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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02. 2019

학종, 입학사정관, 자기소개서

참조사항

<학종, 입학사정관, 자기소개서>  

(7년 전 글입니다) 입학사정관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많은 모양입니다. 오늘자 조간신문에도 “허위 추천서를 통과, 통과… 입학사정관을 사정해야 하나”라는 헤드라인이 떴습니다. 대학에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의 입학사정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임입학사정관, 교수전임입학사정관, 교수위촉입학사정관이 그들입니다. 그 안에서 또 약간의 계급적 관계(책임, 수석, 선임 등)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 중에서 전임입학사정관(정규직, 비정규직)이 입학사무를 전담하는 전문직입니다. 입학사정관 입시제도 하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그들이 서류평가나 면접을 전담하는 게 아마 원칙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제도가 제대로 정착이 안 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교수들의 역할이 큰 것이 대다수 대학의 현실입니다.

오늘자 조간신문에서는 그들 전임입학사정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저 같은 교수위촉입학사정관들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교수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인 연구와 교수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입학 사무나 서류평가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학생부 기록을 위주로 한 서류평가 방법에 대한 실기 연수를 받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리무중’ 상태입니다. 학생들의 교내외 활동 중에 어디에다 가중치를 두고 평가할 지에 대해서는 교수들 각자의 학식과 경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어떤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을 두고 학생들의 비교과활동을 계열화, 위계화 한다면 ‘입학사정관’제가 아니라 ‘기계적 점수 환산’제가 되어버리는 꼴이라 적절한 잣대를 만들어 평가기준을 공유한다는 것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실제로 그런 잣대를 만들었다가 그것이 밖으로 유출되어 일선 고등학교에서 ‘맞춤식 비교과활동’을 마구 해대는 통에 부득불 그 잣대를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비교과활동을 점수화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입학사정관제 입시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비유가 허락된다면, 요구되는 인프라 조성 없이 이루어지는 입학사정관제 입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주어진 사주팔자만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금융실명제 처럼, 교육환경이 완전한 ‘실명제(實名制)’가 되고(교사추천의 신뢰성 확보), 학생의 교과 활동(학업 성적)에 대한 관습적 과신이 불식되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교육평등주의가 완화되고, 대학 입학 사무가 고도로 전문화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제도일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와 대학 현실에서는 언감생심인 것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 모 대학에서 특목고 출신 위주로 신입생들을 선발해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를 위시한 교육당국에서 지금 서둘러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려는 까닭은 자명합니다. 현재의 입시 위주의 교육이 망국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나라 전체가 무너지는 것보다는 다소 초기 부작용이 있더라도 이 길로 가야겠다는 ‘교육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잘 시행되고 있다는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 생각에도 그게 맞는 일인 것 같습니다.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교육적 질병’을 평생 안고 간다는 것은 너무 ‘비교육적인 사고’입니다. 고쳐야 할 것은 고치는 것이 교육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지원자(학부모 포함)나 대학(교수 포함)이나, 다소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참고 이겨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게 백년지계(百年之計)로 일컬어지는 ‘교육적 마인드’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로서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입학사정관제 입시에서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주의해야 될 점을 간략히 소개한 기사가 있어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사설 입시기관에서 분석한 ‘자기소개서에서 피해야 될 표현’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제가 읽어봐도 수긍이 가는 내용들입니다. 8000건의 자기소개서를 분석해서 얻은 ‘피해야 될 표현’, 이른바 상투적인 표현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부기한 괄호 속의 내용은 입학사정관으로서 지녀야 할 이른바 ‘의심의 해석학’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특정 입시평가 기관의 소견에 살을 붙인 저의 사견(私見)입니다. 공론화되거나 일반화된 입학사정관의 평가기준이 아님을 밝힙니다)

●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석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렀습니다.(점수 획득의 목적이었으면서 과장)
●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뜻 깊은 활동이었습니다.(당연한 일을 공연히 강조)
● 사교육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달인(?)이어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도와주지) 않아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굳이 대학에 올 필요 없음)
● 학교생활을 3년 동안 누구보다도 충실히 했습니다. 대학에서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자기중심적 사고)
● 글로벌시대에 적합한 인재가 되기 위해, 외국 연수를 다녀왔거나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했습니다.(외국 대학으로 진학 권유)
●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전공을 더 한층 심화시키고 싶습니다.(대학원 진학은 대학 공부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음, 고졸 수준에서 미리 예단한 진로과정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금물)
●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랐습니다.(대표적인 클리셰.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을 드러냄)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사람은 10분 뒤와 10년 뒤를 동시에 내다보아야 한다고 하듯이~’ 등의 많이 알려진 경구를 사용.(표절이나 대필로 의심받기 쉬움)
● 숱한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반전 드라마는 픽션. 어린 나이에 드라마를 쓰는 것은 권장할 것이 못됨)
●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법관(군인, 교사, 학자)이 되어 있었습니다. 늘 법복을 입고 있는 꿈을 꿉니다.(희망사항 기재 금물. 자신이 한 일만을 기재하여 설득할 것)

대강이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지적되는 10가지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잘 작성하는 핵심은 은연중에 독자(입학사정관)를 설복시켜 스스로 ‘믿을 수 있는 화자’로 각인되게 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객관적인 사건(사실관계)을 통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장점(가능성)을 드러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남보다 특별한 것, 계기 없이 이루어지는 내 인생의 일대 전환점,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성장 환경, 상투적이기까지 한 공연한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자화자찬은 피해야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작더라도 자기 것을 내세워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 내적 의미의 연관(생활기록부나 교사 추천서에 기재된 사실들과 연관성이 있는 스스로의 의미부여)이 분명히 드러나는 기술이 요구됩니다. 자기가 한 일의 의미와 가치가 글 속에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도록 작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독서 활동을 많이 했다면, 그 활동이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적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최소한으로, “국어 선생님이 권한 이순원의 『19세』라는 작품을 읽고 ‘소설이란 게 정말 대단한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소설 앞에서 너무 작아졌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은 많고 많지만 생각하고 바라고 걱정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과 생각이 머지않은 장래의 저의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소설을 읽고 왜 문학작품이 위대한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독서 클럽에 가입해서 더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지금까지 그 소설을 읽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주는 책을 쉽게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정도의 자기 소감은 기재되어야 합니다(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실제 중학교 1학년 학생의 독후 소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소감이 높이 평가된 이유는 ‘소설이란 대단한 것이다’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그 시점에서의 자기 문식력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일종의 ‘장르적 인식’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그 나이 때의 인식으로서는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합니다. 대학생이 그런 표현을 썼다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아울러 그 말에는 학생 스스로 그 작품의 내용을 자신의 콘텍스트에 안에 투입해서(전이) 읽었다는 ‘경험의 구체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소설을 아는 자의 시각에서 볼 때 그 한 문장이 여러 가지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고등학교 재학 중에 톡서 클럽에 가입하여 문학서와 철학서 등 4,50권의 책을 읽었고 그 독서 활동이 제게는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는 식의 기술로는 아무런 설득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독서 활동뿐만이 아니라, 학교를 다니며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이었던가를 모르는 지원자들은 불이익을 받습니다. 앞서 예시된 독후감처럼, 자신이 한 교내외 활동이 ‘왜 자신에게 대단한 것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런 기술(記述)이 없는, 이를테면 ‘경험의 구체성’이 없는, 다양한 교내와 교외활동은 강요나 마지못한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됩니다. 아무리 많아도 ‘의미 있는 평가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술을 위해서 대필자를 물색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낭패를 겪을 공산이 큽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숙련된 입학사정관 앞에서는 대필이나 표절이 ‘패가망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읽기’에 숙련된 사람 앞에서는 글과 사람이 ‘두 사람’일 경우 반드시 그 ‘이면 계약’이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오랜 기간 읽기나 쓰기 지도를 해오신 선생님들은 다 수긍하실 겁니다). 이른바 텍스트 응집성(표현이나 의미맥락 상의 결속성)이 명료히 드러나게 하는 그 쓰기의 기술은 그냥 손끝에서 습득되는 게 아닙니다.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는 것이 글쓰기의 변치 않는 ‘내부적 기율’입니다. 특히 사실관계를 밝히는 글에서는 더 합니다(수사기관의 조서 쓰기가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내용에 어긋나는 형식은, 앞에서도 조금 살펴본 것처럼, 반드시 제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송곳이 가죽주머니 안에서 놀다 보면 반드시 그것을 뚫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발견되면 한 순간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꼴을 당합니다. 그걸 찾아내는 게 입학사정관들의 임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의도된 거짓말이 그 ‘불신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섣부른 모험으로 턱없는 감점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기 것으로 받을 만큼만 받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니체가 말한 ‘황금의 언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소개서에는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적어야 합니다. 그런 말을 찾게 하는 것도 입학사정관제 입시의 한 목적이기도 하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이 조금이라도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이나 학부모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행여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저 늙은 한 문학 교사의 노파심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옛 말씀에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늙은 말에게 길을 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었지만 평생을 읽고 쓰는 일에 종사한 자의 볼품없는 ‘견마지로(犬馬之勞)’로만 여겨지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201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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