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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Feb 26.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4강. 논증, 길 없는 길

논술의 개념


현실적으로 논증의 글쓰기가 필요한 곳은 학술 논문, 시사 논설(논평, 비평), 입시(취직) 논술, 판결문 등이다. 모두 특정한 직역(職域)이나 특정한 목적(신입 선발)이 요구하는 실용적 글쓰기다. 우리 책에서는 논술을 중심으로 논증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책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적은 지식(공부)으로 가장 많은 효과를 보자는 것이 우리 책의 취지다. 

사전적 의미의 논술(論述)의 개념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의견을 논하여 적는 것’, ‘일정한 주제를 논하여 필자의 의견을 서술하는 것’, ‘어떤 것에 관하여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함’, ‘설득적 글쓰기’, ‘논증적 글쓰기’, ‘비판적 읽기와 창의적 문제 해결하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 글쓰기’, ‘주어진 과제를 논리적 과정을 통하여 해결하고 그 결과를 언어로 서술하는 글쓰기’ 등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논술(論述)이 일상적 삶에서 필요한 실용적인 장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논문, 논설, 비평, 정론(政論), 평설(評說) 등이 ‘현실적인 실용 장르’로 엄존하는 것에 반해 논술은 선발 목적의 시험 용도로만 존재한다. 이른바 ‘논술고사’라는 제도가 ‘논술’이라는 글쓰기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술의 정체성은 그 자체의 속성보다는 그것을 요구하는 사회, 문화적 관점에 더 종속될 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논술은 크게 태도형 논술과 탐구형 논술로 대별된다. 태도형 논술은 보통 제시문 없이 단독 과제로 제시된다. 평소의 소양(素養)과 판단을 토대로 주어진 논제에 자기 나름의 설득적인 주장으로 답하도록 요구된다. “정의로운 전쟁은 존재하는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있는가?” 등, 철학적인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그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장문의 제시문, 혹은 복수 지문의 제시문이 주어지는 탐구형 논술은 제시문 속에서 논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논법을 사용하여 논증할 것을 요구하는 형식이다. 대학 입학시험의 일환으로 많이 채택되는 방식이다. 일종의 독서 논술형 논술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태도형과 탐구형은 설득적 주장(persuasive argument)이 강조되는가 논리적 논증(logical demonstration)이 강조되는가의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교과 영역 간의 지식 전이를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대학 측에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결국은 대학이 본고사를 부활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평가에서부터, 현행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정상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제도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어떻든 간에, 현재까지의 고등학교 교과 운영방식으로는 그러한 논술 시험에 충분히 대처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논술의 과정


논술은 기본적으로 설득적인 글쓰기의 영역에 속한다. 수험생이 논술을 통해 자신의 입학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평가자(출제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설득이다. 그러므로, 주장을 앞세우고 논리를 뒤에 둔다거나 논리를 앞세우고 주장을 뒤에 둔다거나 하는 방법론적 논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할 것이다.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라면 앞에 두건 뒤에 두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논리만 정연하면 되는 것이지 그 둘 사이에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논리 전개 과정을 나누고 장황하게 이론을 펴는 것은 무용 지식을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보다 설득적인 글을 생산해 낼 수 있는가’이지, ‘논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득적인 글쓰기로서의 논술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논제가 요구하는 논술의 범위를 파악하고, 논증의 대상과 주장의 방향을 정한다. 이 단계에서, 개요 짜기(out line 작성)와 기본 개념 만들기(주장에 필요한 개념화)를 병행하면 효과적이다. 제시문을 읽고 생각의 방향을 잡는 과정이므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 부분, ‘개념화와 유형화의 능력’이 현행 대학 입학시험으로서의 논술이 요구하는 고등사고력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둘째, 개요 짜기에 따른 순서대로 문단을 구성한다. 자세한 세부사항은 뒤로 미루고 우선 큰 것만 적어나간다. 만약 개요 짜기 결과가 3단 구성이면 문단을 <시작(서)-중간(본)-끝(결)>이나 <도입-전개-결말> 등으로 나누고, 두괄식 5단 구성으로 되었으면 <주장-근거-예시-해설-연결> 등으로 나누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구성이든 시작 부분에서 구성의 효과가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는 첫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도입’ 일 경우에는 화제를 적절히 설명해 나가는 원심적이거나 구심적인 논법(화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하고, ‘주장’ 일 경우에는 평가자(출제자)가 원하는(원한다고 판단되는) 명제를 단도직입적으로 제출하는 과단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셋째, 각 문단을 채워나간다. 효과적인 설득에 필요한 내용들을 비교와 대조, 예시 등의 기술법(記述法)을 동원해 선택해 나간다. 기본 개념(bound motif)에 덧붙여서 활용할 수 있는 부수적인 개념(free motif)들을 찾아내고, 적절한 예시가 있으면 그때그때 첨가한다. 논제의 단서 조항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각 단계에서 필요한 조치(비교, 대조, 예시 등)를 취한다.

마지막으로, 퇴고 작업에 들어간다. 논제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했는지, 문단 및 문장의 연결에 어색함이 없는지, 비문(非文)은 없는지, 중복된 주장이나 근거 제시는 없는지 확인한다.

이상 열거한 논술의 과정은 그야말로 표상적 지식(나는 접시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절차적 지식(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안다)으로 전이시키려면 부단히 글을 쓰는 노력을 병행하여야 한다. 논술의 과정을 제대로 익히려면 스스로 제시문과 논제를 구성하여 논술을 해 보는 것이 좋다. 


논술의 요건


선발시험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 바로 신뢰성 문제이다. 논술이 선발시험으로 올바르게 기능하려면, 우선적으로 출제(내용)의 신뢰도와 채점의 신뢰도가 확보되어야 한다. 제출된 답안지에 대해 동일한 유형의 형식으로 여러 번 반복적으로 평가했을 때 일관된 결과가 산출되어야만 내용과 채점의 신뢰도가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논술은 기본적으로 ‘고등 사고력’과 ‘논증적인 서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표준화가 가능한 평가 방식이 아니다. 굳이 가능한 표준화를 물색해 본다면, 출제자들이 복수의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s)’의 가능한 유형을 미리 상정해서 그에 따른 잘 마련된 채점 기준표를 만들고 사전에 평가자들에 대한 연수를 철저히 시키는 방법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전제 하에서 대학 입학시험으로서의 논술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인 타당도(concurrent validity)가 높은 제재를 선택하여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논술의 방향은 크게 태도형 글쓰기와 탐구형 글쓰기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설득적인 글쓰기를 지향한다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논증적인 글쓰기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지문(자료 제시형에서 특히 중요함)이나 논제(단독 과제형에서 특히 중요함)가 학생(수험생) 일반의 인지적 특성과 능력, 현행 교육과정 등에 온전하게 부합해야 한다. 

단독 과제형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이나 미국의 SAT 에세이 테스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료 제시형은 특정 대학이나 기관의 입시(입사) 문제를 고르지 않고 임의로 문제를 만들어 다음 장 ‘논술의 실제’에서 따로 제시하려고 한다. 단독 과제형의 예로 많이 인용되는 문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정의로운 전쟁은 존재하는가?

*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가?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 우리는 성공했을 때 더 많이 배우는가 아니면 실패할 때 더 많이 배우는가?

*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서술하시오.                                         (미국 SAT 에세이 테스트)


두 번째는 예측 타당도(predictive validity)가 높은 문항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으로서의 논술이 예측하여야 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학생들의 향후 ‘학업 성취도’ 일 것이다. 만약, 논술고사의 성적이 향후 대학에서의 학업 성취도와 현저하게 상호 관련성이 낮다거나, 아니면 논술 능력이 다른 교과에서의 학업 성취능력과 매우 다른 독특한 인간 능력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논술고사는 대학 입학시험으로서의 자격이 크게 의심될 수도 있다. 

수험자들의 수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든, 출제자의 의도가 석연치 못한 점이 있었던 것이든, 제대로 된 답안이 제출되지 않았다면 결국 출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이른바 ‘공인 타당도’에 있어서 하자가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예측 타당도’의 측면에서도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예상되는 모범 답안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공인 타당도와 예측 타당도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을 구비한 논술 시험 문항을 구축하는 일은 전형 주체(출제자)들의 매우 세심하고도 면밀한 사전 준비와 사후 점검이 요구되는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이다. 문제 자체의 성립 여부와는 별도로 전형 주체의 전공 영역이나 취미 영역, 관심 영역이 문항 구축에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전형 주체 간 ‘지식의 쟁투’가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러한 비본질적인 문제가 개입하여 선발 고사의 본질적인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전형 관리자는 철저한 감독과 관리를 다 하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채점의 신뢰도’ 문제를 들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출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학생(수험생)들이 작성한 ‘논증적인 서술’을 채점자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채점을 해서는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논술을 비롯한 주관식 서술 채점은 ‘아는 것만 보인다’는 원칙이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영역이다. 그러한 영역에서 신뢰성 있는 채점이 이루어지려면 채점자에 대한 철저한 자격 심사와 사전 연수가 필수적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 준비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채점자들이 가질 수 있는 ‘출제자에 대한 불신의 장벽’이나 ‘문제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어야만 공정, 공평한 채점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다음 과정은 표본 작업(미리 마련된 모범 답안과 임의 추출된 학생 답안을 비교 검토)을 통해 객관화된 채점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채점자 사이에 동일한 답안을 두고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표본 작업의 결과를 가지고 어느 쪽에서 과실을 범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럴 경우 어중간하게 중간 점수에서 타협점을 찾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책임 전형 관리자는 순회하면서 공유된 채점 기준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출제의 내용과 형식이 채점자의 자의적인 채점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자체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정답이 있는 문제’를 지향하되 학생(수험생)의 창의적인 발상을 억누르지 않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단독 과제형 태도 논술이 점차 사라지고 복합 지문이 주어지는 자료 제시형 탐구 논술로 대학 입학 논술 시험이 정형화되고 있는 경향도 그와 같은 공정, 공평성의 요구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길 없는 길’의 비유가 이 단원의 큰 표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길’을 요구(수험자 입장에서는 제시)하되 언제든지 ‘새로운 길’의 탄생을 반갑게 맞이하는 창발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곳이 논술의 세계, 진정한 논증의 글쓰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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