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전공하고 독서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누굴 가르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대학시절 내내 책보다는 연극을 더 많이 보았고, 그런 만큼 강의실보다는 대학로나 국립극단 공연장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글쓰기보다 ppt 제작에 훨씬 열성이었고, 역시 물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맘스터치에서 치킨 패티를 튀기고 커피숍에서 설거지통과 커피 머신과 블렌더 앞을 오가며 이제는 앉아서 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누군가 중학생 논술 과외를 할 생각 없냐고 물었다. 골반이 무너져내리기 직전이었고 당시 최저시급의 세 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이 ‘하필이면’의 순간인지, ‘놓쳤다면 후회했을 기회’인지, 우연인지, 숙명인지 확언할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 인생의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듯이.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학생과 학부모를 앞에 둔 내 입에서는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 중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 앞에 붙은 ‘독서논술’이라는 말이 여간 껄끄럽고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었다. 독서란 무엇인가, 논술을 왜 해야 하는가. 문창과생이었을 때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고민을 느닷없이 하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했다. 살고 싶어서. 끝내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그러나 나를 마주 보고 앉은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독서논술이 성적에 보탬이 되리라 믿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학부모에게 독서논술은 플러스알파의 영역이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둔 학부모에게는 심란함의 원인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들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얘기다.
학부모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히나요?”, “책 수준이나 글밥 양은 어떻게 되나요?”, “글쓰기는 4학년부터 시작하면 된다는데요?”, “『고리오 영감』같은 책은 안 읽히나요?(11세)”, “어휘 공부는 따로 안 시키나요?” 또 이런 말들을 보탰다. “저희 아이가 영유(영어 유치원) 출신이라 한글 책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9세)”, “ 책을 굉장히 좋아해서 『WHY』시리즈는 다 읽었어요.(13세)”, “분당 700자 정도 읽고, 네버랜드 클래식 쉽게 읽어요.(12세)”, “수학을 잘해서 뇌를 한 쪽으로만 쓰다보니까 국어는 좀 약한 것 같아요.(10세)” 나는 대답 대신 상담 파일에 메모를 하는척했다.
이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책을 좋아하여 지식을 많이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글을 쓰게 할 것.
책이 지식의 보고(寶庫)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지식을 얼마나 쌓았는지 어떻게 확인하지? 지식이 얼마만큼 쌓여야 충분한가? 글이 지식을 많이 쌓으면 이자가 붙듯 자동으로 딸려 나오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도 글 체계적으로 못 쓰는데요……. 다 돌려주고 싶은 말이었지만 꾹꾹 누르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러고는 낮에 삼킨 말들이 트림이 되어 나오도록 그냥 두었다. 이 수업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결정권을 가진 학부모와 나 사이에는 돈과 잡히지 않는 미래만이 존재했다. 정작 수업을 듣게 될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만한 틈새기라고는 없었다.
몇 십 명의 아이들이 나를 지나갔다. 몇 십 명의 아이들이 내 앞에 머물러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잘 참아 만나게 된 아이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게 이런 문장들을 곧잘 보여주었다.
- “책을 읽을 때 나는 상상을 한다. 어떤 날에는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조련사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꿈이 쌓인다.”
- “나는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바람을 한번 만져보기로 했다.”
- “내가 말대꾸를 하면 아빠까지 야단을 치신다. 난 그럴 때마다 ‘엄마도 맞는게 얼마나 아프고 속상한지 알아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를 같이 때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괜히 땅바닥만 발로 찬다.”
- “선생님이 횡단보도 건널 때 사고나지 말고 조심히 가라 그러고 횡단보도 중간으로 가라 그래요. 엄마도 똑같이 말해요. 저는 어차피 다 알고 있는데도요. 하지만 말해줘도 괜찮아요.”
- “산에서 캠핑을 해보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산에서 캠핑을 하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볼 수 있다. 별이 있다면 잠이 잘 올 거다. 매일 틀던 자장가 없이 단숨에 잠에 빠져들 거다.”
- “글을 쓰기 위해서 늘 나 자신과 싸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이 숨기려는 것을 꺼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일이다.”
내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어느 날, 아빠가 꿈을 꾸었다. 절벽의 동굴에서 하얀 토끼들이 끝없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게 내 태몽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끝에 습관처럼 “나중에 들으니까 자라서 교육자가 될 꿈이라더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줄 때면 토끼 꿈의 의미가 귓가로 메아리친다. 불현듯 예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