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브륄레 Oct 10. 2022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이유

어쩔 수가 없었어요

"퇴사하지 마세요."

몇 달 전 나는 그 말에 속으로

'개소리'라고 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면서 대체 왜 퇴근하고 하라는지 어이가 없었다. 퇴근하고 시간도 없는데 그 조그만 시간을 투자해서 언제 본인만의 입지를 다지고 전문성을 쌓아 1인 기업이나 프리랜서로 성장한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랄 판에 퇴근하고 하라니. 답답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회 초년생의 멋모르는 소리였다.


몇 달간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배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었다. 고객들은 지갑을 호락호락하게 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있었다. 공부를 몇 달간 했는데 실천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수익은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시작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버티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생활비를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 아이템 판매가 처참히 끝났다. 계절이 끝나감에 따라 내 아이템을 찾는 사람도 점점 없어졌다. 애초에 무언가 더 테스트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계절은 빠르게 지나갔고, 나의 아이템도 빠르게 저버렸다. 

두 번째 아이템은 계절에 타지 않는 상품을 판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심차게 아이템을 선정하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모은 돈은 다 써버린 후였다. 더 이상 무언가 팔 수 없었다. 판매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물론이거니와 생활비조차 없었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는 죽기보다 더 쪽팔렸다. 생활비라도 벌어야만 했다. 앞으로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자금 마련이 절실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기업에 취직하는 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제외했다. 일정한 시간에 일하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아서 남는 시간에 혼자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바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생각했다. 어린이집이었다. 그렇다. 나는 아동 관련학과를 나왔기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보조교사는 하루에 4시간 30분만 일하고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을 받는다고 한다. 이쪽으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당장 내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이쪽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 낼 자소서를 하루, 이틀 만에 써서 냈고 두 군데에 면접을 봤다. 두 군데 모두 합격했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또한 버텨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 하는 내가 제 발로 가기 싫은 곳에 취직하다니.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이상에 취해있는 나도 이렇게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구나. 하지만, 이는 잠시 쉬어가는 것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님을 되새기며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첫 출근을 기다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