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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Jul 26. 2022

고기 없는 월요일

이 헛헛함은 진짜 헛헛함이 아니여



MZ세대의 특징으로 많이 알려진 것들은 주로 개인주의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 등이다. 그 외에도 여럿 있는데 이렇게 특징을 나열하다 보면 대여섯 번째 줄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환경문제에 민감하다는 것.



MZ라고 하기에 민망한 나이대이긴 하지만 암튼 나도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 자연환경은 유한하니까. 한번 오염되면 정화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요구되니까. 물을 아껴 써야 하고, 합성세제는 최대한 적게. 쓰레기는 재활용품 분리수거하고, 물건은 필요한 만큼만  . 어린 시절 배웠던 환경보호 활동의 전반에는 인간이 쓰는 화학물질이 환경에 안 좋으니 그런 것들을 최대한  쓰자는 개념이 깔려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먹는 것도 문제란다. 특히 비교적 간단히 요리해도 맛도 좋고 포만감도 쉽게 을 수 있는 고기를 먹는  문제란다.




전 세계 살고 있는 인구수는 77억인데 전 세계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의 수는 650억 마리라고 한다. 한 사람이 일 년에 약 8마리의 닭을 먹는 셈인데, 이 어마어마한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닭장에 가둬 키운다. 오죽하면 ‘닭장 같다’라는 말이 무언가가 빽빽하게 차서 공간의 여유가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을까. 더군다나 이들은 24시간 환하게 밝혀놓은 불빛 때문에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알을 낳는다. 닭도 좀 돌아다니고 진흙탕 목욕도 좀 하고 해야 몸에 붙은 세균들도 털어내고 할 텐데 이를 하지 못하니 병이 들게 되고 또 이를 막겠다고 인간은 닭장 전체에 살충제를 뿌린다. 인간의 식욕을 위해 살충제에 목욕시켜가며 닭을 키우고 인간은 또 그 닭을 먹는다. 이쯤 되면 도대체 닭을 먹는 행위가 누구에게 더 해가 되는 것인가 싶다.




소나 돼지는 사육환경이 조금  낫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다. 소나 돼지의 먹이로 사용되는 곡식이  세계 곡물 생산량의 1/3이나 되고, 이를 생산할 경작지를 마련하기 위해 숲이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이산화탄소를 잡아먹던 숲이 사라지니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더군다나 소가 트림할 때마다 발생하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0  강력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물질이다. 소가 트림해봤자 얼마나 하겠어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연간 이렇게 발생되는 메탄이 1 톤 가량이라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탄소 배출량의 15% 축산업에서 온다고 하니  이상  말이 없다.




이쯤 되면 고기를 당장 끊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몇십 년을 이어왔던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나.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만 고기를 안 먹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침 초등학생인 아이가 방학 과제로 '기후행동 1.5도 실천하기'를 받아와서 기회다 싶었다. 의외로 아이는 긍정적이었다. 주말에는 기름지고 맛있는 게 먹고 싶을 수도 있고 주중에는 기운이 떨어져서 힘을 내야 하니까 가장 힘이 넘치는 월요일에 고기를 안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정해졌다. 고기 없는 월요일.






그런데 당장 월요일이었다. 애는 방학을 해버렸고, 삼시세끼 밥 차려줘야 할 나는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당장 내일, 하루 동안 고기를 안 먹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냉장고에 뭐가 있나 쭉 스캐닝을 해보았다. 아침은 어차피 간단히 먹으니까 고구마와 토마토를 먹기로 하고, 점심은 두부를 구워 먹으면 되려나. 저녁은 뭘 먹지 하면서 일요일 밤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이 우유를 달라고 해서 한 잔씩 따라줬다. 그러고 보니 우유는 동물성 식품인데? 우유나 계란 같은 것들도 동물성 식품이니까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것까지 안 먹으면 진짜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우유, 계란까진 봐주기로 했다. 비건에도 단계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일단 가장 최소한의 비건을 실천해보는 거야.



어젯밤 계획했던 대로 아침은 고구마를 굽고 토마토를 숭덩숭덩 썰어서 간단하게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은근한 열로 구워낸 고구마는 수분이 날아가 젤리처럼 쫀득해져 본래의 맛보다 더 달콤했고 토마토에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




아이가 잠시 오전 수업  사이 점심은 뭘 먹지 고민하는데 두부만 구워 먹으려니 왠지 허기가   같았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나물  종류가 약간 남아있었다. 멸치볶음도 반찬통 귀퉁이에 붙어서 조금 남아있었다. 멸치는 천연자원인 바다에서 자생한 녀석이니까 먹어도 되겠지. 점심 반찬은 모두 검열 통과다. 아참, 근데 국이 없네. 냉동실을 뒤져 국물용 멸치로 육수를 내고 계란 두 개를  까서 휘휘 저어 계란국을 만들었다. 계란은 먹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헤헤.



요리 블로거는 아니라서…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왠지 허전했다. 고기가 구워질 때의 그 냄새, 기름진 육즙, 쫄깃한 식감이 왠지 생각나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구워놨던 고구마를 한 개 더 까먹었다. 분명 배는 충분히 부른 것 같은데. 고기를 안 먹어서 생긴 헛헛함을 탄수화물로 달랬다.




학원 가기 전 자주 간식으로 해줬던 핫도그도 안되고, 햄치즈 샌드위치도 안되고, 만두도 안되고. 하나씩 엑스표 치다 보니 평소에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었었는지, 특히나 냉동된 가공육을 얼마나 많이 먹었었는지 알게 됐다. 먹는 것 하나만큼은 신경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빠진 일상을 핑계 삼아 너무 아무렇게나 먹고 있었구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결국 간식으로 바나나를 줬다. 이 바나나가 날아온 거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발생량… 푸드 마일리지를 따지자면 먹어서 별로 좋을 게 없는 식품이지만 일단 오늘은 고기 안 먹는 것만 실천해보자.




오후 내내 왠지 헛헛했다. 이 헛헛함은 뭐랄까 진짜 영양이 부족해서 온 헛헛함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것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점심 먹고도 헛헛했는데 저녁에도 헛헛할 순 없었다. 뭘 해 먹어야 이 헛헛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짜장 떡볶이를 해 먹기로 했다. 왠지 떡볶이는 고기가 안 들어가도 소비욕을 과시하며 먹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음식 아닌가(나만 그런가). 지금 내가 느끼는 헛헛함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 떡볶이 정도면 달래줄 수 있을 듯했다. 마침 며칠 전 쇼핑몰에 비건 짜장 가루가 있어 신기해서 사다 놨었는데 이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양배추, 감자, 당근을 썰어 넣고 말린 유부와 짜장가루를 풀어서 짜장을 완성했다.




떡볶이니까 떡을 넣어야지 하고 냉장고를 뒤졌는데 세상에 떡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에라이... 하는 수없이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데워서 짜장밥으로 메뉴를 변경했다. 짜장밥이나 짜장떡볶이나 짜장+쌀 인건 매한가지니까. 그렇지만 뭔가 (고기는 없지만) 불량식품이 먹고 싶었던 마음을 강제로 정화당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 준비를 해놓고 학원 간 아이를 픽업하러 버스정류장에 나갔다.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며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엄마 치킨 먹고 싶어요.


너도 짧은 생이지만 육식 생활에 길들여졌었구나.




집에 와서 아이는 짜장밥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고기는 없지만 나트륨 가득한 맛이니까 아마도 헛헛함을  있었으리라.




이러던 와중에 그날 우연히 '착한 소비는 없다'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정말 우연찮게도 '고기 없는 월요일'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그것도 화요일, 수요일도 아닌 월요일! 비틀즈 멤버 폴 메카트니가 2009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시 세계인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채식을 통해 탄소 발생량을 줄여보자는 의도에서다. 이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 곳곳에서 있었다니, 그것을 몰랐던-또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그동안의 세월이 안타까웠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니 앞으로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고기 없이   있을  았다. 메뉴 선정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한마디로 고기 없이도  먹고  산다는 심적 포만감을   있는, 예를 들면 비건짜장 같은 메뉴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은 너무 대비 없이 갑자기 맞이하느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번째,  번째 고기 없는 월요일은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리라.



* 이 글 중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은 ‘착한 소비는 없다책의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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