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에 잡아먹힌 한국 사회

한국 사회의 비교, 경쟁, 불평등을 다룬 책들

by 수호

숫자 사회 | 임의진 | 웨일북
쌀 재난 국가 | 이철승 | 문학과지성사
세습 중산층 사회 | 조귀동 | 생각의힘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김효경 | 남해의봄날


한국 사회가 불행한 사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 지수는 OECD 38개국 중 35위입니다. 사실 이런 통계치까지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불행을 설명할 때 빠져선 안 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비교'입니다. 소득, 직업, 아파트, 자동차, 학력, 명품...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비교에 대한 집착은 가혹한 경쟁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물질적, 외형적 가치를 향한 무한 경쟁으로 꽉 차 있습니다. 비교와 경쟁이라는 족쇄는 사다리 없는 불평등 구조와 만나 한국 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자아냅니다.


끝없는 비교에 잡아먹힌 사회, 그래서 끊임없이 불행한 사회. 우리는 변화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여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선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비교, 경쟁, 불평등의 문제를 분석했거나 그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숫자 사회

임의진 | 웨일북 | 2023


비교의 핵심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많은지 적은지, 많다면 또 얼마나 많은지, 누구의 숫자가 더 큰지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비교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은 자는 부족하니 불행하고, 많은 자는 잃을까봐 불안합니다. 국제개발 전문가인 저자는 책에서 돈에 매몰된 한국 사회를 폭넓게 조망합니다. 중간 강박, 높아진 삶의 기본값, 단일한 성공 경로 등 한국 사회 특유의 모습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돈에 미친 사회의 기저에는 커다란 '불신'이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공동체, 삶의 다양성, 신뢰의 회복으로 사회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하자는 저자의 제언은 우리의 불행에 대한 가장 어려우면서도 확실한 답이겠습니다. 거대하고 무거운 문제를 다루면서도 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공감되는 부분이 워낙 많아 술술 읽힌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쌀 재난 국가

이철승 | 문학과지성사 | 2021


비교와 경쟁, 그로 인한 불평등과 불안. 한국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사회학자 이철승은 동아시아에 맞지 않는 서구의 사회과학 이론에 기대는 대신 동아시아가 '쌀' 경작지였다는 생태적 조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노동집약적인 쌀을 경작하며 형성된 문화적 습속과, 쌀 농사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했던 역사적 배경이 동아시아에 사는 현대인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약적으로 느껴지는 주장이지만, 고고학적·역사적 사료 분석부터 자연과학 연구, 풍부한 경제·사회 통계자료까지 동원한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면 그 설득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고대 한반도 정주민들의 벼농사 체제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에 집중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초점을 21세기 한국으로 옮겨와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을 분석합니다. 저자가 한국 사회 불평등 구조의 핵심으로 꼽는 '연공제'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학문적 엄밀성을 지녔으면서도 읽는 맛이 있는 문체와 서구 학계와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지식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향한 비판의식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지니고 있는 누구에게나 강력히 추천합니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 생각의힘 | 2020


한국 사회는 불평등한가요? 우문입니다. 불평등은 우리 사회는 물론 인류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불평등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입니다. 책은 오늘날 20대가 겪는 불평등이 과거 세대가 경험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다차원적' 불평등이라 말합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소득은 물론 학력, 직종, 네트워크, 가정, 주거, 심지어 노력(비인지적 능력)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상위 10% 중산층과 나머지 90%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같은 격차는 90년대생의 부모인 60년대생 중산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교육을 통해 '세습'하는 구조로부터 연원합니다. 저자는 방대한 양적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해 '세습 중산층' 구조가 실재함을 드러냅니다. 체계적인 목차 구성과 철저히 통계에 근거하는 합리적인 접근은 책의 신뢰를 더합니다. "'60년대생'이 아니라 '세습 중산층'이 문제"라는 저자의 비판은 우리가 가야 할 지점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불평등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김효경 | 남해의봄날 | 2019


먼저 소개한 책 《숫자사회》에서는 우리에게 신뢰가 가득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그런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가능은 한 걸까요? 책 속에서 소개되는 '자루마을'은 고급 원두로 공짜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가 있고, 이웃끼리 서로 퀼트와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며, 여름에는 옥수수를 굽는 야외 영화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한 썰매를 만들어주는 마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이에 '돈'이 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도시에서 살던 저자는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자루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고, 마을에 가득한 베풂과 호혜, 존중과 관심을 경험하며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책은 자루마을에서의 일상과 스스로 겪은 변화, 마을의 역사를 경쾌하면서도 솔직한 문체로 전달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대안공동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일상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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