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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Apr 01. 2023

지알로 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


지알로 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


<사탄의 가면>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블랙 사바스>
<킬, 베이비... 킬!>
<블러드 베이>
<리사와 악마>


마리오 바바는 '지알로'라고 지칭되는, 화려한 비주얼과 잔혹한 서사를 다루는 이탈리아 호러 영화를 발명한 선구자이자 대부라고 할 수 있다(보통 히치콕의 영화를 패러디한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를 지알로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탈리아 호러뿐 아니라 호러 장르 자체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존 카펜터의 <할로윈>을 시작으로 1980-90년대 할리우드에서 성행했던 슬래셔 영화다. 슬래셔 영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히치콕의 <싸이코> 이후, 토브 후버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나오기 전, 마리오 바바는 <블러드 베이>를 통해 사람들을 난도질하는 익명의 연쇄살인마라는 슬래셔 영화의 기본 골격을 거의 완성하다시피 했다. <할로윈>에 이르러 보다 구체적인 컨벤션들, 이를테면 10대 아이들의 비행과 그에 대한 응징, 무분별한 섹스에 대한 처벌 등이 첨가되었지만, 슬래셔 영화의 본질이 '익명의 연쇄살인마', 그리고 '난도질'에 있다는 점에서 <블러드 베이>는 슬래셔 영화의 초석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는 어려운 제작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꿋꿋이 확립해 나간 작가였다. 저돌적인 카메라 워크와 적극적인 줌 인/아웃은 그의 특기였는데, 전자는 인간 심리의 깊은 풍경을 보여주는 내면적 카메라로 기능하며 포악한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후자는 욕망의 대상 혹은 그것의 피해자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를 탁월하게 축조하였다. 또한 여러 겹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트랜지션과 인물의 흐릿한 시점 쇼트를 통해 모호해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현하곤 했으며, 동시에 이와 정반대 지점에서 혼령과 뱀파이어, 살인자 캐릭터 등을 암시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직접 화면에 소환함으로써 호러 영화의 아이콘들을 일차원적으로 불쑥 제시하는 대담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공포스러운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존재가 된 이유이다. 살인마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같은 영화도 있지만 대개 마리오 바바는 공포에 대한 미스터리보다 그것이 인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불안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일종의 작은 반전처럼 심어놓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비극 안에 속해 있는 인물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장소에 죽음이 잠재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때 죽음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인간 심연의 두 가지 감정이라 할 수 있는 두려움과 사랑이다. 이 세계에서 악령들은 대개 직접 피를 묻히기보다 상대를 조종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하는데, 그 대상은 대부분 이미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 자신을 살해하는 방식의 죽음은 죽음 자체보다 그것이 자아내는 공포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실감토록 한다. 반대로 악령이나 뱀파이어들은 대개 대상을 사랑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 살인을 저지른다. 예컨대, <블랙 사바스>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여자 주인공 스덴카는 사랑하는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특징인 뱀파이어가 되어 그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 블라디미르의 목을 문다. 그녀의 가족들은 블라디미르에 어떠한 애정도 없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에 유일하게 그의 목을 물 수 있다. 블라디미르는 그녀가 뱀파이어로 변했음을 눈치 채지만,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목을 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처럼 마리오 바바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두려워서 죽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죽거나, 죽인다.


(카메라 감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카메라 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마리오 바바는 그 이력이 보여주듯 촬영에 일가견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촬영을 도맡기도 한 그는 영국의 고딕풍 배경을 바탕으로 강렬한 콘트라스트와 건조하면서도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하여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탁월하게 조장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또한, 먼지나 서리가 낀 거울 혹은 거미줄 같은 반투명한 물체 너머에 악령의 서늘한 얼굴 같은 소름끼치는 이미지를 배치하고, 그곳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주체의 불길한 시점 쇼트를 활용하면서 살떨리는 공포감을 만들어내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들처럼 거대한 그림자를 활용하여 인물의 위압감을 표현하는 것도 그의 돋보이는 시각 스타일 중 하나다. <킬, 베이비... 킬!>에서는 배경과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을 하나의 정물화처럼 담아 마치 주인공이 침범하지 말아야 할 정지된 시공간에 움직이는 이물질이 되어 침투한 것 같은 괴이한 인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영화는 여타 호러 영화들에 비해 그리 잔혹한 편은 아니다. 그는 대개 폭력의 결과만 짤막하게 보여주거나, 아예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폭력의 표면을 외화면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또한 지알로 영화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밀도가 낮은 서사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러한 온순한 폭력성과 느슨한 서사 전개는 지금 관객이 보기에는 다소 시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만, 서사적인 측면에서 마리오 바바는 다리오 아르젠토를 비롯한 다른 지알로 감독들에 비해 인과성과 명확한 주제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감독이다. 때문에 지알로 영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리오 바바의 작품으로 입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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