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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하 Jan 18. 2022

완벽하지 않은 완결

내게 필요한 건 모두 내게 있다

  완벽하지 않은 완결, 대칭 속의 비대칭, 우연의 집합, 인간미, 옥에도 티가 있다, 토르소, 과정의 가치, 부분의 전체성. 이것들은 전부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non-finito. 문자 그대로 “완료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완료되지 않은 작품이 표방하는 다양한 개인적 가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완벽주의자인 미켈란젤로는 모순적이게도 논 피니토 사상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예술가다. 그렇기에 그는 그 작품들을 완성된 것이라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포기한 것이라 일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점은 그 안의 가치이다. 어떤 이념적인 것을 현실 세계로 가져오기 위한 과정은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은 온전히 맞물릴 수 없기에 작은 틈, 혹은 균열이 발생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형상화된 이상보다, 도리어 그 틈으로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부분의 전체성. 어쩌면 부품에 불과한 무엇을 완성품 밖으로 끄집어내는 활동이라고도 생각된다.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기존의 부당함을 전복시킬 수 있다. 


  정교함과 자본과 기술은 인간의 강력한 무기다. 정교함은 인간만의 것은 아니겠다만. 아무튼 필자는 이 셋이 현대 예술 이전까지 예술의 발전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도래하지 않았나. 기술의 발달을 안고, 한 개인의 개성 혹은 자연적 본능이 완벽함을 넘어섰다. 기술이 인간을 넘어섰기 때문에.



  미완이라는 가치는 창작자와 독자 모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창작자의 창조 의지는 ‘미완’을 ‘완성’한다. 그 불완전한 형태는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보인다. 얼핏 보면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내로라하는 완성적 작품만큼이나 정서를 상기한다. 완성되지 않은 작품은 창작가의 삶을 보여준다. 완성된 작품에 투영되는 삶과는 또 다르다.     


  완성되지 않은 것은 더 큰 것을 상상하게 한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비 정형화된 작품은 창작가의 고민을 보여주기도 하고, 감상자 내부를 자극할 수도 있다.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겉보기에 완벽한 관계가 속은 비틀어져 있을 수도 있다. 완성되지 않은 관계는 앞으로의 시간을 제한 없이 그려나갈 수 있다.      








    

  송찬호 시인의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오래 구르던 둥근 바퀴가 사각의 바퀴로 멈추어서듯
죽음은 삶의 형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언하듯 그의 땅에 꽃을 던진다
미래는 죽었다 산 자들은 결코 미래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찬란한 한계인가
그 완성을 위하여
세계를 죽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날마다 살인을 꿈꿀 수 있다는
폐허 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망각 속에서 우리가 살인자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풍성한 과일을 볼 때마다
그의 썩은 얼굴을 기억하듯     


  시의 일부를 가져왔다. 이 작품이 논 피니토를 담고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이기에 조심스러워 크게 첨언하지는 않겠다.(학부생은 정말 아는 게 없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으로 향한 작품과 같은 고뇌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 삶의 형식을 완성할 수 있는 찬란한 한계의 역설을 발견했고, 시에 담고자 했다. 시에 담고자 하는 죽음의 본질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을 찾을 수 있다. 풍성한 과일을 볼 때마다 그의 썩은 얼굴을 기억하듯.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지 않는다. 창작자 개인의 고뇌를 담은 시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작품은 온전히 내 안에서만 나온다.







  논 피니토 작품은 난해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덜 된 것’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기존의 예술성을 전복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날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건 모두 내게 있다.’ 화려한 치장은 부담스럽고 그대로의 날 것은 부끄러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부끄러워 잡다한 수식어구를 붙이거나 에둘러 은유할 필요 없다. 완벽하지 않은 완결. 완결은 그 자체로 완성이다. 완벽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그대로, 틀 밖에서 더 큰 것을 상상하자.






어떤 완벽주의자가 말하는 논 피니토

<완벽하지 않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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