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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5색 ep10

우리는 모두 달라요 MBTI

by 루미상지

얼마 전부터 휴대폰이 말썽을 부렸다.

사진을 찍으니 용량이 부족해 찍을 수 없다고 한다. 한자 앱을 깔려니 또 용량이 부족해 깔 수 없다고 나온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휴대폰 때문에 정말 화가 나요. 얘도 내가 기계치라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남편은 웃으며 말한다.

“화부터 내지 말고 잘 들어봐요. 당신 휴대폰 용량이 적은데 너무 많이 저장되어 있대. 그러니 사진을 당신 개인 드라이브로 옮기는 게 좋겠어.”


남편은 바로 드라이브로 옮기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간단한 줄 알았던 설명은 길어지고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원리부터 쉽게 설명해 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남편은 설명하는 중간중간 내가 이해를 잘하는지 묻기까지 한다. 내 머릿속은 멍해졌다. 남편의 직업은 과학 선생님이다.

‘도대체 내가 왜 복잡한 원리까지 알아야 하는 거지?’

남편의 물음에 내 대답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지루한 설명은 계속되었고 대충 “네, 네” 하고 대답해 버렸다. 마침내 긴 설명은 끝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었다.

며칠 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며 주말에 집에 온 큰딸에게 물어보았다.

“응, 엄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조금 있다 알려줄게요.”

큰딸은 잠깐이 아니라 다음 날 집을 떠날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고 그냥 가버렸다. 처음부터 큰딸은 그런 귀찮은 상황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다음 주, 막내아들이 집에 왔다. 아들은 심성이 착해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힘들어하면서도 다 들어준다. 아들에게 부탁하니 바로 그 자리에서 대답한다.

“네. 엄마 휴대폰 줘 보세요. 제가 해 드릴게요. 제가 하는 게 더 빨라요.”

“아들아, 해 주겠다니 고마운데 엄마는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배우고 싶어.”

시간 내서 알려줘 봐야 빨리 못 알아들을 게 뻔하니 직접 해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은 포기하고 용량이 많은 휴대폰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마지막으로 작은딸에게 부탁해 보았다.

“엄마, 미안해요. 지금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이것 먼저 끝내고 알려줄게요.”

그래 다들 귀찮고 바쁘겠지.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나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한참 뒤 작은딸이 다가와 나를 부른다.

“엄마, 휴대폰 가져와 보세요. 아, 이거 간단해요. 걱정 마세요.”

작은딸의 설명은 아주 명쾌하고 완벽하다. 깜빡 잊고 엉뚱한 걸 누르면 바로 물어본다.

“엄마 이걸 왜 눌렀어요?”

대답하면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해 준다.

“엄마, 다음엔 어디로 들어가야 해요? 맞아요. 잘했어요. 엄마가 틀린 곳은 수첩에 적어 놓고 다음에 혼자 할 때 참고하세요.”

다음에 나 혼자 할 때 방법까지 알려준다. 이런 선생님이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에게 칭찬까지 들으니 의기양양해졌고 휴대폰에 대해 자신감도 생겼다.

“이까짓 것 뭐 별거 아니네. 괜히 겁먹었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다. 삼 남매와 우리 부부, 같은 집에 살며 같은 음식을 먹지만 삶에 대한 방식도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남편은 시골 가난한 집에서 칠 남매의 작은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자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로지 공부밖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INTJ 남편은 과학 선생님이 되었다.

아버지가 은행원이셨던 나는 ESFP 명랑하고,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이들 셋은 한 몸에서 나왔지만 색깔은 모두 다르다. 외향적인 나를 보고 애들은 말한다.

“우리 엄마는 아프리카에 가서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프리카 아줌마 하고 수다 떨고 있을 거야.”

나를 닮아 명랑하고 사교적인 큰딸은 ENTP 문학을 좋아하고 재주도 많다. 특히 어학에 뛰어나 영어와 프랑스어, 일본어까지 한다. 책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패션에도 감각이 있어 패션 쪽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주 실리적이어서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아빠를 닮아 계획적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둘째 딸은 ISFJ 원칙주의자이다. 공부할 때도 딱 맞아떨어지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한다. 모든 일을 할 때면 계획을 세우고 완벽하게 준비한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 아빠처럼 선생님이나 연구원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획대로 하지 않거나 무질서한 것은 아주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큰 욕심이 없고 심성이 착한 아들은 INFJ다. 가슴이 따뜻하다. 어렵거나 힘들게 사는 불쌍한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동정심을 느끼고 가슴 아파한다. 불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은 아주 싫어한다. 동물을 좋아해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서로 자기 닮았다고 주장한다.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우리 가족은 따로 또 같이 모여 맛있는 비빔밥을 비비며 살고 있다.




10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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