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Philharmonic Orchestra '16 Season
서울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1월 9일 (토)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 conductor
바이올린 최예은 Ye-Eun Choi, violin
프로그램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Mendelssohn, Violin Concerto, Op.64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노박 에디션) Bruckner, Symphony No. 9 in D minor (Nowak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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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은 떠났지만 서울시향의 사운드는 여전했다. 아니, 거의 최고 수준의 연주력을 보여준 모든 단원들에게 힘껏 박수를 보내고 왔다. 세종문화회관의 악명높은 음향에도 불구하고 연주의 울림은 깊었으며 브루크너 교향곡의 거칠고도 고요한 음악을 정말 잘 표현한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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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의 빈자리는 부악장 웨인 린으로 문제없이 메워졌다. 루세브(바이올린), 바티(트럼펫), 페리숑(팀파니) 3대장이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걱정이 앞섰지만, 결론은 걱정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수준높은 소리를 빚어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시향의 역량이고 어디까지가 거장 에셴바흐의 영향력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에셴바흐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관객을 향해 "모든 고요의 순간- 지휘자의 등장이든, 악장 간 숨고르기이든, 곡이 끝난뒤의 여운이든- 은 길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듯 했고 실제로 그가 연출한 그 모든 고요한 순간들은 브루크너 9번의 고집스러움, 엄격함,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긴 인내의 시간을 연출하기에 더없이 적격이었다. 또한 평소의 서울시향의 배치와는 다르게,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이 마주보고, 그 사이를 첼로와 비올라가 채우는 형태로, 층층이 쌓아올린 사운드로 오케스트레이션에 '악기의 왕' 오르간 색채를 투영한 (그 자신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브루크너식 음악적 지향점을 잘 드러냈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1바이올린,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까지 모든 현악기군이 일정수준 이상의 퀄리티 사운드를 뽑아내므로 가능한 일이다. 현재 기준 서울시향의 현은 가히 최고의 클래스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2악장 야성 트리오(!!)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3악장은 들쑥날쑥 기억되는 경우가 많은데, 에셴바흐와 서울시향은 3악장까지 흔들리지 않는-오히려 더 또렷해진 음악으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오보에와 트롬본이 번갈아 나를 놀라게 했는데, 소리가 뻗지 못하는 세종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오보에의 음색을 만든 이미성 수석의 엄청난 연주에 놀랐고, (전반적으로 금관이 다 날카롭게 표현되긴 했으나) 트롬본의 망설임 없는 공격적 질주에 놀랐다. 시향 최대의 약점이 금관인지라 (물론 트럼펫의 알렉상드르 바티 는 항상 열외) '기량에 자신이 없으니 소리가 흔들린다'는 악순환이 그간 종종 목격되었고 자연히 관객은 가슴을 졸일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바티 없이도 어느정도는 한다'를 보여준 것 같다. 각 악기가 내는 음들이 불협을 이루며 너무나 숭고하게 끝맺는 엔딩 역시, 명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드리앙 페리숑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묘령의(!) 팀파니스트는 최근 시향의 팀파니를 친 모든 사람 중 제일 섬세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지휘자로 커리어를 전향한 듯한 페뤼숑 대신, 종종 와서 연주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예정된 말러 6번에라도. 물론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이룩한 지난 10년간의 성취는 변함없이 축하할 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악단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 예술감독의 역할이라고 강조해 왔으니, 그 때의 '미래'가 곧 현실이 된 요즘 역시 전 예술감독의 유산 중 하나일테다. 또한 그가 부재할 때도 많은 객원 지휘자들과 훌륭한 연주를 자주 보여줬던 시향이 아닌가.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악단을 변함없이 지켜보기로 다짐한 나에게, 이번 시즌 첫 연주회는 '감사'와 '만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