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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14.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감동적인 글쓰기 - 상징의 힘

수묵 정원과 가재미 

    

인간은 상징(象徵, symbol)의 동물이다. 상징 없이는 인류문화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기호학에서는 상징을 기호의 세 유형 중의 하나로 이해한다. 상징은 도상(icon), 지표(index)와 함께 기호를 이루는 한 요소이다. 기호학에서 말하는 상징은 가장 추상적인 기호이다. 도상이 물체의 모습을 본뜨고 지표가 일의 원인과 결과를 반영하는 반면 상징은 순전히 임의적인 계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언어나 숫자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상징은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이나 기호에 속하기 때문에 그 상징을 사용하는 집단 안에는 반드시 어떤 공동의 약속 같은 것이 존재한다. 상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의 약속’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일상에서나 시에서) 사용하는 ‘상징’이라는 말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보통은 추상적인 관념(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을 환기시키는 어떤 구체적인 것을 이를 때가 많다. 비유적 이미지든 서술적 이미지든, 은유든 환유든, 구체적인 어떤 것이 사용되어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모두 상징(상징적)이다. 시인들은 그런 상징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기술자들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기술을 구사한다. 그래서 시에서 만나는 좋은 상징들은 대개는 자유 연상의 결과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의식적인, 지적인 조작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 살펴볼 장석남의 시 「수묵 정원9」나 문태준의 시 「가재미」 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수묵(水墨정원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이 시는 시 전체가 상징적인 문장으로 되어 있다. 주제도 하나의 상징적 문장으로 요약된다. “삶은 번짐이다”라는 말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번짐’이라는 상징어가 모든 문장의 술어가 되고 있는 까닭에 무슨 말을 하든지 이 시 속의 시적 화자의 말은 다 상징적 표현이 된다. 그렇게 ‘번지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시인의 ‘번지는 마음’이다. 언젠가 이 시를 두고 학생들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다. 초독(初讀)을 한 뒤였다. 이런저런 의견이 많이 나왔다.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번져야 사랑이지”,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등등이 주로 꼽혔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상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재독케 한 후 다시 물었다. 그러자 조금 달라졌다. 설명들이 탈락하고 묘사들이 선호하는 문장들로 뽑혔다. 가장 많이 표를 얻은 것이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라는 마지막 구절이었다. 학생들이 맞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첫 구절이 가장 좋다.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라는 표현은 내가 평생 목련꽃을 보면서 느껴온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느낌’을 (현재까지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포착하고 있는 말이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표현이다. 그다음 말들은 오직 그 느낌을 (교훈이 되는) 말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첫 구절만이 생물(生物)이고 나머지는 다 냉동이다.” 그리고, 학교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목련 나무들을 한 번 보라고 했다. 봄의 전령으로 탐스럽게 피어나는 목련꽃의 그 아름다운 자태가 어떻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는지를 보라고 했다. ‘번짐’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그 어떤 말로도 목련꽃의 살신성인을 표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시는 그렇게 최고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문학의 소임을 말하고 있는 다음의 구절도 참고로 소개한다.


만물에 대한 연민의식, 특히 쉽게 다치거나 소멸하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생태의식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는 일이나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는 일은 다 같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 가운데서 특히 고상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특히 쉽게 다치거나 도태되는 약한 것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가 곧 생태적 태도의 기본이다. 대기나 물의 깨끗함뿐만 아니라 돌이나 풀이나 벌레 같은 것들과도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생태적인 이상이다. 이 이상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너무나 연약하고 여려서 쉽게 고통받고 쉽게 도태되고 쉽게 망가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애정을 포함한다. [이남호,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중에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것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관념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시를 한 편 더 살펴보자. 문태준의 시 <가재미>이다. 널리 애송되는 시 중의 하나다.      


<가재미(문태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위의 시 <가재미>는 ‘암 투병 중인 그녀’에게서 ‘가재미’를 보고 가재미의 여러 속성과 그것이 주는 느낌으로 ‘그녀’에 대한 연민의 정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장석남의 <수묵정원9-번짐>에서 ‘번짐’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이 시에서는 ‘가재미’가 차지하고 있다. 중심 상징어다. 이 시에서 가재미는 모든 열악한 상황의 대명사이자 병상에 누워서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그녀’의 물체적 형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가재미’ 느낌은 나에게로 전이되어 두 사람 사이를 잇는 ‘모든 생명의 대명사’로 확장된다. “그녀는 가재미고 나도 가재미고 우리 모두는 가재미 신세를 면할 수 없다”라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어머니(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추정되는 병상의 ‘가재미’를 어머니나 큰어머니 고모와 같은 구체적인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그녀’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의미의 확장’을 시인이 기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상징과 비유의 차이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상징주의’라는 말도 나오고, ‘비유어’, ‘상징어’라는 말도 나오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다 구별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학생들은(입시 위주 교육의 폐단이다) ‘말들의 책임과 경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런 입시용 질문을 받을 때는 좀 단순무식하게 말을 해줘야 한다. “상징은 그 자체의 문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의도하는 다른 관념을 환기하고(더블), 비유는 오로지 보조관념이 지시하는 의미로만 존재한다(싱글)”라고 일단 말한다. 그리고 다시 교정 작업에 들어간다. ‘비유어’나 ‘상징어’ 같은 말을 되도록 쓰지 말고, 명사적 이해보다는 동사적 이해를 많이 하라고 당부한다. 비유는 은유와 환유만 생각하고, 상징은 그것이 환기해 내는 과정이나 효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라는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으로 ‘가재미’를 데려가야 한다.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한 마리씩은 가재미를 가지고 있어야 공감이 된다. 모든 텍스트는 내 콘텍스트 안에서 재구성될 때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위의 시에서 ‘가재미’는 병환으로 바짝 마른 어머니(와 같은 존재)의 신체를 보고 떠올린 이미지, 생각, 감정(연민의 정, 분노, 안타까움, 후회) 같은 것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만들어낸(찾아낸)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재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재미 한 마리를 데려 나온 것으로 이미 한 편의 시가 탄생한다. 목련꽃이 ‘번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곧 한 편의 시였듯이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곧 가재미라는 것을 아는 순간 시는 이미 탄생한 것이다.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를, 슬픈 모든 것을, 제 한 몸에 품어내는 그 가재미 한 마리로 시인의 ‘상징적 상상력’은 다른 모든 언어들을 일망타진한다. 그다음 절차는 독자를 위한 배려다. 시인은 우선 독자들의 수준을 고려한다. 자신이 찾은 상징이 입장할 수 있도록 미리 길을 닦는다. 친절하게 ‘가재미처럼’이라는 직유법을 써서 독자들에게 일종의 ‘도상적 상상력’을 발동시켜 보라고 권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가재미’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체적으로, 전격적으로 꺼내 놓는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독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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