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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망한 이유 1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주기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까?

by FEELM




2019년 겨울 뮤지컬 영화는 암담한 시간을 보냈다. 큰 기대 속에 개봉한 <캣츠>는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파멸에 가까운 실패를 맛보고 퇴장했다. <캣츠>의 실패는 ‘앞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주기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까?’라는 심각한 의구심에 이르렀다.


이미 2012년 <레미제라블> 이후 제작된 뮤지컬 원작 영화 6편(제작비 4000만 달러 이상) 중 4 편이 월드 박스오피스 손익분기점에 미달했다. 여섯 편 모두 감독(ex. <저지 보이즈> 클린트 이 스트우드)과 출연 배우(ex. <락 오브 에이지> 톰 크루즈)의 면면은 출중했으나 하나같이 평단과 관객들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흥행한 작품(<맘마미아 2>, <숲속으로>)도 순수 작품성만으로 성공 했다고 추론하기 힘들다. <맘마미아 2>는 ABBA의 음악, <숲속으로>는 디즈니 제작/배급이라는 보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뮤지컬 영화 산업의 중심은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로 이 동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겨울왕국> 시리즈와 <알라딘>으로 건재를 과시했는데, <캣츠>는 확인사살을 한 것일까? 일단은 아니다. 존 추 감독의 <인 더 하이츠>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인 더 하이츠>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을 1년 연기했다). 현시점 브로드웨이 No. 1 뮤지컬 <해밀턴>의 창작자 린마누엘 미란다의 데뷔 작품. 이미 1961년에 영화화된 고전. 모두 무거운 기대를 받고 있다.

두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흥행 성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2020년대 뮤지컬 영화 업계의 방향이 정해질 것은 자명하다.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작품을 스크린에서도 경험하는 모습이 지 속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라질 것인가? 뮤지컬에 많은 애정을 쏟는 사람으로서 나는 두 작품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2010년대 비평 면에서 실패한 뮤지컬 영화 세 작품 <애니>, <숲속으로>, <캣츠>의 구성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존 추 감독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 그리고 모든 제작진 여러분. 제발 이것만은!

[주의: 본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적혀 있습니다. 각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읽으시기를 권해드 립니다.]


<애니> (Annie, 윌 글럭 감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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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배우: 케번자네 월리스, 제이미 폭스, 로즈 번, 바비 카나발레, 캐머런 디아즈.

줄거리: 주인공 애니는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위탁 가정에서 박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녀이다. 어느 날 우연히 시장 선거에 출마한 통신 재벌 윌 스택스를 만난다. 선거 승리를 위해 서 보좌진들은 애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데.

주요 캐릭터: 애니, 스택스(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한 사업가), 그레이스(스택스의 비서), 가이(선거 전략가), 해니건(애니의 위탁자), 코바체비치(애니의 담당 공무원)

원작 뮤지컬: 1976년 초연. 찰스 스트라우스 작곡. 마틴 샤닌 작사. 토머스 미헌 각본. 1982년/1999 년 영화화.

주요 넘버: It's the Hard-Knock Life, Tomorrow

제작비/월드 박스오피스: 6500~7800만 달러/1억 3380만 달러

대한민국 흥행 성적: 미개봉




어둠 1: 비현실적인 사건

<캣츠>의 배경이 고양이 사회이고 <숲속으로>가 중세 시대 배경 판타지 뮤지컬이라면, <애니>는 현재(2014년) 미국 뉴욕이 배경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비현실적 요소를 전면에 내건 영 화는 아니다. 따라서 관객은 현실과 동떨어진 신데렐라 이야기여도 캐릭터에게는 지극히 '상식적 인' 행동을 기대한다. <애니>는 비상식적이었다. 현실과 쇼의 경계가 없었다. 쇼의 영역이 현실을 과도하게 침범하면서 황당함을 넘어 기괴함이 느껴졌다.


사례 1: "I Don’t Need Anything But You“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뒤 마침내 함께 지낼 수 있게 된 애니와 스택스가 함께 춤을 추는 넘버다. 춤에서만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놀랍게도 생방송으로 뉴스를 타고 있다는 소식이 관객에게 전달 된다. 카메오로 출연한 코미디언 바비 모이니헌의 대사가 압권이다. “저러니까 시장이 못 되는 거예요.” 굳이 코미디적 상황을 삽입하지 않았더라도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사족이 코미디를 헛웃음으로 바꿔버렸다.


사례 2: “I Think I'm Gonna Like It Here”

“I Think I'm Gonna Like It Here”에 스택스의 집을 방문한 애니와 코바체비치는 화려한 집 내부에 놀라며 풍차 돌리기로 즐거움을 표출한다. 선거운동에 참여해 애나와 사진을 찍은 여자아이는 풍차를 돌리며 퇴장한다. 그 뒤 타블로이드 신문 1면에 실리는 묘사가 나온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거리에서 풍차를 돌리는 모습은 실생활에서 드물다. 이러다가 공중제바까지 돌 기세다.


사례 3: "Opportunity"

넘버 삽입을 위해 개연성을 과도하게 생략했다. 자선 행사에 참석한 애니를 스택스가 무대로 불 러내 몇 마디 말할 기회를 준다. 애니는 스택스의 도움을 받은 것을 기뻐하는 내용의 노래, "Opportunity"를 부른다. 노래 부르기를 따로 준비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지만 애니는 노래 를 잘 소화하고, 오케스트라도 곧잘 박자를 맞춰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낸다. 주변 배경이 암

전되는 연출처럼, '현재 상황은 현실 세계와 다른 애니의 상상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 았다. 즉 이것은 작품 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윌 글럭 감독은 노래 이전의 정황을 생략하면서 결과적으로 개연성도 같이 생략하고 말았다. “Opportunity”는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넘버이고, 자선 행사 장면은 이를 삽입하기 위한 제 작진의 서사 변형으로 보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뮤지컬 영화에 서 쇼와 현실의 구분이 없다면 넘버와 가사는 곧 배우의 대사와 행동이 된다. 뮤지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면, 애니는 행사에서 다짜고짜 노래를 부른 아이로 비칠 수도 있다. 제작진 이 조금 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둠 2: 부족한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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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하고 매력적이지만 목소리는 작은, 곧 스택스와 연인이 될 캐릭터. 말 많고 코믹(하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시도)한 어딘가 나사 빠진 캐릭터. 영화 중반까지 큰 변화없이 유지된다. 처음 예상과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가이가 상상 이상으로 재미가 없고 무능하며 짜증만 유발하는 캐릭터라는 점. 해니건과 코바체비치도 '주인공 애니에게 불친절함'과 '결혼에 보이는 높은 관심'이란 속성을 공유한다. 2010년에는 고루해진, '히스테리 노처녀' 캐릭터를 재활용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더욱이 해니건은 여러 사건을 통해 캐릭터가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소하게 생략된 부분이 많아 변화 동기가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웃 슈퍼마켓 남자와의 관계는 밀고 당 기기보다는 일방적인 거절에 가까운 묘사가 반복되다가, 단 한 번의 대화를 통해 썸까지 건너뛰 고 커플이 된다. 애니를 대하는 태도 또한 가짜 부모 사건 한 번만으로 호의적으로 변하고, 덤으 로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언니’가 된다. 급하게 전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둠 3: 납득이 어려운 전개

<애니>의 배경 변경은 음악과 캐릭터의 외양에는 적용되었지만 애니의 행동 방식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애니가 매주 금요일 저녁 부모와 헤어졌던 식당 앞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린다는 점. 영 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전달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2014년 삶의 그림은 2020년과 크게 다 르지 않다. 인터넷이 존재하고, 바로 옆에서 스택스가 무료로 스마트폰을 나눠주고 있었다. 부모 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최소한 1930년대보다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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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는 우직하게 부모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으며 식당 앞에 앉는다. 애니의 캐릭터가 고난 앞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설정은 그를 수동적인 캐릭터로 보이게 한다. 이것은 ‘애니가 사실은 문맹이었다’라는 다른 설정에서 기인한다. 글을 읽지 못하니 자연스 럽게 인터넷을 접할 수 없고 DNA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문해율이 국가 위상에 비해 낮은 수치라고는 하나, 나는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에 이 설정이 반전이 아니라 기존까지 끌고 왔던 연출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며 가장 먼저 인지하는 세계이고, <애니>는 학교에서 시작 한다.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래서 관객은 애니가 문맹일 가능성 을 배제한다. 애니가 참고자료의 도움 없이 머릿속에 든 지식(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을 술술 꺼 내는 묘사는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이 행동을 '애니는 발표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발표도 잘 해 내는 똑똑한 아이이다'로 판단했지, '애니는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외워 사람들의 눈 을 속인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게 문맹 설정은 다소 불쾌하다.

작품 전반에 깔린 우연의 향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Tomorrow”를 마무리한 애니는 개 샌디 (원작 뮤지컬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를 처음으로 만나고, 그 과정에서 (장차 자신을 신데렐라로 만들) 스택스와 조우한다. 두 사건을 연결하는 과정이 불친절하며 우연성이 짙다. “Tomorrow” 의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샌디가 애니의 앞을 지나가고 그 뒤를 불량배가 쫓는다. 애니는 화를 내며 그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애니는 차와 부딪힐 뻔했는데 지나가던 스 택스가 이를 발견하고 애니를 인도로 무사히 데려온다.

주변 정황은 ‘애니가 개를 괴롭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로 해석된다. 관객은 그 이전에 '애니가 개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애니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참을 수 없어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단 서를 듣지 못했다. 애니와 스택스의 작위적인 만남은 설명할 것도 없다.


빛: 세련된 음악 그러나,

자. 플롯과 캐릭터에서 결점을 드러내면서 매력을 하락시킬 것이라면, 대신 뮤지컬 요소를 살려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니>는 다행히 음악에서는 어느 정도 선 방했다. 뮤지션 시아(Sia)와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이 2010년대 힙합 감성을 덧붙여 편곡한 사운 드트랙은 듣기 좋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면 볼품없지만 넘버 연출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훌륭 하다. “It’s A Hard-Knock Life”는 원작을 잘 표현했고, "Little Girls"와 "Easy Street"에서는 번뜩이는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무조건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비겼다. "Tomorrow"를 두고 하는 말이다. 브로드 웨이 뮤지컬 좀 봤다 하는 팬들에게 익숙한, 브로드웨이 역사에 손꼽히는 히트 넘버다. "Tomorrow" 연출은 1999년 영화(<시카고>의 롭 마셜이 감독했다)에 비해 밋밋했다. 쇼트 활용, 연기자의 움직임, 마무리 부분에서의 세심함이 부족했다. 2014년에는 애니가 걸어가는 모습에 2 분 가까이를 소모한 데 반해, 1999년에는 앉아 있는 모습과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에 동등하게 1 분을 소비했다. 애니가 일어나는 동작도 로우 앵글에 무대 중앙에 배치하면서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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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글럭 감독은 애니를 줄곧 일정 거리를 두면서 카메라에 담았지만, 롭 마셜 감독은 클로즈업으 로 시작해 점차 후퇴했고 마지막 프레임에 로우 앵글로 애니가 꿈꾸는 ‘희망이 있는 내일’의 뉴 욕을 조망했다(애니는 관객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글럭도 똑같이 뉴욕의 풍경을 담았지만 하이 앵글을 선택했다. 하늘과 스카이라인 대신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를 골랐다 (애니는 세상에서 등을 돌리고 관객을 보고 있다). 이 연출은 스택스와 조우하게 되는 과정을 다 분히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1999년이 영화에 가까이 다가갔다면 2014년은 음악을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다.

공교롭게도 롭 마셜은 같은 2014년,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작 영화 <숲속으로>를 제작했다. 디즈니의 힘과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원작이 만났고, 마셜은 뮤지컬 영화에 새 활기를 불어넣 은 인물이었으니 기대가 넘치는 조합이었다. 예상대로 손익분기점은 여유 있게 넘겼으나 돌아온 것은 <애니>와 같은 혹평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숲속으로> (Into the Woods, 롭 마셜 감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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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배우: 메릴 스트립, 에밀리 블런트, 제임스 코든, 애나 켄드릭, 크리스 파인.

줄거리: 어느 먼 옛날. 신데렐라, 빨간 모자, 잭, 라푼젤이 함께 사는 세상. 빵을 팔며 살던 베이커 부 부 앞에 느닷없이 마녀가 나타난다. 마녀는 부부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여러 물건을 요구한다. 부 부는 숲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사건이 벌어진다.

주요 캐릭터: 마녀, 베이커 부부, 신데렐라(+ 가족과 왕자), 빨간 모자(+ 가족과 늑대), 잭(+ 가족과 거 인), 라푼젤(+ 왕자).

원작 뮤지컬: 1986년 초연.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작곡. 제임스 라파인 각본.

주요 넘버: Prologue: Into the Woods, Your Fault, Finale: Children Will Listen.

제작비/월드 박스오피스: 5000만 달러/2억 1310만 달러

대한민국 흥행 성적: 개봉관 356곳, 34만 명




어둠 1: 너무 많은 캐릭터

<숲속으로>는 일을 너무 많이 벌려 놓았다. 단독 영화로 제작된 캐릭터가 네 명(신데렐라/빨간 모자/라푼젤/잭). 넷을 묶고 내레이터 역할도 하는 베이커 부부. 이야기의 시작에 있는 마녀. 여 기까지 일곱 명이다. 보조 캐릭터까지 포함하면 이미 열 명이 넘는다. 관객이 파악해야 하는 캐 릭터 동향이 너무 많다. 스토리라인도 난잡해진다. 롭 마셜 감독은 전작 <나인(Nine, 2009)>에 서 메인 캐릭터(+ 모두 무게감 있는 배우)를 4명 이상 등장시켰다가 완급조절에 실패한 적이 있 다. 세 명에 집중했던 <시카고>와는 다른 결과이다.

빨간 모자와 라푼젤이 희생되었다. 빨간 모자의 본 서사는 불과 25분 만에 마무리된다(늑대로 분 한 조니 뎁을 포스터 메인 롤에 올려 관객을 낚은 것은 덤이다). 그 뒤 그의 역할은 사건을 유발 하거나 남 탓을 거드는 보조 캐릭터다. 라푼젤은 작품에서 배제해도 이야기가 무사히 흘러갈 수 있다. 베이커 부부가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을 얻기 위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가져왔는데, 정작 마녀가 힘을 되찾을 때는 '마녀가 만진 물건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그냥 옥수수수염을 사용한다. 답답해서 기가 막히는 복선 회수다.


당연한 결과로 캐릭터 설명도 부족하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보인 행동과 감정을 전부 생략한 채 도망치는 부분만 영화에 남겼다. 세 번이나 반복한다. 마지막 세 번째 도망에서 부르는 "On the Steps of the Palace“는 평범함을 갈구하는 내용이다. 그럼 무도회에는 왜 간 것인가? 잭 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가 마지막에서야 베이커의 입을 통 해 공개된다. 원작에서 의도한 것을 적용한 부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숲속으로>는 대한민국에 서 정식 라이선스 공연으로 소개된 적이 없어 사전 지식을 얻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작품의 메시

지를 파악할 수 없게 연출하는 바람에 간파하기도 힘들다.


어둠 2: 어정쩡한 경계

원작 뮤지컬의 매력 포인트는 고전 설화들이 가진 클리셰를 현실과 섞어 비트는 것이었다. 완전 무결하게 선한 사람,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착한 사람이 보답을 항상 얻는 것은 아니다. 영원 히 행복하게 살지도 못한다. 위기 앞에서 영웅은 없고 사람들은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거쳐 희석된 ‘잔혹 동화’가 부활한다. 영화는 위 주제들을 반영했지만 어느 하나 확 실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영화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인간 군상을 풍자하려는 노력은 하는데, 풍자로 읽히지 않고 불쾌감을 유발한다. 크리스 파인이 연기한 왕자 캐릭터를 예로 들 수 있다. 겉멋에 가득 차 사랑의 고통을 느끼는 것까지는 좋았다. 베이커 부인에게 접근하면서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그에게 냅다 키스를 해 버리며 풍자 캐 릭터에서 범죄자로 스스로를 전락시켰다. 작품의 진짜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마녀는 라푼젤을 20년 가까이 가스라이팅하며 가두어 놓고도 일말의 죄의식이 없다. 그저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 아’라고 한숨만 내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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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비정함을 캐릭터의 죽음에 투영했다. 다툼과 혼란 속에 베이커 부인과 잭의 어머니는 사고로 사망한다. 그런데 동화적인 전개로 ‘짠! 무언가의 절대적인 힘으로 이렇게 극복했어요.' 식 으로 그냥 덮고 넘어가는 부분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 의아함을 자아낸다. 마녀의 공격으로 눈이 먼 (다른) 왕자는 라푼젤과의 사랑으로 시력을 회복한다. 잭이 기르던 소는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지만 마녀의 마법으로 다시 살아난다. 세상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둘을 그냥 놔두었으면 안 됐을까?

<숲속으로>는 급하게 마무리된다. 캐릭터들이 한바탕 싸우고 난 뒤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 고, 일단 위협적인 (피해자) 거인을 쓰러뜨린다. 베이커가 영화 내내 강조했던 '부재'를 메우기 위 해 캐릭터들이 뭉쳐 유사 가족을 만든다(구성은 이른바 부모, 딸, 아들의 ‘정상 가족’이다). 혼란 스럽게 뒤섞인 주제 의식을 끝까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서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쉽사리 알 수가 없다. 가족은 중요하다? 인생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마녀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하 라? 사라진 빨간 모자의 할머니 같은 설정 공백도 남기고 영화는 무책임하게 사라진다.


+ 어둠 2.5: 전체 관람가의 함정

크리스틴 버랜스키가 연기한 양어머니와 이복자매들은 코믹했으나 '잔혹 동화' 요소 때문에 애매 한 위치가 되었다.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의 저본대로 왕자가 가져온 구두에 맞는 발을 만들기 위해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거리낌 없이 절단한다. 웃음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수십 년 간 성인 콘텐츠를 전체 관람가로 둔갑시켜 온 디즈니였다. 19세 이상 관람가에 인색한 디즈니가 <숲속으로>를 제작한 것은 모순이었다. 제작진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전체 관람가로 개봉하면서 마케팅과 내용의 치명적인 불일치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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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무대와 카메라의 차이

작품의 혼란스러움 때문에 피해를 본 넘버가 있으니, 2부 말미의 “Your Fault”다. 베이커, 잭, 신데렐라, 빨간 모자, 마녀 다섯 명이 서로 빠른 호흡으로 각자의 잘못을 쏘아붙이는 넘버다. 원

체 플롯이 혼란스러운 데다 쉴 틈 없이 가사가 귀에 몰아치니, 처음 관람했을 때는 상당히 혼란 스럽게 느껴져 영화를 더욱 낮게 평가하는 요소가 되었다. 단 “Your Fault”는 뮤지컬 영화의 근 원 '무대와 카메라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넘버라는 점에서 재평가의 여지를 찾을 수 있다. 요컨대, 무대는 열렸지만 카메라는 닫혀 있다.

무대 위에는, 카메라 렌즈 앞에는 동일한 공간과 사건이 있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은, 공간 옆에 앉아서 개방된 시선으로 연기자들의 움직임을 조망할 수 있다. 카메라는 먼 거리에서 촬영하지 않는 이상 연출 의도에 따라 관객의 시선을 강제한다. 관객은 사건의 그림을 여러 프레임의 조합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Your Fault”를 무대에서 연기할 때는 캐릭터 구도 와 배우들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영화의 앵글은 2분 전후 동안 30회 가까이 변화한다.


작품의 혼란스러움과는 별개로 배우 간의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다. 메릴 스트립, 애나 켄드릭, 제 임스 코든 모두 뮤지컬에 조예가 깊은 연기자이며(<맘마미아>, <피치 퍼펙트> 시리즈, <레이트 레이트 쇼>)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두 배우(잭의 대니얼 허틀스톤, 빨간 모자의 릴라 크로포드) 도 뮤지컬 주조연 경력을 가지고 있다. 빈 틈을 깔끔하게 메우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노래 소화도 잘 해냈다. 하지만 결국 원초적 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같이 가라앉았다. <숲속으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드디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한 <캣츠>를 만나보자.


- 그들이 망한 이유 2 에서 계속됩니다.


69기 장윤석


- 이 글은 Google Play 스토어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는 도서 <Feelm: 1권>(서강영화공동체, 2020)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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