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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Oct 30. 2016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죽음

서울 택시_시청

아침 이른 시각에 잡힌 외부 미팅 일정으로, 집에서 외근지로 직출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버스를 잡아 타고, 자주 가는 커뮤니티의 최근 글들을 한번에 모아주는 앱을 켜고 한바탕 눈팅을 하던 중,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부산에서 사망한 채 발견' 이라는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이상한 예감으로 글을 확인했다. 31살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회를 위해 부산에 갔는데, 밤 늦은 시각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두었단다. 천재로 유명했고, 마스터 클래스를 활발히 진행했으며, 한 학교의 교수로 있다고 하였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 황급히 구글을 켜 그의 나이를 확인했다. 그는 서른 둘이었다. 아니겠지, 하고 다른 게시물들로 관심을 옮겼다.


배차 확인 전화를 주신 기사님은 예의바르셨다. 안녕하세요, 카카오택시입니다. 어디쯤에 계십니까, 라고 공손하게 위치를 물으셨다. 승차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외근지에서 회사까지는 꽤 먼 거리다. 30분이 훌쩍 넘어갈 것이다. 모바일 브라우저를 열고, 혹시 오늘 오전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누구일지, 추가 보도가 있을까 싶어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였다. 정적이 흐르뎐 택시에서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생상스의 이중주였다. 클래식 FM이구나.. 슬픈 예감에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포털 사이트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접했고,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떠올렸던 그 이름이 맞았다.


평소 바이올린 연주를 자주 찾아듣지 않기에 그의 연주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뚜렷이 알고 있었다. 고전음악을 즐겨 듣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가끔 그의 이름이 등장하곤 했었다. 디토 앙상블의 멤버였고, 방송에도 종종 출연하고, 소셜 미디어 활동도 꽤 활발히 하고,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많은 연주를 소화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내 관심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서 그는 아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게다. 그런 그가, 황망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젊음이란, 삶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비보를 접할 때마다 죽음은 조용히, 그리고 언제나 같이 있음을 느낀다. 그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내가 죽음보다는 삶과 젊음을 의식하듯, 그의 죽음 역시 단 한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가 가끔 특이한 발언을 했더라, 라고 말했을 뿐 그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가 등장하기로 한 연주회의 무수한 포스터를, 나는 일별하고는 그냥 지나쳐버리곤 했다.


추모 물결 속 그에 대한 증언은 한결같았다. 음악을, 연주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연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느때고 거절이 없었다고 한다. 과로로 인해 최근 수술을 받았고, 서두른 회복에 서두른 복귀.. 그리고 새벽 운전으로 부산에 당도하여, 불과 열 두세시간 전 소셜 미디어에 '인증샷'을 업로드한 그였다. 그가 입고 있던 옷 주머니에는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 완화를 위해 연주자들이 종종 복용하곤 하는 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 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긴장을 다스리는 약이 필요했던 그는, 그래..나와 동갑인 젊은 연주자였다.


택시에 흐르던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그의 연주였다. 클래식 FM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었다. 조용히 운전에 집중하고 계시던 기사님께, 용기를 내 말을 걸어 보았다.

나_"기사님, 혹시 고전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기사님_"아.. 예, 운전하면서 라디오로 자주..듣습니다."

나_"젋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죽었다고 하네요..조금전 들은 그 바이올린이 그의 연주였습니다."

기사님_"그렇습니까? 저런..안타깝네요. 혹시 이 청년, 교향악 축제에서도 연주하지 않았나요?"

나_"워낙 많은 무대에 섰다고 하니까요, 교향악 축제에도 몇번 연주했을 거예요."

기사님_"아...안타깝군요... 몇살이나 되었답니까?"

나_"서른 둘이라고 하네요."

기사님_"생떼같은 젊음이... 아휴, 조용히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기사님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 무관심의 침묵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의 표정은 침통했다. 정중한 기사님을 만났고, 그의 생전 연주 음악을 들으며, 그를 떠올리며 추모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조용히 떠올리고, 명복을 빌었으리라. 애통하다, 애닯다. 그곳에서는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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