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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Nov 25. 2024

나콘파톰 푸타몬톤 살라야

태국 어디 사세요?


     2024년 9월 1일 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밤 시간 인지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코끝으로 독특한 냄새를 느끼며 눈으로는 이국적인 실내 건축을 살폈다. 낯선 나라 공항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우리를 초대해 준 프래우 교수가 큰 밴을 가지고 마중 나왔다. 그녀는 방콕 마히돌대학교 교수이다. 남편의 은퇴를 앞두고 ‘은퇴 후에는 어디에서 살까?’를 고민하던 중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남편은 고무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전 세계 천연고무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 태국은 세계 최대 천연고무 생산국이다.


'이 기회에 태국에서 살아볼까?'


우리는 태국에 대해 전혀 아는 것 없이 태국어를 한마디도 못 한 채 방콕 1년살이를 시작했다.            


우리 집은 방콕에서 서쪽으로 40분 정도 떨어진 나콘파톰주 푸타몬톤군 살라야에 있다. 서울과 비교하면 경기도 부천쯤 되는 곳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묻는다.

“태국 어디 사세요?”

“나콘파톤주 푸타몬톤군 살라야에 살아요.”

태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말한다.

“방콕의 서쪽 경계 지역이에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했다.      

“방콕 안 사는데 방콕 사는 이야기”      

살라야는 약간 시골이기 때문에 모든 생활권은 방콕이다.


집으로 들어온 뒤, 바로 지리와 교통을 파악하기 위해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니며 정보를 구했다.      

제일 먼저 한국문화원에 갔다. 방콕의 한복판인 수쿰빗 한인타운에 있었다. 2층에는 조그마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책이 많지는 않았다. 보증금으로 500밧(2만 원)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면 탈퇴할 때 돈을 돌려준다고 한다. 바로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뒤여서 이곳 문화원에서도 한강 작가의 책을 주문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테니 언제 내 차례가 올진 모르겠다. 문화원 도서관에 있는 책 중 <태국 이야기>라는 작은 책 한 권을 빌려왔다. 2주 후에 반납하면 된다. 문화원은 태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곳이니 가끔 문화행사가 있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문화원을 나와 한참 걸어 재태국한인회에 들렀다. 사무국장님께 내 소개를 했다.

“태국에 온 지 한 달 되었어요. 1년 살 다 돌아갈 예정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자원활동 등 어떤 일이든 좋아요.”

사무국장은 KOWIN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을 소개해 주고 회장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했다. 회장님은 한국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이어서 다음 주 일요일에 점심 식사를 하러 겠다고 약속했다. 한인회를 나오며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태국 교민 잡지 한 권을 가지고 왔다. 밤새 자세히 읽어보았다. 태국의 생생한 현재 뉴스와 상식, 한국식당, 법률변호사, 여행사 등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교민 잡지는 2주에 한 번씩 발행되고 있었다.


최고의 밥상


처음에는 태국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특히 우리는 실란트로, 루꼴라(아르 굴라), 바질 같은 향신료를 좋아했기 때문에 완전 맞춤 음식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하루 세끼 태국 음식을 먹으니 힘들었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친구가 맛있게 담아 소중하게 싸 준 된장과 고추장 통을 열었다. 멸치 육수를 내고 호박과 두부를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에 침이 고였다. 된장국과 마크로 (태국 대형마트)에서 산 ‘비비고 김치’, 고추장에 찍어 먹는 로메인 상추가 반찬의 전부였지만 태국에서 처음 먹는 한식은 최고의 맛이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역시 음식은 한식이 최고야.”

두 달이 다 된 지금도 우리는 된장국을 제일 좋아한다. 된장을 아껴 먹어야 한다.


깜깜한 이른 새벽, 창밖에는 온갖 새들이 지저귄다. 새들이 아주 많아서 집을 빙 둘러 그물망을 쳐놓았다. 새들이 들어와서 집을 짓고, 똥을 싸고,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벽을 여는 소리


‘싸르락 싹 싸르락 싹~~~’  

싸리 빗자루 비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알람 소리 없이도 우리는 눈이 떠진다. 침대에 누워 방콕 쪽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끝없이 넓은 하늘에 붉은빛이 서서히 퍼져나가며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커다랗고 새빨간 해는 1초가 다르게 쑥쑥 올라온다. 붉은빛의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은 듯 온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집 주위에는 높은 산과 건물이 없다. 그래서 아침 해는 더 크고 더 웅장하다.   

해돋이를 보고 남편과 아침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선다.


떠오르는 해


부지런한 태국 사람들은 새벽 여섯 시면 빗자루로 마당을 쓸며 아침을 시작한다. 벌써 출근해서 콘도 마당을 쓸고 있던 청소부 아주머니가 수줍은 미소로 인사한다.

“사왓디 카?”(안녕하세요?)

우리도 같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인사한다.

“사왓디 카?”(안녕하세요?)

웃는 얼굴이 참 순수하다. 태국말을 할 줄 알면 좀 더 대화를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우리는 오늘도 방콕에 안 사는데 방콕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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