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어른들 말씀으로,
어릴 때 기술 잘 배워두면 밥벌이는 걱정 없다고 하셨다.
그땐 기술이라는 단어를 그토록 부정적으로 느꼈는지 모르겠다.
실업계 고교를 나와서 일찍부터 기술로 먹고살고자 했었다.
그래서 더욱 대학 공부해서 몸 쓰지 않고, 머리 쓰는 일을 하겠다고 집착했었다.
이제 나이가 사십에 가까워진다.
결혼, 자식, 대출.
책임질 것이 많은데, 나 자신이 부러질 것 같다.
육아휴직에 들어오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E의 성향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었나 보다.
다시 검사해 보면 I성향이 분명 높아졌을 거다.
어릴 적에 눈칫밥을 좀 먹었다.
부모님은 타지로 돈 벌러 떠나시고,
조부모님 아래에서 자라고,
잘 사는 친척들 물건, 용돈을 받아가며 자랐다.
동네 사람들, 다들
우리 집 안부를 그렇게 묻더라.
그 뉘앙스가 싫었다.
사람 불쌍하게 대하는 그 눈빛과 관심.
불쾌하다.
자라면서 세상을 겪고, 나 자신을 가꿔가며
자신감이 조금씩 불어났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삶을 관찰하며 배웠다.
무릎에 날 앉혀놓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다들 바쁘게는 살았는데, 형편은 제자리)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른 채
많은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나 스스로 재밌고, 좋다고 생각한 선택에
후회한다.
"실력을 쌓았어야 했는데, 누군가 조금만 일찍 현실을 알려줬더라면..."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돈'이 문제였다.
둘 다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타인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단순한 일.
당연히 급여도 대접도 넉넉하지 않다.
나이만 넉넉하다.
아내의 창업에 대한 의지를 꺾고 싶지는 않지만
투자에 대한 리스크와 기회비용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나.
(현실안주)
잘할 수 있고
잘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선택의 순간이 왔다는 아내.
(정면돌파)
부족한 형편일지라도
당차게 한번 해보라고 지원하고 응원해야 맞는데,
현실의 무게를 아는 척 포장에 능숙한 내가
감히 그 무게를 견뎌보려는 타인(아내)의
발목을 잡아서야 될까.
더 배우고
일찍 알았더라면 달랐을 거라는 반대편의 삶.
오늘 이후로는 떠올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