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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Nov 10. 2021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10년차 영어학원장 일상

 강사 20년 차, 생계형 학원장 10년 차,

그리고 어쩌다 작가 2년 차.


학원가에 변화가 많은 11월, 어디에도 풀어놓지 않았던 학원장 일상을 남겨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책상_나의 최애. 다락서재


1.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원장님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카톡 첫 문장을 보는 순간가슴이 철렁!

"이따 퇴근하기 전 잠시 면담 요청합니다.” J선생님의 카톡이었다얼마 전부터 표정이 어두워서 마음에 걸렸는데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카톡을 읽고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일이 손에 안 잡힌다.
 
 '혹시 이런 이야기 일까?'


'원장님저 00일에 휴가를 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학원은 특성상 선생님이 빠지게 되면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기 어려우므로, 아파도 쉴 수 없는 업이긴 하다. 정 사정이 안되면 옆 선생님과 학원장이 나눠서 지도를 해야 하는 비상운영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라던가,     


'원장님민수학생과 은찬학생은 아무래도 분반을 해야 할 거 같아요수업에 너무 방해가 되요

시간대를 변경하던지 대책이 필요해요.‘

라든지... 뭐 이런 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퇴근 무렵 원장실로 찾아온 선생님.
 "원장님죄송하지만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사정이 생겨서요.“

라고 말한다     

'아... 역시.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그녀는 늦어도 한 달 안으로 새 선생님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말하는 거니 뭐라 할 수 없다. 뭐, 이 정도의 통보는 양반이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 되어 당황하게 하는 개념 없던 선생님에 비하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바뀌게 된다는 건 여러 가지 불편함이 생기는 변수인 건 맞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최대한 J선생님을 설득해 보려 시도한다.     


“아... 그렇군요...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11월 이에요. 중간에 선생님이 교체되면 아이들도 당황스럽고, 특히 학기 중간에 선생님이 바뀌는 상황에 대해 학부모들의 인식도 안 좋을까 봐 염려가 되는 건 사실이에요. 혹시 일을 그만두지 않고 유지할 방법이 없을까요. 한 번같이 고민해 보아요. “


 담임제로 운영되는 우리 학원은 학교와 같이 해가 바뀌거나학년이 바뀌는 시점이어야 무언가 변화가 자연스럽다그래서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면 최소한 내년 2월까지는 지속하기를 권하는 중인 거다.     

사실 J선생님의 퇴사 이야기는 벌써 두 번째이다앞서는 이사를 해서 출퇴근 거리가 배가 되었고또 유치원 픽업 시간에 자꾸 늦어진다며  육아맘으로서 고충을 이야기해서 퇴근 시간을 앞당겨 주었다그녀가 담당하는 반 학생들 중 늦게 등원하는 학생들은 학부모들의 양해를 구하고 이미 재배정 과정을 한 번 거쳤다그런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퇴사 이야기를 꺼내니, 나는 아마도 같은 이유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실은... 하얀이 동생이 생겼어요 원장님.“     

"... 아... 네“     

처음 면접 당시외동으로 아이 출산을 마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채용을 결심했었다

그런데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오신다... 그건 당연히 축하해 주어야 하지만원장의 입장에선 미안하게도 그 말이 먼저 나오지 않았다

곧 겨울 방학이고, 특강 준비도 해야 하는 시기인데... 지난 방학 특강의 반응이 좋아서 이번에도 J선생님에게 영문법 특강을 맡기려 했었는데, 모든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동시에 들던 중.      

’아차!‘     

임신 축하 인사가 늦어졌음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몇 초가 흐른 뒤였다나는 이내 미안해졌다짧은 순간강사 시절 원장님 앞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자괴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도 엄마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 임신 축하해요 선생님!! 그래요 선생님... 사정이 그러신 거라면 최대한 서둘러 후임을 알아볼게요. 

몸 잘 챙기시구요.“


 다음 날나는 후임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리고학부모 상담 전화를 돌렸다교체 사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났다정말 감사하게도 그 사정을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뭐 그렇게 선생님이 자주 바뀌냐며 은근히 컴플레인을 하시는 부모님께는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 전에는 선생님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으면 잠을 못 잤다솔직히 그만둔다는 선생님이 밉기도 했다‘기껏 가르쳐 놨더니 그만두고선 딴 데서 근무하던지, 본인이 차리든지 할 텐데 정말 괘씸하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렇다 해도 내가 막을 방법도 명분도 없다그런데 이것도 연차가 쌓이니 ‘더 좋은 선생님이 오시겠지’, ‘그래도 나를 통해 무언가 발전 하셨을테니 다행이네.’라며 마음을 고쳐먹는 여유도 생겼다학원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곳이지만이곳을 거쳐가는 선생님도 함께 성장하는 곳이 맞으니까     



선생님의 마지막 출근일

나는 선생님의 남은 급여와 퇴직금그리고 작은 선물까지 미리 챙겼다. ”나중에 꼭 하얀이랑 동생 데리고 놀러오세요 선생님.“이라는 당부를 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첫 이력서 심사 때 경력은 전무 했지만유난히 의욕 넘치고 배우려는 자세가 남달라 마음에 들었던 '일잘러선생님이 떠났다이제 한동안 새로운 선생님의 학원 적응과 철저한 인수인계에 신경을 또 곤두세워야 한다     


그리곤 생각해 본다아무리 들어도 편해지지 않는 말나의 심장을 !’하고 내려앉게 하는 말. ‘원장님, 드릴 말씀 있는데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이 말을 듣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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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장으로 산다는 건, 마음 수양이 절로 되는 일이었다. 풀어본 적 없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어른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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