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클덕에게 바치는 사랑과 경배의 헌사
많은 이들에게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라는 오케스트라 이름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이름을 듣고 아! 그사람! 할 만한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드물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 나아가 실황 연주를 종종 찾는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마리스 얀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닥터 스트레인지 정도? 혹은, 마리스 얀손스는 버락 오바마이고,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미합중국 정도..? 이견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내 세계관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잠깐 고백하자면 나는 부천필과 교향악축제로 오케스트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으로 완전한 포로가 되었으며, 정명훈의 서울시향으로 영혼까지 저당잡혔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느냐 하면, 어둡고, 고독하고, 철저하게 아름다운 사운드이다. 단순함의 미학, 그 단순함이 있기까지 수없이 처내고 다듬어야 하는 장인의 손길, 그리고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입증한 것은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 덕분일 것이다.
부지런함과 끈기의 대명사격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어찌보면 미디어적으로 가장 풍부한 리소스의 방송 교향악단의 만남은 수많은 명연 레코딩을 그야말로 '쏟아내는' 중이다. 설마 있을까? 하는 곡은 대부분 BR로고를 달고 발행되었다. 뮌헨에서의 실황은 거의 대부분 녹음,녹화되는 것 같다.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악단과 이 지휘자의 특기할 만한 또다른 점은 엄청난 열정으로 전용 콘서트홀을 위해 말그대로 '투쟁'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레지덴츠 궁전의 헤르쿨레잘 이라는 1,200석 가량의 작은 홀을 사용하고 있는데, 살짝 과장하여 비유하자면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연주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 새로운 홀이 정말 필요하다. 주변의 다른 홀이 없냐고 묻는다면, 뮌헨 필하모닉이 상주하고 있는 가스타이그를 빌려 쓴다고는 하나 더부살이 신세에 음향마저 엉망똥망이라고 한다. (서울시내 모처의 한 회관이 떠오른다) 따라서 이들은 스스로가 이룩한 높은 음악적 성취를 커뮤니티에 환원하고, 바바리아 지역의 음악적, 문화적 위상을 더 한층 끌어올리기 위하여 새로운 콘서트홀을 짓게 해달라고 뮌헨시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며 이를 리드하는 사람은 일흔살이 훌쩍 넘으신 마에스트로다. 마리스 얀손스는 이 청원에 집중하기 위하여 또하나의 먼치킨 오케스트라,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포지션을 포기하면서까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에 헌신하고 있으며...자신이 받은 상금마저 이 홀을 짓는 데에 보태라며 쾌척하였으나... 한번 단호박 빼박 실패하였고, 모두가 울었고, 이것이 클래식 음악의 현실이자 자본주의와 현대 행정의 예술에 대한 몰이해라며 있는대로 울고 불었는데... 어? 뭔가 되고 있다고 한다. 마리스 얀손스가 인터뷰에서 희망이 있다고 밝혔고! 안네 조피 무터까지 이를 서포트한다고 하더니, 정신놓고 있는 사이(?) '17년을 목표로 건립이 추진되나 싶다. 암튼 귀추가 주목된다.
별로 트리비아에 관심없는 내가 이정도까지 이 악단의 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이들을 사랑한다는 반증이며, 몹시 당연하게도 이들의 내한 연주는 필참 압참 쾌참일테다. 그런데 출장이..출장이
어쨌든 이를 악물고 나는 수화물도 찾지 아니하고 맨몸으로 달려 달려가 겨우 겨우 이 악단의 내한공연 중 두번째 날의, 2부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이었다. 산에 올라 자연을 만나고 길을 잃고 자연의 무지막지한 횡포에 무릎을 꿇다가 너그러워진 궁극의 자연에 서서히 물아일체를 이루는 번다한 여정을 담은 곡이다. 세심하고 세심하게 악구를 매만지는 마리스 얀손스는 어떤 곡이 주어져도 명연을 탄생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얼마만큼의 완성도와 정성을 가지고 발현해 내느냐는 오케스트라에 달려있다. 그리고 바이에른 방송 오케스트라는 절대로 허투른 1초라도 무대위에 올리는 법이 없는 성실우직한 악단이다. 결과는 당연히 .. 뭐
음악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기본적으로 이 악단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견고하고, 사운드에는 꾸밈이 없다. 소리가 건조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빈필의 차르르한 음색이 탑클래스로 세공된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이라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음색은 무두질을 엄청나게 해서 길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든 두터운 가죽 느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엄청난 기교를 절대 과장하지 않음으로서 발현되는 따뜻함이다. 이 악단은 분명히 최상급의 연주를 들려주시만, 청중을 압도한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경외감, 그것을 한없이 탐구하는 태도로서의 겸손함 때문일 것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음표와 악구를 매만지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은 가끔씩 성직자 같이 보이기까지 한다.
알프스 교향곡은 모든 악기들이 알프스를 묘사하는데에 최선을 다했다. 깎아지른 산세도, 그 사이를 파고드는 황금빛 햇살도, 드넓게 펼쳐진 눈의 평원도, 알 길없이 투명한 하늘도 다 있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화와 이를 받아들이고 동화하는 산 속 사람들도 있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일몰이 흰 산등성이를 더없이 아름답게 물들였다. 알프스는 아주 생생했고 심지어 콘서트홀의 공기마저 상쾌해지는 듯 했다. 스무대의 호른과 탐탐, 윈드머신, 선더머신, 카우벨 등 다채로운 타악기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이 악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주 전 경이롭기까지 한 빈필의 음악에 혼비백산 하였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아름답고 숭고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나는 더욱 좋다. 그냥 난 다보탑과 석가탑 중 석가탑을 더 좋아하고, 꽃향기 가득한 코케보다는 단정하고 구수하기까지 한 만델링 커피를 좋아한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성가득한 연주로 내한시마다 큰 감동을 주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주는 이 땅의 클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헌사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그 자신 떳떳하고, 끝 간데 없이 음악을 숭배하는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