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시 읽기에 관한 책들

by 수호

시 읽는 법 | 김이경 | 유유

인생의 역사 | 신형철 | 난다
시론 | 정끝별 | 문학동네

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 한겨레출판


시와 사람들의 거리가 이만큼 먼 때가 또 있었을까요. 화려하고 중독적인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가득한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 않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산물 정도로만 느껴집니다. 시대를 향해 침을 뱉던 시는 이제 그 힘을 잃은 것일까요?


그럼에도 시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길가메시 서사시로부터 현재까지, 시는 40세기가 넘게 인류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여전해서, 2022년에는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가 시집으로서는 오랜만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가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시만이 품을 수 있는 미학이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시가 아무리 좋을 지언정,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시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다 시집을 읽게 돼도 금방 덮기 일쑤입니다. 시와 다시(또는 처음으로) 가까워지기 위해선, 독자와 시 사이를 이어줄 다리가 필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집이 아닌 시 '읽기'에 관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시 읽는 법

김이경 | 유유 | 2019


무엇이든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시와의 첫만남을 위한 책으로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요. 『시 읽는 법』은 저자가 시를 주제로 진행했던 강의록을 정리해 쓴 '시 입문서'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초등학생부터 80대 인생 선배까지,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해온 저자답게 어려운 부분은 싹 걷어내고 자유롭고 즐겁게 시 읽는 법만을 남겼습니다.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구어체로 쓰여 있어 술술 읽히고, 영화나 시인의 삶, 역사적 맥락이 곁들여져 있어 독자의 흥미를 돋웁니다. 저자의 솔직한 경험과 감상이 녹아든 설명들은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공감을 끌어냅니다. 시의 정의와 특징부터 사회적 역할까지 폭넓게 다루다 보니 얇은 책임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를 처음 만나신다면, 이 책과 함께 시로의 '일상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실까요.


인생의 역사

신형철 | 난다 | 2022


신형철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쓴다"는 메모를 남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저만의 인상은 아니었는지, 신형철의 시화집 『인생의 역사』는 시 관련 책으로는 드물게도 장기간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한겨레》에서 연재한 스물다섯 편의 시 이야기에 더해 부록으로 다양한 주제로 쓰인 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평론이 아닌 시 이야기(詩話)의 모음집인 만큼 편하게 읽히지만 시 읽기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깊이는 시 이론과 같은 전문지식이 아닌 저자(와 독자)가 직접 겪은 경험의 깊이로부터 기인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 인생 그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결국 진실로 다가옵니다. 시를 좋아하는 이는 물론, 시를 처음 접하거나 심지어 시를 싫어하는 이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시론

정끝별 | 문학동네 | 2021


시인이자 시 평론가이자 시 연구자인 정끝별이 '지금-여기'의 시학서를 펴냈습니다. 25년에 걸쳐 작성한 시학 논문 18편을 다듬고 엮어 첨단의 시 읽기를 위한 안내서를 완성했습니다.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철학, 언어학, 미학을 가로지르는 인문학 이론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책을 이루는 문장들도 함축적이어서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책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시론』과 함께 "손바닥만한 우주"가 담긴 시를 알아가는 지적 즐거움이 무척 컸기 때문입니다. 책의 전체 목차 및 각 장별 세부 목차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시를 읽기 위한 자신만의 틀을 갖춰나가기도 좋습니다. 책 속에서 예시로서 인용하는 시들도 가히 한국 현대시의 '어벤져스'라 할 만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어지는 알레고리, 아이러니, 패러디, 환상, 그로테스크, 도상시 등의 포스트모던한 시학은 다른 시론서에서는 보기 힘든, 이 책만의 고유한 시학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입니다. 깊이 있는 시 읽기와 시 쓰기를 꿈꾸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정여울 | 한겨레출판 | 2023


시, 더 나아가 문학이 무용하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문가 정여울은 책의 서문에서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곳에서는 마음껏 울어도 괜찮은 시간, 이곳에서는 마음껏 세상을 향해 소리쳐도 되는 시간을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시간"이라고 역설합니다. 이 책에는 오랜 시간 문학을 읽고 문학을 써온 저자의 '문학 예찬'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유려한 문장, 확실한 메세지, 독창적인 시선으로 가득찬 글을 읽다보면 당장 문학책을 집어들고 싶어집니다. 저자는 문학의 범위를 협소하게 보지 않습니다. 시와 소설은 물론이고 희곡, 영화, 신화, 음악, 심지어는 마르크스의 문장에서까지 문학적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각 글들의 사이에 끼어있는 작가의 여행사진과 그에 대한 단상들도 포근한 감동을 줍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께 건네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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