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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25. 2019

나쁜 동물의 꿈

융심리학의 꿈해석

결론 1

‘나쁜 동물의 꿈’에서 꿈꾸는 소녀는 그녀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심리 내적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상징으로 드러나는 꿈속 현실은 무의식의 신비한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어린 몽자(夢者) 자신은 그 꿈을 경험하지만, 그녀의 의식적 자아는 그 꿈의 외부에 존재한다. 그녀는 꿈을 기억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의 해석 능력도 제한적이다. 꿈속에 내재된 그 풍성한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없다. 이 꿈의 놀랄만한 간결성과 완벽성, 헤아릴 수 없는 깊이는 아마 영원토록 완전한 해석과 적절한 표현의 범주를 벗어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기록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 몇 가지는 단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한 조심스런 시도로 간주될 뿐이다.

우리가 만약, 꿈들이란 것이 무의식 속 사건들의 자기 표현이며 의식적 마음 상태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 꿈 역시 삶의 한 특정한 국면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시인해야 한다. 이 꿈에 영향을 미쳤을 몽자의 바깥 상황(outward life)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이 꿈은 그 어떤 개인적 연상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안팎 어느 것에서도 유용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그 대신 원형적인, 상징적인 꿈으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의 집단적인 발현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융은 “원형의 활성화가 새로운 형태의 보상이 요구되는 의식의 변형 상태에 의존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라고 말한다. 그런 굼들의 의미를 탐사하는 일에는 매우 보편적인 관점과 그동안 비슷한 자료를 다룬 여러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꿈의 모호하고 희미한 성격(나쁜 동물, 작은 동물들, 푸른 안개, 신, 네 명의 신들)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그것은 이 꿈이 집단적 원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 집단적 원형적 이미지들은 아직 개인적 경험이 손대지 못한, 이른바 광역적 이미지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른바 심리의 매우 깊은 ‘지층(stratum)’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보통의 경우 개인적이고 시의적(時宜的)인 것들은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사소해진다. 문제가 보편적이고 비개인적인 것일수록 표현의 방법은 더 상징적이 되고 올이 성긴 것이 된다. 세부적으로 표현되고 윤곽이 명확한 것들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문제들과 관련될 공산이 크다. 주로 개인 무의식의 영역에서 솟아나오는 것들이다. 그에 반해 듬성듬성한 세부와 단순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세계(우주)와 삶의 장엄스런 문제들을 통찰하도록 독려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집단 무의식으로부터 제기되는 것들이다. 이들 꿈꾸는 이에게 집단 무의식으로 몰입토록 하는 꿈들은 전혀 비정상적인 것들이 아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 그렇다. 그들의 자아는 아직 굳지 않았고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심리의 집단적 원천에 근접해 있다. <중략> 미래는 무의식 속에 아직 감추어진 상태로 있고 오직 상징들의 형태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우리는 꿈꾼 소녀가 1년 뒤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염병으로 죽은 이 아이가, 그녀의 무의식이, 1년 뒤의 변고에 대한 예감을 이런 (원형적인) 꿈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융은 “아무리 그것이 나타내는 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결국 모종의 무의식적인 그 무엇을, 어떠한 인과적 기반이 없는 선험적 지식, 또는 우발적인 사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계속>
(Jolande Jacobi, Complex Archetype Symbol in the Psychology of C.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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