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워

by 경작인



2015년 7월에 생애 첫 집을 계약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벌써 집 3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4억 7천만 원짜리 집 계약할 때도 집을 몇 번씩 다시 보고 계약하고 나서도 멘붕 상태로 앓아누웠던 제가 말이에요. 그 당시에도 이미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저점을 찍고 반등한 상태였지만, 아직 주변에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던 때였습니다. 부동산에 관심 있다, 부동산으로 돈 좀 벌었다 라고 낙인이 찍히면 어린 게 벌써부터 열심히 일 할 생각은 안 하고 ㅉㅉ 하며 사회생활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닌가 걱정할 법한 시절이었지요. 물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합니다만. 지금처럼 자산 가격 증가 속도가 노동소득 증가 속도보다 월등이 높고, 정부 정책으로 인해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어려운 데다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청년들이 집을 살래야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컨센서스가 아직 이뤄지기 전이었죠.



그러다가 2021년 상반기쯤이었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유머 짤을 보게 됩니다.





이걸 보며 딱 그 시절의 제 얘기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아직 반정부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도했지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걸 5년 뒤가 되어서 알게 되었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마음이 편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다주택이 마려웠던(?) 저는 세 번째 주택 구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은행에서 저의 신용을 과대평가 해준 덕분에 시드머니가 약간 남아있기도 했고 언젠가는 지금 가진 걸 팔고 갈아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시장 모니터링을 계속해나가고 있었어요.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점점 진짜 상승장 임을 확인시켜주며 달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 약간 외곽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가 미분양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25평의 매매가가 약 5억 정도라 계약금 10%인 5천만 원만 있으면 바로 계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위치가 서울 외곽이라 좀 매력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만큼 분양가에 반영되어있다 싶었습니다. 월세를 살아도 신축에 살겠다는 제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을 보면서 신축에 이 가격이면 사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군다나 주변 재개발 구역도 진행되고 있거나 곧 진행이 될 것으로 보였기에 2~3년만 있으면 천지개벽할 동네로 보였습니다. 이런건 무조건 사야죠. (이전 편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동네​ 참조)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입주 시기였습니다. 2016년에 분양한 이 아파트는 2018년에 입주할 예정이었고, 주변 단지들도 대부분 2018~2019년 사이에 입주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부동산 폭락론자들의 예언과 같이 여겨지던 멘트가 바로 '2018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쏟아져서 집값 떨어진다'였습니다. 실제로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아무리 입지 좋고 선호하는 동네라던 잠실도 2008년 1만 세대 넘는 공급이 쏟아지자 가격이 출렁했던 적이 있었죠. 특히 이 시기에 잠실 전세가가 폭락했던 기록이 있는데 저의 경우 추가로 구매하는 주택은 거의 임대를 놓을 것이었기 때문에 2018년 입주하는 물건을 사기가 망설여졌었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차에 아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경기도 외곽 지역에 자기네 회사에서 공급하는 단지가 있는데 주변 빌라 전세가에 110% 수준에 분양하는 아파트라고 괜찮지 않냐고 물어왔습니다. 그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빌라 전세가의 110% 수준의 분양가라면 당연히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분양가도 25평이 2억 4천만 원으로 서울 아파트의 반 값 수준이었습니다. 단지 흠이 있다면 분양 조건 상 계약금이 20%라 5억짜리 서울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의 시드머니가 들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도 입주 시기는 2018년이었지만 주변 빌라 전세가가 이미 받쳐주고 있었고, 또 여기서 10~20% 떨어진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이 경기도 외곽 아파트도 청약에서 미달이 납니다. 그 당시 서울 외곽 아파트도 미달이 났으니 당연한 결과였겠죠. 그래서 달려가서 이 아파트를 계약했습니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퇴근 후 지하철 1호선에 몸을 맡기고 지리한 시간을 덜컹거리며 겨우 모델하우스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퇴근시간이라 지하철엔 사람이 가득이라 앉을자리도 없었는데 또 새 집을 계약하러 간다는 생각에 설레서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었던 것 같아요. 하염없이 덜커덩거리며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바깥세상을 쳐다보며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지금 이 칸에 탄 사람들 대부분 이렇게 긴 시간을 서서 견디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다들 서울 서울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요.




대체로 모델하우스는 6시면 폐관하기에 계약을 하려면 휴가를 써야 했습니다. 분양 초기니까 계약자가 몰려서 늦게까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델하우스에 전화를 했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고객님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시라고 했던 분양 담당자 목소리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막상 모델하우스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고 그 담당자 한 명과 저뿐이었습니다. 나 때문에 퇴근도 미룬 건가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습니다. 미분양 상태라 계약자 한 명이라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서 기다리겠다고 했겠구나 싶었죠. 요새처럼 견본주택에 방문 예약을 안 하고 그냥 가면 문전박대당하는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때입니다. 새삼스레 부동산은 대접받으면서 살 때가 적기다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중개사무소나 견본주택에 파리 날릴 정도로 시장 혹한기일 때 사둬야 크게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인데요, 사실 저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때가 하락기 초반 일지 말기 일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과연 저는 이 날 이때의 선택이 잘한 것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2년 뒤, 즉 2018년 여름 이 집이 입주하기 직전 팔았습니다. 시세는 분양가의 10% 정도 올랐습니다. 2년 동안 모델하우스 갈 때 한 번, 공동명의로 변경하기 위해 한 번, 중도금 대출 자서 하기 위해 한 번, 총 세 번만 왔다 갔다 하면서 쓴 교통비가 채 20만 원이 안될 텐데 약 2천만 원의 수익을 얻었으니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같이 고민했던 서울 외곽의 아파트는 같은 기간 동안 2억 원이 넘게 올랐거든요. 2018년 입주물량은 예상대로 철철 넘쳐흘렀는데도 하락장 같은 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상승장 초반이라 아직 시장에 에너지가 넘쳤고,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유동성도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도 입주물량이 많긴 했지만 그보다 더 우려가 많았던 물량은 서울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경기 남부에 집중되어 있었어서 서울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경기 남부는 약간 영향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2016~2018년 사이에는 서울 아파트 시장이 활활 타올랐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열기가 경기도 외곽까지 퍼지지 않았었죠. 같은 투자금 5천만 원을 가지고 2년을 기다렸더니 어떤 건 2천만 원이 오르고 어떤 건 2억 원이 오르는 걸 보며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실 전세가가 받쳐주는 동네였기 때문에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됐었을 거예요. 그런데 왜 팔았느냐 하면 바로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이 집까지 준공돼서 등기를 치면 4주택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면 이제 진짜 빼도 박도 못하게 다주택자가 되게 생겼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다주택이 되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세금인데, 저의 경우는 앞서 구매한 서울 주택 3개를 가지고 비과세 세팅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경기도의 주택 1개가 더 생기면 이 시나리오가 무너지게 생겼던 것이죠. 이미 서울에 사놓은 투자 주택 만으로도 수억 원의 수익이 나서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하면 결국 수익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게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3주택이면서 어떻게 비과세를 받을 수 있냐구요? 임대주택과 임대사업자의 거주주택 비과세와 일시적 1가구 2주택을 믹스한 약간 복잡한 전략인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ㅎㅎ 지금이야 이 전략도 꽤 많이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보도 없고 국세청에 질의를 해도 답변이 오락가락해서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세금 수 억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었기에 정말 여기저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찔러보고 물어보고 해서 겨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택이 늘어갈수록 세금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고생하느니 그냥 여기서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침 입주시기가 둘째 아이 출산과 겹쳐서 시간 내기 어려운 시기에 입주자 사전점검에, 등기 치고, 임차인 들이고 신경 쓸 일 많게 하느니 그냥 속 편하게 팔아버리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시원하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2년 뒤(2020년) 그 집은 2배가 됩니다. 이제 시장의 온기가 경기도 외곽까지 퍼졌거든요. 어차피 추가로 더 돈 들어갈 일도 없었을 텐데 조금 수고스러웠겠지만 그냥 갖고 있을걸 하는 생각, 솔직히 안 하진 않습니다. 배도 살짝 아프구요.ㅎㅎ 그렇지만 세상 모든 좋은 일을 내가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수익을 내가 다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도는 '뒷사람이 먹을 것도 남겨둬야 탈이 없다'는 말도 있듯이요. 그리고 매수자가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동갑내기 신혼부부여서 더 뜻깊기도 합니다. 대부분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최소 저보다 10살은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처음으로 나와 같은 나이의 상대를 만났거든요. 요새 세대 간 부의 격차가 늘어나면서 젊은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꺾이고 있는데, 적어도 나에게서 그 집을 사 갔던 사람들은 조금 형편이 낫겠구나 하는 생각에 뭔가 조금 뿌듯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주택 라이프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이나믹하게 집을 모아가던 시절은 잠시 쉬고 이제부터는 수성의 시기가 시작될 거예요. 어쩌다 보니 1년 만에 무주택에서 다주택이 된 저는 과연 즐겁고 행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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