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터진 귤을 던질지라도!

폭싹 속았수다 영어 제목과 귤박스 같은 인생!

by 캉가루

오랜만에 인생 드라마가 나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


아주 예전에 '나의 아저씨'를 보며 어렸을 적 마트 안내소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 다 됐다. 저기 엄마 왔다. 나 이제 괜찮다. 와 같은 감정이었달까? 나의 아저씨가 건네는 위로는 참 복잡한 마음회로를 타고 나에게 전해졌고, 삶에 긴장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그 위로를 다시 느꼈다. 어쩐지, 두 드라마의 감독은 같은 사람이었다.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폭싹 속았수다'의 영어 제목은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이다. 직역하자면 '삶이 너에게 귤을 건넬 때' 정도 되겠다. 원 한국어 제목이 가진 뜻(수고 많으셨습니다)을 영어 제목에서는 어떻게 애순의 삶과 연결했을까 의문이었는데, 냅다 영어 제목에 귤이 등장할 줄은 몰랐다. 이보다 더 적합한 번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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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줄 때, 그걸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폭싹 속았수다'의 영제는 위 미국 속담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인생에 레몬같이 신맛나는 시련이 와도,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기회로 만들라는 뜻이다. 원 속담 표현을 빌려온 것이지만 드라마 속 애순과 관식의 인생 굴곡을 보면 삶이 귤을 '준'게 아니라 광속구로 '던진' 것만 같다.




귤을 받으면 꼭 감귤주스로 만들어야 할까?


레몬과 귤의 차이점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지에 있다. 레몬은 먹기 위해 반드시 가공이 필요하고, 귤은 과육 그대로 섭취가 가능하다. 즉 삶이 나에게 레몬을 줬다면 레모네이드로 만들어야 하지만, 귤을 줬다면 늘 그랬듯 껍질을 까서 맛있게 먹는 방법도 있다.


애순이의 인생 서사는 바로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 부급장을 뺏기고 억울했지만 억울한대로 살아냈고, 아들을 잃은 아픔을 잊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버둥치는게 아닌, 그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살았다. 애순이는 귤을 받아서 귤청을 만들거나, 감귤주스를 만들지 않고 귤을 있는 그대로 지켜냈다. 감귤주스를 만들기 위한 유리병, 설탕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살민 살아졌던 애순이의 삶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픔을 원동력 삼아 큰 뜻을 이루기도 하지만, 아픔을 온전히 느껴내며 순순히 살아가는 삶도 있기 마련이다. 별 수 없는 순간이 연결된 삶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 우리 엄마도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림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희노애락 가득 귤박스 같은 삶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을 보며 인생은 결국 많이 느껴본 사람이 승자라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 수능을 망쳤던 나는 이 무슨 할머니 같은 말인가 했지만 이제서야 그 뜻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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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회비를 못냈던 시절이 있었지만 서울대에 들어갔고, 영범이와 원치 않는 파혼을 했지만 자신을 더 잘 알아주는 충섭이를 만난 금명이의 파도같은 삶처럼, 또 금명이를 위해 기어이 자신들의 꿈을 꺾고 다른 행복과 시련을 얻어낸 많은 애순이와 관식이들의 인생처럼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없다.


그래서 삶을 선물받은 귤박스처럼 바라보기로 했다. 귤박스에 담긴 귤을 하나하나 조각조각 떼내어 과육을 음미해보기. 맛 없는 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다 먹기. 진짜 먹기 싫은 터진 귤은 감귤주스로 만들기. 흘러가는 대로 살되, 필요한 순간에는 과감히 귤을 갈아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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