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정원의 도시 싱가포르

by 루미상지


그녀가 돌아서고 기차는 떠났다.

텔록 아이어(Telok Ayer)역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던 그녀가 돌아섰다. 그녀의 손이 눈가로 향하던 순간 기차는 떠났다. 돌아섰던 그녀가 다시 뒤돌아서 손을 흔들며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우리와 3박 4일을 함께했던 그녀를 싱가포르에 홀로 남겨두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일 년 전 브런치에서 처음 만났다. 우연히 읽었던 그녀의 글들은 마음속 깊이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나랑 결이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남편과 내가 일 년 동안 태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할 날이 가까워졌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싱가포르에 꼭 다녀가라 했다. 싱가포르는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브런치에서만 알고 지내던 그녀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우리가 싱가포르에 가겠다고 결정하자, 그녀는 바로 3박 4일 일정의 여행 계획서를 짜서 보내주었다.


방콕에서 2시간 30분 비행해 싱가포르로 갔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누군가 저 멀리서 웃으며 달려왔다. 그때까지 그녀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였다. 남편과 내가 낯선 곳에서 헤맬까 걱정되었던 그녀가 역 안까지 마중 나온 것이다.



황여울 작가의 첫인상은 내가 글을 읽고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큰 키에 약간 마른 체형, 화장기 없이 꾸밈없는 얼굴, 당당하고 부드러운 미소, 그녀가 내게로 달려와 나를 안았다.

그녀는 가장 번화가인 오차드 거리에 있는 레지던스 호텔에 살고 있었다. 20년 동안 살던 집을 리모델링 중이어서 몇 달간 임시로 묶고 있다 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번화가 오차드 거리는 깨끗했다. 시내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의 도시답게 아름드리나무가 숲처럼 우거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화려한 백화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번화가에 있는 초록 숲을 보고 놀라자 우리가 서있던 오차드 거리 밑에도 화려한 지하상가가 있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매일 만났다. 그녀는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주며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같이 식사하고, 커피 마시고, 공원을 걸었다.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마냥 할 말이 많았다. 우리는 끝없이 얘기하고 맘껏 웃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여서 마리나 베이 샌즈를 중심으로 관광지가 몰려있었다.

마리나 베이 샌즈(MBS)는 우리나라 기업 쌍용건설이 공동건설에 참여해 2010년 6월 준공했다. 개장한 지 15년이 지난 MBS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싱가포르는 현재 2031년 완공을 목표로 확장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에 쌍용건설은 또 참여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단다. 그곳에서 먼저 유학 와 공부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미국에서 아들과 딸을 낳았다. 그 후 남편 직장을 따라 싱가포르로 이사해 줄곧 살고 있다.

그녀가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낳을 때 친정엄마는 사정이 생겨 오실 수 없었다. 아이를 낳은 뒤 첫 식사로 꼭 미역국이 먹고 싶었단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러 가기 전 직접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아기를 낳으면 남편이 바로 가져오기로 했단다. 하지만 그 미역국마저도 사정상 먹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첫 식사로 병원에서 나온 샌드위치와 차가운 주스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정을 브런치에 ‘미역국이 먹고 싶었는데’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머나먼 타국에서 혼자 아기를 낳고 미리 스스로 끓여놓은 미역국마저도 먹지 못했다니 마음이 아파 눈물을 훌쩍이며 읽었다.


그녀는 싱가포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잠깐 쉬고 있었고 나는 운이 좋았다. 그녀 덕분에 우리는 짧은 시간에 싱가포르의 주요 관광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글 속에서 읽었던 샤오롱바오 만두, 칠리 크랩, 생선국수 피시숲, 새우국수 호키엔미, 카야 토스트 등 맛있는 싱가포르 음식들을 모두 먹어보았다.

일정상 먹고 싶었던 크루아상을 못 먹게 되었을 때, 그녀는 아침 일찍 크루아상을 사들고 왔다. 우리는 야외 카페에서 느긋하게 크루아상으로 브런치를 먹었다.


마지막 날 밤, 가든스 바이더 베이에서 슈퍼 트리쇼를 보려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번개와 함께 쏟아졌다. 우리는 비를 피해 슈퍼 트리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피해야만 했다. 그때는 그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슈퍼 트리쇼 보다 비를 피해 움츠려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들의 모습이 더 뚜렷이 기억에 남는다.



나보다 한참 어린 그녀를 싱가포르역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올 때 마음이 아팠다. 기차에서 내려 그녀를 다시 한번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8월 말 방콕을 거쳐 한국으로 귀국했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주겠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 최고의 호박잎 쌈과 강된장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지금 그녀가 한국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 만나야만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만남으로도 운명적인 인연은 있다.

새초롬한 그녀가, 뒤돌아 눈물을 훔치던 그녀가 몹시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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