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대출 시스템

우량자산 우량신용자는 돈을 적게 빌려드립니다

by 경작인


며칠 전 신용대출 만기 연장을 하러 은행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2% 중반 대였던 신용대출 금리가 3%대 후반까지 뛰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도만 열어놓은 마이너스 통장은 기어이 4자를 찍고 말았습니다. 1년 만에 금리가 1%씩이나 뛴 것입니다. 기준금리는 1년 사이 0.5%가 뛰었는데 시장금리가 그만큼 또 뛰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요새 1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이자율이 최소 4%대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신협이나 단위농협 같은 1.5금융이나 생보사, 손보사 같은 2금융권에 가면 오히려 3% 대가 나온다고 해요. 보다 공격적인 대출기관에서 오히려 더 싼 이자율을 제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금융을 잘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자꾸 겪다 보면 뭐가 맞는 건지 알쏭달쏭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누가 만든 걸까요?

금융 문맹률이 높은 국민들? 그걸 이용해 금융소비자를 기만하려 하는 금융기관들?

(오해하실까 봐 빠르게 자문자답하자면 당연히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제오늘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서울 아파트를 사면 대출을 70%까지 해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투자 주택을 매입해 나가던 2015~2016년엔 그랬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70%까지 대출을 받진 않았습니다. 다만, 살다가 갑자기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급전이 필요할 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위기를 모면하면 되겠구나 하는, 말 그대로의 담보 물건으로서 든든함이 있었습니다. 저도 매입한 주택을 대부분 전세를 줬기 때문에 혹시라도 역전세가 나거나 급하게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일이 있으면 거주 주택이나 해당 임대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돈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주택 담보대출 비율이 70%에서 60%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워낙 많은 부동산 정책이 나오다 보니 지금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져 버린 2017년 6.19 대책이었습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빚내서 집사라고 선언한 지 약 3년 만이었습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가 지속되자 정부에서는 자금줄을 조여 가격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런 정책을 낸 듯합니다.



619.png 지금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6.19 대책



언제 급전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대출 한도가 내려간다고 하니 일단 돈을 확보해놔야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일단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데까지 받아놓기로 결심했어요. 그동안 부동산 담보대출을 모두 남편 명의로 받아놨었기에 대책이 나온 6월 19일 오후, 바로 남편을 종용해서 은행으로 보냈습니다. 물건 당 차주가 1명이어야 대출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차주로 껴있을 경우 기존 대출 한도가 대출액이 아닌 채권최고액(대출금의 110~130%)으로 산정되므로 한도 인정이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일반인) 남편은 갑자기 웬 대출이냐며 투덜거렸습니다.


남편 : 다른 날 가면 안돼?

나 : 안돼 오늘 가야 돼. 언제 막힐지 몰라.

남편: 딱히 돈 필요한 것도 아닌데 대출을 꼭 받아야 돼?

나 : 언제 돈 필요할지 모르니까 꼭 받아야 돼. 담보가치가 높아져가는데 대출한도를 조인 다는 건 앞으로 계속 이런 기조로 가겠다는 거야. 앞으로 돈 빌리기 더더욱 어려워질 거야.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놓자.



뜬금없이 전화해서 대출받으러 은행 가라는 와이프 말에 설득이 완전히 된 건 아니었지만 일단 남편은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원은 시세를 조회해보더니 집값이 올라서 담보가치가 높아졌다며, 6천만 원 정도 더 대출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은행원 : 대출 실행일은 언제로 하실 건가요?

남편 : 오늘 당장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은행원 : 바로 돈 필요하신 거 아니면 지금 신청해놓고 한 달 안에만 실행일 지정하시면 돼요.

남편 : (당장 돈 필요한 것 아니니까) 그럼 한 달 뒤로 해주세요.



한 달 치 이자를 아꼈다며 의기양양해하던 남편에게 그다음 날 은행에서 전화가 옵니다.



은행원 : 저 고객님 죄송한데, 어제부로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대출 한도가 줄어들었거든요. 그래서 대출 실행을 바로 하셔야 어제 말씀드린 대로 대출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남편 : (……) 그럼 당장 실행해주세요.



그렇게 실거주주택을 담보로 풀 레버리징을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때만 해도 정책이 나오고니서 바로 오늘부터, 아니면 내일부터 시행! 땅땅땅! 이러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은행원도 정책 변화 같은 걸 잘 살피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6.19 대책은 그다지 약발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은 6.19 대책이라는 게 있었던 사실, 서울 아파트 LTV(주택담보대출비율)이 70%에서 60%로 줄어들었던 사건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조차 안되고 잊혔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더 큰 한 방을 내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8.2 대책입니다.



서울 아파트 LTV가 70%에서 60%로 내려간 지 두 달도 안돼서 40%로 내려갑니다. 제가 첫 집을 살 때 약 40% 정도 주택담보대출을 냈었는데 2년만 늦었어도 저는 그 집을 살 수 없었겠네요. 2년 동안 주택 가격이 조금 상승했으니 40% 금액보다 더 높은 대출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서울 아파트 평균 중위 가격을 하회하던 집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규제가 생겨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출규제들을 나열해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15억 이상 주택 대출 불가

9억 이상 주택 LTV 축소

1억 이상 고소득자 신용대출 축소

다주택자 전세대출 불가



주택 가격이 높거나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으면 대출이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주택 가격이 높다고 해서 꼭 우량자산이라는 법은 없지만, 또 소득이 높다고 해서 꼭 신용도도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현상을 보이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hello-i-m-nik-JuxcIH11CWg-unsplash.jpg Photo by Hello I'm Nik on Unsplash




며칠 전 미국에서 유학 중인 30대 초반의 사촌동생이 한국에 들어와 한탄을 했습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큰, 어쩌다 보니 공부머리가 좀 있어 썩히기 아까운 그런 동생입니다. 이런 재능이 있는 건 대단한 행운이지만 대학 졸업하고 미국 가서 석박사 하느라 고생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더라고요. 그런데 어려운 공부, 외로운 타지 생활, 막막한 미래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자기가 그렇게 고생하는 사이 학사 마치고 바로 졸업한 친구들은 한국에서 집 사고 차 사고 누릴 것 누리면서 산다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아 이게 요새 애들(?)의 박탈감이구나 라는걸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기회는 돌고 돈다, 언젠가 올 그 기회를 잡으면 된다, 오늘만 살고 죽을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같은 말로 위로를 했지만 이렇게 머리가 좋은 이 동생도 박탈감 앞에서는 사고 회로가 정지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요즘 애들의 박탈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던 게 아니니 이 얘긴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아무튼 이렇게 자기 생에 집을 사서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해 걱정하는 젊은 청년은 차라리 미국에 집을 사서 미국에 눌러앉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미국 집값이 비싼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소득도 높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주택담보대출이 80%까지 수월하게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집을 살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출발은 늦었지만 재능은 있는 이런 청년도 주거안정을 누릴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daniel-thiele-EWv_1Y9x6RE-unsplash.jpg Photo by Daniel Thiele on Unsplash




제가 한창 과로와 빡빡한 노동환경에 허우적거리며 북유럽의 복지사회를 동경하던 2014년(무주택자 시절) 스웨덴에 여행을 갔다가 그곳으로 이민 가 살고 있는 대학 동기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도 한국에 있을 때 건축설계사무소와 IT 대기업에 다니며 야근을 밥먹듯이 했었고 그 생활에 질려 북유럽으로 이민한 것이었기에 너희는 정말 선택 잘한 거다,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 때문에 진짜 죽겠다죽겠다 했더니 의외의 답변을 했습니다. 북유럽에도 밥 먹듯 야근하면서 경쟁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일한다고 어딜 가나 다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그런 직종에 종사하며 높은 연봉을 받고 싶으면 그렇게 살고, 조금 적은 보수를 받더라도 여유 있게 일하며 자기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면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후자를 선택해도 충분히 존중받으며 살 수 있다는 안정감이 뒤따른다고 했습니다. 선진국과 중진국, 후진국의 차이는 이 선택권이 있냐 없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지국가 북유럽과 대한민국의 차이, 아니 심지어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다는 미국과 대한민국의 차이는 바로 이 기회와 선택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이 주거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것일까요. 이 이상한 나라의 대출 시스템은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존속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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