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는 방법
'이대로는 안돼...!'
어린이집 출근 2일 차.
아직 일은 서툴러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매번 새로운 일을 하며 진땀 빼고 있었다.
아이들 놀이 지원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여기서 선물 포장을 하고 있지?
더군다나 나는 손재주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최선을 다 했지만 삐뚤빼뚤 포장된 상자를 보니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내가 봐도 형편없는 포장이었다. 이런 작은 일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꼭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마침내 이 일도 형편없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의미가 없다. 이 일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서 시작한 일이라지만 나는 이쪽으로 나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더군다나 직업 특성상 이 일에서 배운 것은 다른 직종에서 쓸모 있지도 않다.
아이들을 잘 보육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냔 말이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나에게 의미 있고 앞으로의 커리어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또, 안정적으로 돈을 벌 때까지는 이 일을 지속해야만 했다. 당장 그만둔다고 돈 나올 구멍은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일이 나에게 보람차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겨우 출근 2일 차에 무력감과 우울함에 빠졌다.
'내일 출근하기 싫다.'
내일이 오는 게 조금 두려워졌다. 12시엔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유튜브에 들어가니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드로우앤드류다. 멋있게 사는 사람. 너무 눈부셔서 미치도록 질투 나고 미치도록 부러운 사람. 이번 영상에서는 내적 동기인 기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키기를 기다리기보다 딱 팔을 걷고 '여기서 내 할 일은 뭐지?'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세가 있어요. 내가 이 팀에 뭔가를 더할(ADD) 수 있을 것인가? 기여(CONRIBUTE) 할 수 있을 것인가?"
'아 나는 이틀 동안 시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나는 어린이집에 뭘 기여할 수 있지..? 잘은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이 말씀하기 전에 오늘 했던 일을 해야겠다.'
"나를 위해 가는 길 중에.. 기회가 처음부터 큰 게 오지 않잖아요. 처음에는 여기 닦으라 할 수 있어요. 그거에서도 '내가 여기 닦아서 예쁘게 보이면 좋겠다.' 이런 기여의 마음을 가지고 그 길을 가다 보면 그 사람한테 더 기회가 오게 되어있어요."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의미 없다고 하는 일들은 전부 저런 허드렛일인데. 나는 거기서 어떤 기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예쁘게 포장해서 학부모님들을 기쁘게 해 주면 좋겠다. 과일을 잘 깎아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라면,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건 '마인드'의 변화였다.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모두가 퇴사를 외칠 때 퇴사를 하지 말라고 외치던 저자.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던 저자는 무작정 퇴사하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토록 퇴사를 외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 수많은 싫은 점 중에 좋은 점. 나랑 맞지 않는 일 속에서 나랑 잘 맞는 일 찾기. 그 일을 찾아서 다음 커리어에 반영하라고 했었다. 나는 당시에 이 책을 읽을 때 놀랐다. 모두가 일하기 싫은 점만 찾을 때 그 싫은 것 중에서 좋은 것을 찾으려는 태도에 말이다. 그 태도는 결국 나와 잘 맞는 일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쌓는데 도움까지 주는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좋고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다.
쓸모없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가치를 찾는 것이 필요했다. 누군가 시켜서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도 필요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힘이 났다.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 그래 맞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지루하고 무의미하게만 보였던 일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일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봐야지.
내일은 조금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걱정이 사라지자 잠이 쏟아졌고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