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TOR』(자크 마에스·리서 브라에커르스 지음, 심선영 옮김, 고트
그는 누워있다. 직접 사냥한 치타 가죽위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오래 바라왔던 치타 사냥에 성공한 바로 그날 밤, 꿈에는 친구를 잃고 슬피 우는 여러 마리의 치타들이 등장한다. 그 모습에 후회와 미안함을 느낀 빅토르는 치타들에게 친구를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미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카펫이 되어버린 치타를 무슨 수로 살려낸단 말인가?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무엇인가 하니 바로 그 자신이 치타가 되는 것이었다. 재고, 자르고, 꿰매어 한 마리의 치타가 된 빅토르는 그가 총을 겨눴던 숲에 가 눕는다. 가죽으로 남기 이전의 치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리에 쓰러진 모양 그대로. 다행히(?) 치타 무리는 빅토르를 친구로 반겨준다.
치타들과 함께 생활하며 빅토르는 자신이 치타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아, 빅토르! 네 발로 걷는 치타들 사이에서 이족보행을 하고, 치타들이 엎드려 쉴 때 습관인 듯 하늘을 향해 턱을 쳐들고 한쪽 다리를 꼬아 눕고, 모두가 한 발을 들고 오줌을 눌 때 두 발로 당당히 서서 볼일을 보고, 치타들이 자신의 혀로 털을 핥고 다듬는 와중에 물웅덩이 위에서 타월로 몸을 닦으며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믿는’ 이 인간을 정말 어찌하면 좋을는지!
어느 날 치타들끼리의 장난으로 그만 꼬리가 덜렁 떨어져버린 일로 빅토르는 정체를 들키고 만다. 그는 몰랐을까? 자신이 진짜 치타가 아니라는 사실이 언제고 들통나리란 것을. 애초부터 진정한 우정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알았고 몰랐고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빅토르가 이 문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만이다. 빅토르의 행위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만이 모두 내재되어 있다. 남을 속이는 것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남과 나, 어느 쪽이 더 속여먹기 쉬운 상대일까?
그야말로 ‘치타 밥’이 될 뻔한 빅토르는 통구이가 되기 직전에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다 꿈이었던 것이다. 빅토르는 더 이상 치타를 사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성찰은 과거에 붙잡힌 것이고 욕망은 미래를 향한 것이어서 빅토르는 오늘도 사냥을 나간다. 이번엔 얼룩말이다. 푸하하, 웃음이 터져나오려다 멈칫한다. 어? 이거 웃어도 되나? 이 장면에서야 비로소 빅토르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듯한 표정은 아니다. 갈 곳 몰라하는 눈동자(이때 빅토르의 눈은 삼백안이 아니라 흡사 사백안이다)는 묻는다. 어? 이거 이래도 되나?
답을 할 수 없다. 빅토르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동시에 내 두 눈동자도 흔들린다. 이 한심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하고 빅토르를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겉싸개의 빅토르가 취한 자세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한편 다시 보면 이렇게도 보인다. 다리를 꼬고, 한 손으로는 살짝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정면을 부러 외면하려는 것처럼. 그런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별 수 없는 인간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