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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17. 2023

당신 참 성실하시군요


당신 참 성실하시군요



보디빌딩을 접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내 몸은 제법 몸짱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몸무게가 47-8kg 정도였으니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변화는 그야말로 피부로 느껴졌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성실’이란 단어를 나와 연결시켰다. “참 성실하시네요.” 그냥 인사말에 불과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중 몇 번은 진심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자문하게 된다. 나는 성실한 사람인가.


‘정성스럽고 참되다’라는 사전적 정의에 국한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단어를 입 밖에 꺼낸 사람들의 저의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안에는 숨이 차고, 땀이 뻘뻘 나며, 안간힘 써도 마냥 버티기 힘든 그 훈련 과정을 어떻게 극복한 것인가 하는 의아함, 부러움, 시기, 때로는 운동을 자기 관리의 표상으로서 상대를 평가하는 절대적 지표처럼 여기려는 태도 같은 것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보디빌딩이 보통 사람의 보편적인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 성스러운 무언가로 성역화 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체력 관리, 건강 회복, 바디 프로필, 해변에서의 노출 등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기 싫은 운동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이 진정 성실한 사람이 아닐까. 운동으로 다져진 내 몸의 가시적인 성과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이미지를 쉽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내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극히 낮음에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끔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하루 종일 운동에 매진하는 것보다 힘든 잠꾸러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매일 지각과 싸운다. 나는 성실하다는 과찬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당신이 더 성실한 사람인 것 같은데요.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고 산다.


보디빌딩을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성실이라는 항목의 수치가 정량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면 학창시절의 나 역시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지금 운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열정적으로 게임을 했다. 하지만 그때 성실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인생에 더 크게 영향을 주었던 건 운동이 아니라 게임이었다. 앞으로 운동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약간의 공허함만 남을 뿐 무리 없이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당시에 게임이 없었더라면 나는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깊은 고독에 침전되고 말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성실이란 개념은 취향과 성향마저도 사회적 인정과 결부시키려는 잘못된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산물이다. 나를 보고 성실이란 단어를 내뱉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퇴근한 뒤 매일 두 시간씩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똑같이 그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오늘도 자문한다. 나는 성실한 사람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신 참 성실하시군요."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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