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브런치 앱에 접속했다.
브런치 앱을 사용하는 작가라면, 그중에서도 종종 글을 안 쓰고 쉬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글을 좀 쉬고 있노라면 이 브런치기 자꾸만 글을 쓰라고 종용을 해대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아니 무슨 전업작가도 아닌데 좀 쉬면 안 되나. 안 그러도 요새 뭐라도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무한경쟁무한노오력의 시대인데 취미로 하는 글쓰기까지 채찍질당하다니ㅜㅜ라고 투덜대지만 아무튼 약간의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오늘 마음먹고 브런치 앱에 접속해 그동안 썼던 글을 읽어봤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훌쩍훌쩍 눈물짓기도 하고 온갖 청승을 다 떨고 나니 뭐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아서 끄적여보려고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소재부터 안 떠오른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보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참 힘들었을 때 어디 가서 딱히 하소연할 데가 없어 휘갈겨 쓴 글이 대부분이다. 정말 말 그대로 ㅆ지른 글들. 배설의 욕구가 차고 넘쳐 마구 뱉어낸 글들. 제목 그대로 결핍이 창작의 씨앗이었다.
요새 나는 생애 가장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 일이 딱히 힘들진 않고, 내 마음대로 다 되진 않지만 또 딱히 내 마음을 크게 거스르는 일은 없다. 종종 근황을 묻고 떠들 친구들이 있고 또 그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내며 건강을 유지하고 취미라 할 법한 것도 생겼다. 때로 생업이 잘 안 풀려서 답답해질 때쯤 기가 막히게 또 일이 잘돼서 역시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 없네 타령을 해댄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래서 그런가 쓸 글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결핍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건수가 있어서 우리 집에 애들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아이에게 너의 생각은 어떻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다.
나야 좋지. 근데 요새 친구들이 우리 집에 좀 자주 오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겨울방학 시작한 후로 우리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온 게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됐다. 원래는 내가 회사에 다니느라, 회사에 나가지 않을 땐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 누굴 초대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었는데 요샌 그런 제약들이 없다 보니 걸핏하면 우리 집에서 놀자가 된 것. 날씨가 추우니 나가기 어려운 것도 한몫했다.
엄마가 언제 다시 밖에 나가서 일하게 될지 몰라. 그게 당장 올해일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친구들 집에 초대할 수 있을 때 많이 같이 놀자.
딱히 밖에 나갈 일이 예정되어 있지도, 계획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입에서 나왔다. 하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이제는 다시 나갈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필명 겸 닉네임이 필요했는데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냥 경작인이라 지었다. 대단한 의미가 숨어있는 건 아니고 그냥 씨를 뿌리는 사람을 뜻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씨를 뿌리고 물도 주고 가꾸고 하면서 수확하는 것. 그러고 나서 좀 쉬다가 또 저쪽에 가서 저쪽에 뿌린 씨앗도 돌보고 키우고 수확하고. 이렇게 씨 뿌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겠다는 나의 마음이 이 이름을 갖게 한 것 같다.
그동안 이런 씨도 뿌리고 저런 씨도 뿌리고 이것저것 이분야저분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이도 뿌렸다. 가꾸는 게 쉬운 씨앗도 있고 참 어려운 씨앗도 있다. 매일 돌아봐야 하는 갓도 어쩌다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있다. 가끔 키우다가 너무 힘들면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올해 뿌릴 씨앗은 어떤 것들 일지. 나를 브런치 앱으로 매일같이 출근을 하게 할지 어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와서 잡소리나 늘어놓고 간다. 나중에 이 글을 읽어보면 아나이때 엄청 태평성대였나 보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