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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Oct 17. 2022

점심에 진심인 사람 저뿐인가요?

점심만 기다립니다

'꼬르륵'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진다. 행여나 옆에 계신 선생님이 들었을까봐 배를 움켜잡는다. 부끄러움에 조금이라도 몸을 구부려 소리를 막아본다. 


'오늘 점심은 뭐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큰 이벤트는 점심이다. 점심은 조리사님이 만드시는데 사실 그렇게 맛있진 않다. 예전에 실습할 때 먹었던 밥은 진심으로 맛있었는데. 웬만하면 맛있다고 안 하는 내가 눈물을 흘리며 먹던 밥이었다. 벌써 1년이나 지났지만 이따금씩 그 밥이 생각난다.....

내 생에 그렇게 맛있는 밥을 매일 먹을 날이 또 올까? 조리사님 건강하시죠..? :( 보고 싶네요......

여기는 좀 다르다. 거기가 깔끔하고 잘 차려진 백반집 느낌이라면, 여기는 친숙한 동네 할머니 밥상 같달까. 특별하게 맛있진 않지만 소소하고 정겨운 맛이 있다.


보조교사로서 나는 각 반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밥을 퍼다 준다. 아이들 급식판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퍼다 주고 국그릇이 비어있으면 국도 가져다가 퍼다 준다. 아이들 밥이나 국을 퍼다 주고 있으면, 선생님들 그릇이 눈에 들어온다. 


'어? 밥 왜 이리 적게 드시지. 국이라도 퍼다 드려야겠다.' 


"어 저는 괜찮아요!"

"앗 넵..!"


'국도 안 드시네.. 반찬도 거의 안 드시는 것 같던데 왜 이리 적게 드시지.. 배 안 고프시려나..'


각 반을 모두 확인한 후에야 나는 우리 반에 가서 앉는다. 밥을 한가득 떠서 왔다. 김치는 많이 많이.

여기는 김치가 참 맛있어. 아삭하고 매콤한 데다가 신선해서 자꾸 손이 간다. 매운 양념 너머로 차가운 배추의 맛이 느껴진다. 그래 이 맛이야 흐흐.

김치를 먹으며 혼자 신이 나버렸다. 옆에 앉아계신 선생님을 힐끔 쳐다봤다. 드시는 게 영 시원치 않다. 반찬도 딸랑 김치 5조각에 계란말이 2개다. 반찬이 저것뿐인데 어떻게 밥을 먹지? 신기한 마음으로 밥 먹는 내내 힐끔 쳐다봤다. 내가 산처럼 쌓인 김치를 다 먹을 동안 선생님은 겨우 김치 조각을 1개 드셨다. 


'아 원래 잘 안 드시나 보구나.'


오늘은 계란말이도 나왔다. 우리 집에서는 계란말이에 보통 양파를 썰어 넣는데, 여기 계란말이는 알록달록하다. 자세히 보니 당근하고 야채가 들어가 있다. 초록색인 걸로 보아 대파? 가 들어간 듯해 보였다. 


'계란말이에서 당근 맛이 나니까 좀 색다르네. 식감도 좀 다른 것 같네. 당근 특유의 묵직한 아삭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나저나 이건 대파가 맞나?' 

계란말이 하나를 들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폈다. 옆에 계신 선생님께 당근 계란말이 얘기를 꺼내볼까 고민했지만, 선생님은 오늘의 반찬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표정으로 밥을 드시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네. 


어딘가 지쳐 보이는 선생님을 보다가 그의 그릇에 다시 시선이 갔다.

그릇에 겨우 계란말이 2개라니. 부족 하시진 않으실까? 부족하면 바로 더 채워드리려고 오른손은 이미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밥그릇이 깨끗해진 순간 마지막 반찬도 함께 없어졌다. 

아, 반찬을 적게 드시나 보다. 


'왜 다들 밥에 관심이 없으시지?!'

어딘가 울컥했다. 밥에 진심인 사람이 나뿐인 거야? 밥 먹으면서 오늘 나온 반찬에 대해서 얘기할 사람은 여기 없는 거야? 같이 이 맛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계란말이에 당근하고 대파 넣는 게 일반적인 거야?! 다들 밥도 적게 먹고 밥 먹으면서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밥 먹을 때 행복한 건 나뿐인 걸까?


나의 행복은 밥에 있는데, 다른 분들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저마다 행복을 느끼는 구간은 다르다지만, 

다양한 맛에 대해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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