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책들
근현대사는 인권 신장의 역사입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억압받던 이들은 목숨을 건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해냈고,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서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선진국은 법률로서 차별을 금지하고 기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가 각자의 권리를 누리는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일까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적도, 성 정체성도, 나이도, 경제적 수준도, 종(種)도 다르지만 사회의 자원과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다양한 층위의 차별을 받는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목소리는 그들을 향한 연민, 하대, 회피, 은폐, 정당화 속에서 묻히기 일쑤였습니다.
여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 일상과 꿈, 억압에 맞서온 여정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불쌍하거나 무능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납작하게 그리는 대신 그들의 경험을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선 방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기록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관철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입니다." 책의 서두를 장식한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의 부티탄화 회장의 선언에 전율을 느낍니다. 책은 옥천 지역의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 그리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연대하고 저항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당사자의 목소리로 책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 텍스트의 3분의 2 이상이 결혼이주여성 당사자의 인터뷰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어 생생한 경험과 감정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주여성이 겪는 고통을 다차원적으로 조망한 점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의 폭력에 당당히 맞서 싸는 '언니'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매력적입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겪어낸 그들'"이라는 저자의 태도가 일종의 정답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입니다. 인류의 5~10% 정도가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사회가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화두로 다양한 목소리를 기록해온 작가 희정이 침묵과 은폐를 강제당해온 청년 퀴어들의 목소리를 모아냈습니다. 책은 노동시장 진입기의 청년 성소수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들의 삶과 노동, 그 속에 만연한 차별을 기록했습니다. 통계와 학문적 이론, 인터뷰에 근거한 논픽션이지만 물 흐르는 듯한 스토리텔링 덕에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특히 퀴어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모두의 고단함과 연결되는 접점을 포착하는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퀴어가, 청년이,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 불안이 결국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과 다를 바 없다는, "결국 우리는 모두 퀴어"라는 선언에 설득되고 맙니다
한국 사회는 불평등한가요? 우문입니다. 불평등은 우리 사회는 물론 인류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불평등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입니다. 책은 오늘날 20대가 겪는 불평등이 과거 세대가 경험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다차원적' 불평등이라 말합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소득은 물론 학력, 직종, 네트워크, 가정, 주거, 심지어 노력(비인지적 능력)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상위 10% 중산층과 나머지 90%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같은 격차는 90년대생의 부모인 60년대생 중산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교육을 통해 '세습'하는 구조로부터 연원합니다. 저자는 방대한 양적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해 '세습 중산층' 구조가 실재함을 드러냅니다. 체계적인 목차 구성과 철저히 통계에 근거하는 합리적인 접근은 책의 신뢰를 더합니다. "'60년대생'이 아니라 '세습 중산층'이 문제"라는 저자의 비판은 우리가 가야 할 지점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불평등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먼저 소개한 책 《숫자사회》에서는 우리에게 신뢰가 가득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그런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가능은 한 걸까요? 책 속에서 소개되는 '자루마을'은 고급 원두로 공짜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가 있고, 이웃끼리 서로 퀼트와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며, 여름에는 옥수수를 굽는 야외 영화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한 썰매를 만들어주는 마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이에 '돈'이 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도시에서 살던 저자는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자루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고, 마을에 가득한 베풂과 호혜, 존중과 관심을 경험하며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책은 자루마을에서의 일상과 스스로 겪은 변화, 마을의 역사를 경쾌하면서도 솔직한 문체로 전달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대안공동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일상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