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_소방차

탁송으로 떠나는 여름 유랑기

by 현용찬



이번 여름, 나는 꽤나 특별한 여정의 시작점에 섰다. 지난 젊은 날, 학기 중 갈망했던 자유와 낭만을 품에 안았던 무전여행의 추억이 문득 나를 불렀다. 당시에는 어촌에서 배낚시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벌며 꿈을 키웠는데, 문득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길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자유롭게 유랑할 수 있을까?'

나는 타고난 운전 애호가다. 단순히 운전하는 행위 자체를 넘어, 핸들을 잡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모든 순간에서 깊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런 나에게 '탁송'이라는 업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미지의 경험과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해답처럼 다가왔다.

물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길에 뛰어들며 조심스러운 마음도 함께였다. 평생을 이 업에 헌신하며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분들의 노고를 잠시 경험하는 내게, 혹여나 송구한 마음이 앞설까 해서였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오히려 이 짧은 여정을 통해 그분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그 땀방울 서린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말이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진심 어린 시선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2주간의 예행연습 기간 동안 탁송 업무의 감을 익히려 애썼다. 낯선 차들과의 씨름은 예상보다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을 요구했지만, 내 안의 오랜 갈증을 해소해 줄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드디어, 첫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이 밝았다. 어딘지 모를 강렬한 끌림에 무작정 부산으로 향하고 싶었다. 아마도 유년 시절을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덕분인지, 푸른 파도가 너울대는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탁송 커뮤니티를 면밀히 탐색하던 끝에, 마침내 운명처럼 3.5톤 냉동탑차 한 대가 내게 주어졌다. 그렇게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으로, 부산을 향한 핸들을 잡았다.

부산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과거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스무 살, 서면의 왁자지껄한 거리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청춘의 밤, 그리고 그 잔을 선뜻 내어주시던 따스한 선배의 미소가 아련히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부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번호의 주인이 된 지 오래였다. 그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참, 연락 한 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하는 짧은 탄식만이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철 안에서, 문득 창밖으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시야를 채웠다.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수면 위로 쏟아지는 주황빛 석양은 그저 황홀할 따름이었다. "진짜 좋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정겨운 부산 사투리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출출한 배를 안고 사상역 근처 골목길을 헤맸다. 제법 번화한 이곳은 태어나 처음 걷는 길인데도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결국 국밥집에 들어가 따뜻한 콩나물국밥과 돈가스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금 정겨운 사투리 물결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스쳐 간 부산의 인연들이 스르륵 떠올랐다. 바쁜 일상 탓인지 통화가 어려웠던 지인에게 문자를 남겼고, '다음에 꼭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반대편 노선에서 잡힌 탁송 건은 경기도 벽제행 11톤 트럭이었다. 개인적으로 승용차보다는 왠지 모르게 큰 차가 좋다. 예행연습 기간 동안 몰았던 고급 승용차들은 지나치게 신경 쓸 일이 많아 되려 피곤했지만, 큰 화물차는 그런 사소한 걱정들을 잊게 해 주었다. 넓은 공간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주었고, 운전이 마냥 쉽지는 않아도 그 안에서는 나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 90km를 넘을 수 없는 규정 덕분에, 오히려 조급함 없이 여유롭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를 잡고 내일을 기다리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놀랍게도 소방차 한 대였다. 고유의 임무를 다 마치고 생의 마지막 운행을 앞둔 소방차의 핸들을 잡게 되다니! 부산에서 경기도 벽제까지 400km에 달하는 여정이었다. 꼼꼼히 서류를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뻥 뚫린 도로는 시원하게 달렸고, 막히는 구간에서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답답할 때마다 마주하는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에어컨이 시원치 않아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시원하게 세수하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주행 내내 나는 소방차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넌 어떤 삶을 살고 이제 어디로 가는 거니?" 대답 없는 기계에게 혼자 중얼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내비게이션은 4시간 30분이라 했지만, 어느새 6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그러던 중, 교통 체증에 잠시 멈춰 선 도로 위에서 익숙한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북한산 인수봉!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수많은 추억을 쌓았던 곳이었다.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열정과 바위에 매달렸던 손끝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인수봉이다!"

그렇게 반가운 북한산을 뒤로하고 벽제에 도착한 나의 최종 목적지는 폐차장이었다. 차들이 재활용되는 그곳은 왠지 모르게 숙연한 분위기를 풍겼다. 반쯤 해체된 채 멈춰 선 버스를 보니 더는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오후 4시에 도착해 다음 차량을 잡고 이동하려던 계획은 6시를 훌쩍 넘긴 시간 때문에 무산되었다. 이곳을 빠져나갈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시골의 인심은 언제나 놀랍다. 이곳에서는 손을 들면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기꺼이 차를 세워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정말 특별한 분을 만났다. 10여 년 전부터 탁송과 대리 일을 해오셨다는 선배님이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탁송 대리 일로 회사에서 일등도 하고 수입도 괜찮았지만 그만두었다는 것. 탁송이나 대리 운전사들끼리 모이면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할 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 혼자 하는 일이라 그런가 싶어서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고 싶어서 그만뒀어요." 그 솔직한 고백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선배님은 나에게 탁송과 대리 운전에 대한 유용한 팁들을 아낌없이 알려주셨고, 심지어 의정부역까지 태워다 주며 다음 이동을 위한 조언까지 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분이었다.

원래는 의정부역에서 나가는 탁송 차량을 잡을 생각이었지만, 문득 이틀간의 여정 끝에 밀려오는 피로감에 그냥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여러 번 갈아타고 느릿하게 이동하며 최종 목적지 역에 내리니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집까지 남은 길은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꽤 더운 밤공기에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작은 개울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내일 하루는 푹 쉬고 다시 진짜 여행을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이제 배낭과 텐트, 침낭을 최소한의 준비물로 꾸려 본격적인 나만의 유랑을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지난 2일간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의 여름 유랑은 이제 시작! 앞으로 2주간,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또 어떤 새로운 풍경과 인연들을 만날지, 나 스스로도 기대가 됀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다음영상은 최근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어본 영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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