.) 그 섬을 지나가면 밤낮없이 노래하는 세이렌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떤 뱃사람도 버틸 수가 없지. 귓속을 공명하는 유혹의 노래에 이끌려 노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거야. 어떤 뱃사람도 그 유혹의 힘을 이긴 적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했더랬지. 



하지만 우리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어떤 사람이냐. 전쟁터에서 숱한 적장의 목을 베고도 모자라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간교한 술수로 속여 살아남았고, 허다한 그리스 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각종 혜택을 누렸으며, 에, 또, 어쨌거나 그리스 일대에 용맹과 지혜로 소문 난... 그런 영웅장수가 아니더냐.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이 난관을 이겨낼 묘책을 찾아낸 거야. 그는 선원들의 귀를 틀어막기로 했어. 노랫소리를 차단하면 세이렌이 아무리 강력한 유혹 마력을 쓰더라도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역시 오디세우스는 발상이 기발하단 말이야. 그는 강력 접착제로 유명한 밀랍을 준비했지. (밀랍은 벌집을 녹여서 만든단다.) 드디어 세이렌 섬이 보이기 시작하자 오디세우스가 자기 선원들에게 말했어.


“잘 들어라. 이제 곧 우리는 세이렌 섬을 통과하게 된다. 모두들 준비한 밀랍을 귀에 발라라. 그리고 내 몸을 이 돛대에 묶어다오. 내 힘으로 풀 수 없게 단단히 묶어야 한다. 만약 내가 포박을 풀고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거든 나를 칼로 베어 죽여라. 저 추악한 인어들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오, 저 비장한 각오를 보라!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우리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섬을 무사히 통과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 


여기서 우리는 작심삼일의 신화적 기원을 확인할 수 있어. 왜 우리의 결심은 삼일을 버티고 무너질까.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뭘까. 게임에 빠지면 정신이 병든다는 걸 알면서도 게임을 하는 이유, 운동이 좋은 걸 알지만 헬스장 이용권 끊어 놓고 딱 3일 가고 안 가는 이유, 그건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 낼 자신이 없었던 오디세우스의 처지와 똑 같아. 


따지고 보면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에 맞서 이긴 게 아니야. 그는 그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과 노랫소리를 뿌리칠 자신이 없었을 거야. 자신이 아무리 용맹한 장수라 해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았던 거지.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세이렌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을 거야.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스스로의 몸을 돛대에 묵어 버린 거지. 



어떤 심리학자가 오디세우스의 딜레마를 일컬어 ‘의지의 박약’이라고 했어.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떤 게 좋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어. 굳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다 알아. 금연이 몸에 좋다는 거,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좋다는 거, 게임 안 하는 게 좋다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어. 하지만 왜 우리는 그 좋은 행동을 지속하지 못하느냐, 그건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럼 강한 의지를 가지면 해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세이렌의 유혹이 너무 강하거든. 우리의 의지보다 유혹의 크기가 더 세다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의지로 맞서기 어려울 때는 오디세우스가 썼던 방법을 써야 해. 자기 몸을 돛대에 묶는 거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빠는 중학교 때 지각대장이었단다. (그것도 유전인진 모르겠다만 너도 지각을 꽤 많이 하더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아빠는 옆에 앉은 친구에게 말했어. 


“앞으로 지각할 때마다 너한테 500원 줄게.”


친구 녀석은 좋아라 했지.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500원은 상당한 액수였다. 덕분에 걔는 쏠쏠하게 재미 좀 봤고. 그 후에 내가 다시 지각을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말자. 500원이라는 판돈의 크기와 강도가 내 의지를 움직일 만큼 강했는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건 내가 나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다는 거 아니겠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빠는 오디세우스의 돛대를 많이 활용했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물을 많이 먹고 잔다든지,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헬스장 사물함에 회사의 중요서류를 넣어 두고 간다든지, 영어 회화 새벽반에 다니려고 새벽까지 잠을 안 잔다든지... 이게 다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들이란다. 


때로는 우리 몸을 돛대에 묶을 필요가 있어. 어떤 일을 해내려면 결국 의지가 약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거든. 

앞으로 담배 한 개비 피울 때마다 너한테 만원씩 줄게. 그럼, 믿어도 좋아. 아빠는 스스로의 합리적 판단으로 담배를 끊을 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단다. 간교한 오디세우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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