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고난 여행 일기 3
삼백 파운드의 돈이 손에 쥐여졌다.
잃어버린 돈 440파운드보다 지금 수중에 생긴 이 삼백파운드가 열 배는 더 귀하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첫 런던의 식당으로 고기를 사 먹이고 싶었다. 어쩌면 런던에서 먹는 처음이자 마지막 만찬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랫 아이언이라는 도끼가 나온다는 가성비가 좋다는, 한국에서 미리 찜해 둔 런던 중심가 식당으로 향했다.점심 시간이 가까운 시간이라 사람이 많았고, 예약 없이 방문했기에 가장 바깥쪽의 두 사람이 앉기에도 좁은 좌석을 안내 받았지만 괜찮았다.
그런 보잘 것없는 불친절은 다시 충만해진 이 여행의 기분을 망칠 이유가 전혀 되지 못했다.
정말로 식사 도구로 칼이 아닌 도끼가 나왔다.
스테이크가 어떻게 나오길래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도끼를 주는 것일까?
그러나 고기는 딱 가격만큼만 나왔다.
정확히 아홉 조각. 도대체 도끼는 왜 주는 것일까.
이렇게 적은 양의 고기를 다 썰어서 주는데.
아이 혼자 먹기에도 양이 적어 보였고, 절반이 넘는 고기를 아이에게 주었다. 샐러드를 주로 먹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지금은 배고픔보다 이렇게 식당에 올 수 있다는 것과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 줄 수 있는 여행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뻤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다. 30파운드를 내니
돈을 내니 종업원이 의아함과 곤란함이 담긴 표정을 동시에 지어보인다.
"노 캐시"
"왓? 아이 해브 온리 캐시"
"위 돈 해브 체인지"
뭐라고?? 무슨 소리야. 식당에서 거스름돈이 없다니.
한 두 푼도 아니고 무려 4파운드가 없단다.
아니 이게 어떻게 구한 돈인데 거스름돈이 없다니, 말이 되나.
옆 가게에서라도 바꿔서 갖다 줄 법도 한데
여기는 런던이다.
아이도 상황을 다 알아채고 있다.
종업원도 내 눈치를 살피고, 나도 종업원에게 시선으로 거스름돈을 구해오라는 압박을 보낸다.
종업원이 돈지갑을 살피고 다른 직원과 이야기 해 보는 듯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우리는 거스름돈을 줄 수 없다"
"4파운드면 얼마야?" 아이가 묻는다.
"응 대략 6~7천원" 대답하는 나도 한숨이 나온다.
'이 여행은 얼마나 나를 더 힘들게 하려고 이러는지.
이 가난한 여행에서 한 번의 만찬조차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구나.' 싶었다. 5분여를 망설이고 망설여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그냥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면 모형 도끼를 주는데,
모형 도끼를 내면 아이스크림을 제공한다.
종업원은 미안했던지 도끼 모형을 받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그냥 주었다
혹시 다음에 또 이 식당을 지나면 우리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쿠폰이 생긴 셈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고, 저 도끼는 아이의 지갑속에서 기념품으로 남았다.
이 후 우리가 런던에서 식당에 간 일은 딱 한 번 더 있었지만 그 식당 역시 좌석에 앉아 휴대폰을 이용해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이었다.
휴대폰이 없고, 카드로 결제하지 못하면 햄버거 하나 먹기 어려운 런던으로 변했다.
땅콩을 카라멜 버무려 파는 단촐한 노점도 모두 카드로만 받았다. 현금을 맞춰 내지 않으면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고, 우리는 어딘가에 들어갈 때마다 현금이 되는지를 물어봐야 했다.
첫 런던여행에서 하지 못하고 돌아와 후회했던 것이 바로 뮤지컬 관람이었기에 송금 받은 돈으로 두 번째 한 일이 뮤지컬 표를 구하는 일이었다. 데이시트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섰고, 가장 저렴한 표는 아니었지만 75파운드 가량을 내고 티켓을 샀다.
아이는 "돈도 없는데 꼭 봐야 해?"라고 했지만,
"이거 안 하고 돌아가면 후회할거야" 라는 말로 지난 경험을 대신했다.
아이는 피곤과 시차적응으로 밀려오는, 아이 말대로 극강의 졸음음 참아가며 뮤지컬을 끝까지 관람했고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첫 여행이었기에 잠과의 사투에서 이겨내지 못했다. 아이는 보지 않았다면 후회되었을 것이고, 자기 생애 최고의 뮤지컬이었다며 런던의 뮤지컬을 극찬했다.
크리스틴이 부르는 think of me에서 감동했고
라울은 내가 생각한 존재보다 우락부락했고,
유령은 유령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착하게만 보였다.
압도하리만큼 거대한 샹들리에가 부서지듯 불꽃을 튀기며 관객석으로 날아들 때는 심장마저 철렁했다.
유령이 사라진 지하세계에서 마지막 커튼을 열어 젖힐때 없어진 크리스틴의 마네킹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와 늦은 밤 돌아오는 길은 내내 공연 이야기로 함께 들떴고 고난과 가난으로 힘든 이 여행이 행복하다 느꼈다. 저녁 거리를 사러 간 마트에서도 모두 카드 계산대 뿐. 현금을 내려면 이렇게 한참을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다행히 기름기 없는, 내 손바닥만한, 아일랜드 소고기 한 덩어리는 5천원을 넘지 않았고 과일 가게의 납작 복숭아 8개도 2천원 가량이면 살 수 있었다.
빵이랑 우유는 더할 나위 없이 저렴한 유럽 아닌가.
나쁘지 않았고 이제 여행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다시 모든 게 좋아졌다.
돈이 없어도 런던은 여행하기에 얼마나 좋은가.
이 모든 곳들이 모두 무료 입장이니 그저 줄만 잘 서면 입장 할 수 있었고 하루 교통비 21.5 파운드와 10파운드 정도의 마트 저녁장을 볼 비용만 있으면 충분했다.
아이와 내가 각각 한 장씩 사서 다닌 종이로 된 원데이 트레블 티켓은 말썽을 일으켰다.
내 표는 오전부터 종종 작동하지 않았고 그 때마다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개찰구를 드나들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귀찮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괜찮았다.
넓는 개찰구에서 아이가 표를 찍으면 아이와 함께 드나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무탈하게 나갈 줄 알았던 런던 여행의 진짜 고난은 다음 날 아침부터 생긴 조짐이 그 시작이었다.
철도 파업의 영향인지 카드가 아니면 원데이 트레블 티켓을 살 수 가 없었다. 지폐로 교통권 살 수 있는 기계는 막혀 있었고, 동전은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아 집어 넣은 동전을 그대로 토해냈다.
또한 종이로 된 원데이 트레블 티켓을 팔지 않았다.
이 날만 그랬는지 어쨌는지 종이로 된 교통권을 아예 런던 전역에서 팔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기계 창구마다 흰색 A4 종이로 No sell papre ticket....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영어 문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저랬지 싶다. 길게 써 있었으나 종이 티켓은 팔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카드가 없다는 것으로 이렇게까지 서러움을 느껴야 하는 여행이라니.
아침부터 역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카드가 없으면 아예 다니지도 말라는 것인가.
결국 다시 큰 역으로 걸어가 지폐가 되는 기계를 맨 끝에서 찾아내 오이스터 카드를 직원의 도움으로 구매했다. 5파운드의 보증금을 내고 15파운드를 더해 20파운드짜리. 고백하자면 한 장만 구매해서 사흘을 다녔다.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최대치의 돈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다리가 꺽일 좌절을 안고 사흘째 런던 여행이 시작되었고 또 사흘 뒤면 아이와 함께 이 섬을 나가 다음 여행지인 벨기에 브뤼셀 - 브뤼헤를 거쳐 파리로 갈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 날 저녁까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