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잊고 살았던 긴장감
#1 대학에 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적당한 서른 한 살에 청소년 교육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직장을 다니며 대강대강 하면 쉽게 졸업이 될 줄 알았지만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교육의 현장, 바로 학원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매일 단어를 외우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과연 나는 과거에 그러했는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얼버무림이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가여워졌다. 나는 변했다. 더 이상 아이들을 쥐락펴락하며 성적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잘 부모들이 좋아하는 잘 나가는 강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딸은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1년 청소년 교육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2 시험기간
학교라는 곳은 통상 일년에 네 번 정도의 정기고사를 본다. 매 학기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본다. 학원에서 영어 강사인 나는 시험 기간이 되면 수업 시수가 두배 가까이 늘어난다. 이유는 각 학교들이 쓰고 있는 영어 교과서가 달라서 교과서 갯수만큼 반을 개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엔 고3들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교과서 아닌 교과서, 바로 EBS연계교재에서 시험이 출제 되기 때문이다. 굳이 반을 갈라 시수를 늘리지 않아도 시험 대비가 가능하다. 여하튼, 그렇게 늘어난 수업에 또 수업 준비에 (교과서를 보고 분석 가공하여 아이들에게 주어도 이 놈들이 소화할까 말까 하다.) 대학에서 보는 나의 중간고사까지... 첫 해 첫 학기의 절반은 F를 맞았다. 덕분에 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되었다. 시험 공부를 하는 나를 자각하게 되었을 때, 문득 학창시절이 떠 올랐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심정과 마음과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나태함과 나른함들을 기억해 냈다. 전보다 더 아이들이 측은해졌다.
#3 시험기간의 주문 : "시험기간엔 뭐든지 재미있어져라."
시험기간만 되면 이런 류의 글들이 제법 자주 보인다. "시험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이번 시험은 포기하고 다음 시험을 노린다",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재밌다.", "조금만 자고 하자고 했더닌 다음 날 아침이다." 등 재기발랄하고 재치 넘치고 그리고 공감되는 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는 지금도 나의 기말고사 기간이며 아직 세 과목의 시험이 남아 있다.) 아이들을 보며 한심할 때가 있었다.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분량의 과제를 해오지 않는 친구들 때문이다. 대부분 잊었버렸다는 둥, 어렵다는 둥, 다른 거 하다가 못 했다는 둥의 핑계를 대지만 결국 책을 펴 놓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았다는 이유가 가장 많다. 시험기간마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는 중학교 2학년 친구는 귀엽기까지 했다. 절대로 이해하고 용납하지 않았던 그들의 사유를 이제 너그러이 용납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시험을 준비하는 시험기간, 나의 모습을 보니 어린 친구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평소에 보지도 않던 영화는 왜 그렇게 재미있게 보이는 것이며, 우연히 지나다가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왜 그렇게 궁금한 것이며, 왜 그렇게 캠핑과 가족여행을 계획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그냥 시험기간의 주문인 것이다. "시험 공부 외에 모든 것은 재미있어져라."
#4 시험당일
신분증과 컴퓨터용 수성싸인펜과 봐도봐도 늘 새로운 책들을 들고 고사장으로 향한다. 패잔병의 모습이 따로 없다.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피치 못할 사고가 나서 며칠 입원하면 좋겠다.", "천재지변으로 시험이 연기되면 좋겠다.", "시험이 딱 이틀 뒤였으면 좋겠다.", "딱 공부한 데서만 문제가 나오면 좋겠다." 등 말도 안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고사장으로 들어간다. 앉아서 시험지를 받자마자 어디선가 책상을 뚫을 것만 같은 집중력이 생긴다. 아는 문제를 찾기 위해서다. 늘 그렇듯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문제들을 바라보며 한숨쉬고, 펜을 돌리며, 천장을 보고 또 한숨을 쉰다. 신기하게도 시험마지막 시간부터는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결심이 솓아난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음 주에 있는 시험은 꼭 잘 준비해야지... 라는 다짐들을 하며 시험을 마친다. 그렇지만 난 결코 시험 직후 다음 시험에 대해 걱정하거나 공부하지 않았다. 그냥 해방감을 느꼈다. 아이들도 그렇단다. 시험날 학교가 일찍 마치기 때문에 다음날 시험공부를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교문을 나온단다. 그러다 다른 반에 서식하고 있는 반가운 친구를 만나 시험시간의 회포를 풀러 PC방에 간단다. 그리고 영웅호걸들과 만나고 나면 어느새 학원 수업시간이 되더란다. 결국 똑같은 일상이 되어 버린다.
#5 결과를 기다리며
학창시절 우리집은 시험결과에 예민한 집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딱히 시험 점수 때문에 혼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점수가 몇 점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시험에서는 늘 엄청나게 구박을 받았다. 최선을 다한 시험에서는 별 부담없이 성적표를 내밀 수 있었음에도 성적표가 나오기까지 참 궁금하고 조마조마하다. 한과목 두과목 가채점 결과들이 발표될 때 어떤 것은 로또를 맞은 기분이고 어떤 것은 나라를 빼앗긴 것만큼 비참한 기분이고 또 어떤 것들은 아예 신경도 안쓰이는 것들이 있었다. 시험점수를 모두 알고나서야 마음이 진정이된다. 부모님께 성적표를 가져다드릴 면목이 생긴다고 해야하나... 부모님께 성적표를 가져다드릴 전략이 생긴다고 해야하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시험기간이고 또 지난 주말에 본 성적이 발표가 된 시점이다. 예전에 부모님 얼굴이 떠 올랐다면 이제는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조심스럽게 확인한 성적이 다행이도 세 과목 모두 패스이다. 아이들은 시험결과를 알고도 긴장한다. 부모님의 꾸중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실망하는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얼마나 선하고 착한 아이들인가... 시험이 끝나고 어느 정도 잘 봤는지 못봤는지 판가름이 나면 조리는 가슴을 안고도 신나게 논다. 축구도, 영화도, 시내구경도, 게임도, 낮잠도 정말 시험이 끝난 당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들로 변신한다. 이제 세 과목 시험만 더 치루면 대학도 졸업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느끼는 조바심이다. 그리고 해방감이다. 거의 잊고 살았던 긴장감을 지난 5년 매학기마다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아이들 입장에서 많은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남은 세과목도 잘 보기를 바라며 이제 글 쓰는 딴 짓도 잠시 미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