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문화가 지닌 '폭력성'의 실체
지난 10월 인기 온라인 게임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의 세계대회(이하 롤드컵)가 개최되었다.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는 롤드컵을 시청한 누적 시청자수가 3억 3천만을 돌파했다고 공표했다. 이는 지난 2014시즌 의 기록을 갱신한 것이었다. 위의 사례는 단순히 소수의 마니아 계층이 게임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문화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에 앞서 2014년에 부산에서 열렸던 롤챔스(리그오브레전드의 국내대회)의 시청자수 또한 약 130만 명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문화가 단순히 직접 플레이하는 1차원적인 대결 방식을 넘어서 게임으로 부터 파생된 각종 문화컨텐츠들을 체험하고 다 같이 즐기는 축제수준으로 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사실 국내에 게임문화가 보편화된 것은 최근 15년 사이, 그러니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PC와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을 중심으로 전파된 PC / 온라인게임은 많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으며 하나의 유흥문화로 자리 잡았고 E-sports라는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2014년 기준 온라인게임의 매출액은 약 5조원. 추가적으로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인해 급부상한 플랫폼인 모바일게임 시장의 매출은 약 3조에 다다른다. 이는 게임이 단순히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넘어서 산업적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젠 게임을 제외하고 각종 문화현상이나 사회적 이슈들을 논하는 것이 힘들만큼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했다.
사람들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으니까. 이 재미란 다름 아닌 현실에서는 느끼고 경험하고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을 현실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증폭된다. 게임 속에서는 적어도 현실보다 더 많은 자유와 능력이 부여되고, 현실과 비교하여 조금 모자란 노력으로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가 있다. 최고가 될 수 있고, 때론 가슴속에 간직해오기만 했던 일탈을 할 수도 있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무한한 자유, 이것이 게임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즉, 게임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며 우리의 상상을 무한정 실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매스미디어는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사례로 몇 년 전 뉴스에 등장했던 것이 '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뉴스에서는 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PC방에서 게임 중인 학생들의 컴퓨터 전원을 예고도 없이 꺼버렸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 PC방 내부에 혼돈과 공포를 가져왔다. 어떻게든 게임의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기획된 이 무리한 실험은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면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게임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시도는 이것뿐만이 아니고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당장 유명 포털사이트에 접속하여 '게임의 폭력성'을 검색해 보시라. 게임이 지닌 중독성과 폭력성 그리고 과거 뉴스에서는 8살 아이가 게임 후 총격살해를 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까지 등장한다. 이쯤 되면 사실상 게임은 악의축이다. 자라나는 건전한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간단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규제'라는 이름의 마법이요 그로인해 등장한 것이 바로 '셧다운제'이다.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작된 이 법에 따르면,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할 수 가없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 논리는 간단하다.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막기 위함이다.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법안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수면에서 그친 것은 게임을 폭력적 현상들의 원인으로 묘사해온 언론의 역할과 여전히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다. 때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유희의 수단으로써 게임을 즐길 자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게임을 하지 않으면 학업에 도움이 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마치 '차라리 잘됐네'하면서 말이다.
셧다운제와 같은 게임에 대한 규제는 개인의 자율권 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게임산업전반이 발전 할 수 있는 원동력마저 훼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게임 산업이 지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우선 폭 넓은 수요층이 존재하며 가상세계라는 특성상 무한한 컨텐츠의 생산이 가능하다. 이 컨텐츠를 통해 재창출되는 2차 컨텐츠들, 예를 들어 게임속 캐릭터를 형상화한 피규어나 게임속 스토리를 소설, 영화화한 작품 등은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게임 산업이 가진 지배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각종논리로 게임 산업의 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내의 게임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게임문화가 정말로 폭력성의 원천이라면 정상적인 해결방식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교육을 시행하고 혹은 게임에 중독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자체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이 유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대의 게임문화가 이 유희를 얻을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보편화되어있고 뛰어난 접근성과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게임은 인간의 삶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더 이상 배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으로 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게임을 계속해서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매스미디어는 게임문화를 '급이 낮은 폭력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혁신을 강조하고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여전히 학생들이 게임에 관심을 갖고 하는 것은 그들의 본분에 어긋난 행위로서 간주된다.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게임은 중독성이 강하고 폭력적이라는 이유에서 더욱 더 집중적인 공격과 규제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게임이 학업에 가장 직접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때문인듯 하다.
청소년들이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 사태를 보라. 어찌 보면 그들에게 진정으로 열광하고 빠질 수 있는 분야가 오직 게임뿐일 수도 있다. 이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게임이 '나쁜것'이라서가 아니라 게임이외에 그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표출하고 자유로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폭력성은 청소년들이 게임을 접하기 이전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즉, 폭력성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삶과 그리고 그 삶을 구속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대한 저항에서 부터 시작된다. 이를 오직 '게임 때문에'라고 규정하는 것은 분명 타당하지 않은 행동이다.
게임문화에 대한 틈새 없는 억압과 규제는 오히려 폭력성을 낳을 것이고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폭력이다. 셧다운제는 게임에 대한 극단적인식이 얼마나 대중들 사이에 만연해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독성과 폭력성은 어느 분야에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그 성질들이 게임이 지닌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부정성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재단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오히려 게임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채널이며 그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 그 자체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주로 하는 얘기 중 하나는 평소 취미나 특기에 관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취미가 뭐에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게임'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골프'라고 대답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와 달리 게임분야는 접근성이 크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전문성이 결여된 것처럼 간주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과거부터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은 늘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비하하는 단어 또한 만연하여 게이머들이 종종 고충을 토로하곤 했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사실 그 분야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게임 산업의 긍정성이 강조되고 이를 넘어 사회전반에서 제대로 된 문화컨텐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이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인식은 우리 인간은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아서 24시간 7일내내 바삐 움직이는 것만이 인간의 역할과 모습이 아니다. 때론 현실을 잠시 놓아놓고 고통을 잊은 채 즐기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게임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놀이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산업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수단이며 나아가 문화인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서서히 개선되어 하루빨리 게임이 하나의 '건전한' 문화컨텐츠로 인정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