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세라, 그리고 헨리 루소와 함께 1890년대에 프랑스에 등장한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 중 한 명이다. 후기 인상주의는 1860년에서 1890년 사이에 유행하던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파에 맞서 등장한 새로운 화파이다. 후기 인상주의는 주로 야외에서 빛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와 움직임을 담아냈다. 예술적인 면모에 중요성을 부여한 인상주의와는 달리, 그리는 사람(화가)의 상상이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하고 다양한 색감과 사람의 지각 체계에 따른 상징적인 요소들에 중점을 두었다. 후기 인상주의란 단어는 1910년에 영국의 미술학자와 평론가인 로저 프라이(Roger Fry)의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Manet and the Post Impressionists)"이라는 전시회에서부터 탄생하였다.
이번 기사에서는 폴 세잔이 즐겨 그렸던 몇 개의 사과 그림 중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Basket of Apples)>이라는 작품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사과 바구니는 1893년에 유화로 제작된 그림으로써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가 들어있는 바구니, 그 옆에 유리병, 비스킷, 그리고 식탁보 위에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사과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금방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바로 그림의 오른쪽과 왼쪽 구도가 다르다는 것. 분명 한 개의 장면을 그린 것인데, 구도는 한 개의 구도가 아닌 다수임을 알 수가 있다. 유리병이 테이블의 정중앙에 비스듬히 놓여있고, 왼쪽에 사과가 담긴 바구니는 기울어져 이미 바구니에서 쏟아진 몇 개의 사과들은 테이블 위에서 떨어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오른쪽 배경에 그려진 유리 접시 위의 비스킷 또한 신기한 구도를 보인다. 쌓여있는 비스킷 중에 가장 윗부분에 놓인 2개의 비스킷은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구조를 보이지만, 그들 밑에 깔린 비스킷들은 옆면에서 그려진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폴 세잔이 이처럼 신기한 구조로 작품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원근법을 사용했지만, 폴 세잔은 이에 대하여 다른 사고를 하고 있었다. 그 자신 또한 당시 화가들과 마찬가지였고, 당시 점점 번지고 있던 사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런 영향에 의해 사람들 또한 사물이나 풍경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화가들이 사물을 그릴 때 한 가지 정해진 관점에서만 사물을 그리면서 이것이 사물을 그리는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폴 세잔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관점은 단 한 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각도는 다양하며, 여러 구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위에 보이는 사과 바구니처럼 보이는 장면이 연결되지 않은 흩어진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사물을 사람들의 관점에서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구상하여 표현하고자 한 그의 시도는 1907년도에 발생한 입체주의의 발판이 되었으며 현재 우리에게도 익숙한 입체주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작품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큐비즘 (cubism)이라고 불리는 입체파 화가들은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가 1907년도에 그렸던 <아비뇽의 처녀들> 이후로 등장하였다. 앞서 소개한 폴 세잔의 흐트러진 관점에 이어서 한 평면에서의 더 많은 시점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시도들이 평면의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뉘어 분할시켰다. 입체파 화가들은 한 가지 물체나 이미지를 여러 가지 각도와 구도를 사용하여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개형을 도입하여 그림의 부분들을 거리감에 상관없이 아울렀다.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함께 살펴보자. 현대 예술의 시발점이라고도 표현되는 이 작품은 회화가 전적으로 사실주의적인 표현방식으로부터 멀어짐을 암시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에 있던 매음굴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이것을 빗대어 보면 작품 안의 5명의 여인은 ‘처녀’보다는 매춘부들에 가깝다.
피카소가 그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 다섯 여인은 모두 몸이 뒤틀리고 자세가 비틀어졌으며,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 또한 비대칭이다. 그리고 이 여인들 중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민얼굴의 세 여인은 스페인의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얼굴들이고, 오른쪽의 마스크를 착용한 두 여인은 아프리카의 전통 가면을 착용한 얼굴이다. 피카소는 왜 표현하고자 하는 얼굴 위에 마스크를 입혔을까? 그는 아프리카 가면이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고 함을 믿었다. 아마도 그는 회화적인 인물에 이 오브제를 씌움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불운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길 바랐을 것이다. 피카소는 폴 세잔의 흐트러진 관점과 단순화된 오브제들의 모양 구성 등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이것을 넘은 입체적인 관점으로 3차원적인 것들을 평면에 담아냈다.
지금까지 폴 세잔의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 시작하여, 이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입체파의 등장,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명작 <아비뇽의 처녀들>까지 함께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폴 세잔의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 영감을 받아 찾아간 카페 한 곳을 소개하려 한다.
용산구 후암동의 높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빌라들이 빽빽이 서 있는 주거지역이 나온다. 언덕배기에 서 있는 어느 주거 건물의 일 층에는 ‘AVEC EL’이라는 작은 카페가 운영 중이다. 필자는 따뜻한 애플 티와 링고 토스트를 주문했다. 애플 티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쌉싸름한 뒷맛이 인상적이었고, 링고 토스트는 예쁜 디자인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사과 한 개를 옆면이 보이게 썰어 시럽에 절인 토스트와 함께 제공해주는데, 사이드에 장식으로 올려진 레드 커런트가 토스트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이 카페는 맛있는 디저트나 음료뿐 아니라, 한구석에서 예쁜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긴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노란색 테이블보로 장식된 이 테이블 위에는 후기 인상주의에 관한 원서가 펴져 있었다.
후암동의 높은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용산구를 방문하면 이태원뿐만 아니라 후암동 카페 AVEC EL을 방문하여, 링고 토스트와 애플 티 한잔을 마시며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것이다.
AVEC EL Shop & Cafe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