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들 딸들과 호흡하다

서른여덟. 수련회는 무리인가?

by 정용찬

나는 전도사다. 2011년부터 사역을 했으니 벌써 7년 차 전도사이다. 일년에 두번씩 어떤해에는 네번씩 수련회를 진행하였으니 이제 어느덧 수련회만 스무번가까이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수련회에 사역자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수련회는 평소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수련회 때에는 아이들에 대한 1급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우여곡절

이번 중등부 동계수련회는 나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다. 교회에서 부교역자의 일은 주로 담임목사님의 계획에 따라 결정되어지게 된다. 나는 사실 사역을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담임목사님의 권면과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2011년 첫해 내게 제안하신 부서와 사역은 고등부서였지만 원래 나가기로 했던 전도사가 나가지 않게됨으로 나는 여분의 부교역자가 되었고 방송영상과 4,5,6학년 초등부를 맡게 되었다.


사실 나는 중고등부 입시학원 경력이 좀 된다. 초등학생보다는 중고등학생이 더 수월하고 좋은데 초등학생이라니... 첫 해에는 너무 힘들었다. 학원에 있을 때 초등부에 가끔 보강을 들어가는 것 외에는 이 녀석들과 만난적이 별로 없다. 보강을 들어갈 때면 4학년들은 그럭저럭 사람같은데 5학년들은 너무도 다른 친구들이다. 중학교 2학년이 중2병이라 힘들다고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느낀 느낌으로는 5학년이 난이도 최상이다. 이들과는 대화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며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도 않는다. 배려라는 단어는 이들에게는 없는 개념이다. 물론 이들도 자기 맘에 들면 잘 따르고 마음을 준다. 그런데 그 마음을 얻기가 어렵다. 심하게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5학년들의 세상에는 모든 것이 불만이다. 어쩌면 불만을 찾기 위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녀석들과 5년을 보냈다.


시간을 함께 보내니 정이라는 것이 생겼다. 초등학생을 이해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이제 4,5,6학년 사역을 어떻게 할지 이해가 되던 해, 담임목사님은 내게 대안학교 세우는 사역을 맡기셨고 급기야 교육부서에서 빠져서 학교세우는 사역만을 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2016년 작년이다. 약 3년간 학교세우기 사역과 방송영상 사역, 그리고 교육부서 사역을 함께 하느라 힘들었었다. 그렇게 2년을 지내고 2016년 덜컥 서울에 있는 신대원을 매일매일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니 가뜩이나 바쁜 일정이 더욱 바빠졌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육부서를 내려 놓으라고 하셨고 나는 사랑하는 교육부서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교육부서에서 손을 놓자 주일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토요일마다 했던 결석자 심방... 금요일마다 나갔던 학교 앞 전도... 교회 주변을 돌면 만나는 많은 친구들... 모든 것이 눈에 밟혔다. 초등부에 기웃, 중등부에 고등부에 기웃기웃 해보지만 내게 사역을 함께 하자고 하는 부서는 없었다. 그러다가 중등부에 합류하게 되었고 사랑했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중등부 담당사역자는 50대 목사님이시다. 한국을 위해 일하시고 계시는 훌륭하신 목사님이시지만 육군대령 출신으로 청소년과 소통하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으신 분이시다. 결국 아이들로부터, 부모로부터, 교사들로부터 러브콜이 왔고 나는 너무 좋았지만 못이기는 척하며 중등부에 발을 하나 걸쳐두었다.



동계수련회를 디자인하다.

이렇게 다시 합류하게 된 교육부서, 중등부에서 2017년 동계수련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1년이지만 못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했었나보다. 줄어든 숫자에 대한 가슴아픔과 남아있는 친구들에 대한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졌으며 초등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품을 수 있었다. 낯설지 않은 진행, 낯설지 않은 프로그램 그리고 낯설지 않은 우리들. 우리는 익숙함 속에 수련회를 그려나갔다.


나는 아이들이 그리웠다. 초등부 때 가슴에 품고 기도했던 녀석들을 다시 만나니 좋았다. 아이들도 그랬나보다. 복고풍 수련회. 이 놈들이 초등부에 있을 때에 했던 놀이, 진행, 말씀, 프로그램... 아이들은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경험했고 나 또한 그리움 속에 사랑과 걱정을 경험했다. 자체 수련회지만 알찬 프로그램으로 유익했으며 뜨거운 집회로 은혜가 있었다. 목이 쉬어라 찬양하는 아이들, 눈물로 기도하는 아이들,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아이들, 예배가 끝났음에도 예배당에서 춤을 추며 뛰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했으며 감회가 매우 새로왔다. 그리고 감사했다.



병이 나다

수련회를 마치고 병이 났다. 예전에 비해 길지도 않은 일정이었고 힘들지도 않은 일정이었으나 오랜만에 필드에 서서 인지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아침에 출근을 하지 못할 만큼 몸이 힘들었다. 서른여덟이 이런 나이인건가? 어질어질 휘청휘청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난 수련회 앞뒤로 늘 잠을 잘 자지 않는다. 준비하느라 그리고 아이들 걱정하느라. 좋은 습관은 아닌 것을 안다. 그런데 아직은 마음이 불편하다. 교사들을 믿지 못하는 건지 그냥 그러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누워도 잠이 안오고 마지막 한 놈이 자야 잠이 온다. 그리고 기상은 제일 먼저 해야 된다. 그러니 늘 2-3시간만 자게 되는 것이다. 고쳐야지. 동역자들을 믿고 함께 해야함이 나의 숙제 이다.


아픈 와중에 회개하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게으르고 나태해서 체력관리를 잘 못한 것이 죄송했다. 런닝머신에 다시 오를 것을 결단해 본다.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며 체력을 튼튼히 해보리라. 멋진 몸매를 가지는 것은 꿈꾸지 않지만 수련회 따위는 거뜬히 진행할 수 있는 체력을 소유하리라. 튼튼한 노새와 같이 꾸역꾸역 지치지 않는 체력. 그래 체력은 하나님 나라의 국력이 아닐까 한다. 병으로 허비한 이틀. 결단과 결심으로 만회하리라 생각 해본다.


수련회 때 율동하는 친구들을 따라하는 모습을 부장집사님이 찍으셨다. 몸이 맘대로 움지기지 않는다.



에필로그 - 잃어버린 한 영혼

수련회 마지막 날 집회를 마치고 모두가 광신도가 되어 뛰며 찬양을 했다. 찬양을 마치고 몇몇은 게임을 몇몇은 모닥불 곁으로 삼삼오오 모일 무렵 한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세상에나. 이 무슨 일인가. 평화롭고 은혜로왔던 수련회 분위기는 발칵 뒤집혔다. 독특한 친구였다. 수련회를 마쳤으니 수련회장에서 집까지 걸어서 가면 아침에 도착할 것이라 여겨 짐을 싸서 출발한 것이다. 허술한 인원관리, 허술한 출입관리, 허술한 학생관리... 과연 여기가 한계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한 편에는 끊임없는 타협안이 떠오른다. 그 때 난 다른데 있었으니 선생님들 책임이야. 그 때 난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으며 다른 것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책임이 없어라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2017년 내가 중등부에 발을 들여 놓은 것과 아버지의 마음이 깨달아졌다. 그리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시간 남짓 걸어서 간 거리, 수련회장에서 약 5Km정도 떨어진 차도 변에 이녀석이 터덜터덜 캐리어를 들고 걷고 있었다. 이번 수련회의 최대 수혜자는 나다. 2017년 영혼을 찾아 나서는 일에 다시 부름받아 감사하다. 수련회를 마치며 해야할 일을 명확히 하시니 감사하다. 돌아온 친구들을 보시고 안심하시고 즐거워하실 아버지의 마음을 미리 느끼며 그렇게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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