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순조로운 하루를 시작하였다.
한 두어시간 전 미세하게 뒤틀리는 일들 빼고는 그야말로 Fine Day였다.
이른 오전부터 보고서를 쓰기위한 통화를 한다.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보고서를 채워 나갔다.
이렇게 만족스런 오전업무가 지났다.
아주 오랜만에 (표현이 좀 낯설지만) '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거기서 식사를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느낌은 아... 여기서부터...
좁은 공간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게
아주 정교하게 서로를 피하며 자전과 공전을 하는 일들의 좌표가
매우 미세하게 틀어지는 느낌이 났다.
그래 아마도 2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그 날 그 사건...
청소년 캠프에서 한 방을 썼던 친구들 사이의 불화
태도가 삐딱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캠프를 진행했던 책임자 바로 나.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고 좋게 끝났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그리고 2년 전보다 세배는 더 바빠진 나의 일상에 슬그머니 들어왔다.
물리적 업무보다 무겁고 힘든 것은 역시 감정적 업무...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러함은 아비된 나이기에 백번이해하지만...
그래... 이해하니까... 모질게 끊기가 힘든거지.
2년 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매듭지어야 한다.
점심을 먹으며 이미 가득찬 뱃속에, 나는 일을 또 집어 삼켰다.
오전에 써서 올린 보고서가 곧 자정이 다되는 지금까지 결재가 안났다.
피드백도 없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혹은 주말에 결재가 나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희한하게 오래 걸린다.
그냥... 나는 빨리 일이 매듭이 지어져서
머릿속 리소스를 한 곳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이 분주함을 만드는 느낌이다.
성격이 이상한 건가... 내가 성격이 급한가...
아니다... 분명 이것은 좌표 잃은 일들이
주말에 내게 감당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로 쏟아져 내릴 징조다.
오늘은 31일 말일이다.
힘든 시간을 지낼 이유가 없지만 돈이 돌지 않으니 말일이 힘들다.
들어와야 할 돈이 들어와서 나갈 돈이 나가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늘 들어올 돈은 제때 들어오지 않지만 나갈 돈은 제때 나가야 한다.
그래 1월 한 달 종이한 장 차이로 적자를 면하였으니 감사하자해도
마음이 썩 편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내일이 2월이기 때문이다.
재물과 인생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는데 은연 중에 의지하고 있었던 걸까?
자조적 질문에 자주적 대답을 해야만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나를 살포시 누른다.
이걸 벌써 7년 째 하고 있지만 실력의 발전도 이 일과 관계의 발전도 없다.
내게 있는 거의 모든 병의 근원지에 자리하고 있는 이것은 바로... 영.상.편.집.
이게 컨셉을 잡는 일이 관건인데 1주일 째 묵상하고 고민하여도...
기독교인인 나의 머리 속은 무념무상 해탈의 경지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없으나...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요구사항은 많고 많다.
하... 영상편집이라는게...
시간잡아 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방송국에 다니시는 분들은 나의 작업거리를 보고 웃겠지만...
노하우와 장비가 있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나의 노하우는 노가다... 이며 나의 장비는 삽인 것이다.
고작 3분 영상을 만들기 위해 드는 시간을 한번 살펴보자.
영상 컨셉을 잡는 시간... 은 사실 그때그때 다르니 패스...
하지만 정확한 오더가 내려오지 않는 한 매우 오래 걸리며...
뇌의 리소스를 잡아먹어 스트레스를 생산하는 광산이 된다.
어쨌든 컨셉이 잡혔다는 가정 하에..
에... 3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는 시간...
찾은 자료를 예쁘게 보정하고 편집하는 시간...
자료를 타임라인에 보기 좋게 늘어두는 시간...
각종 효과를 주어 영상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시간...
자막을 생각해 내는 시간...
자막을 입히는 시간...
영상을 렌더링 하는 시간...
셀프 피드백을 하고 다듬는 시간...
생리활동으로 화장실 가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숨쉬는 시간... 멍때리는 시간 등등...
합치면 고작 3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 대략 3~4시간이 소비가 된다.
물론 아주 순탄하게 진행되는 경우... 그러하다.
찾는 자료가 없거나 자료를 주기로 한 사람이 늦거나...
가장 짜증나는 경우인 컨셉이 바뀌거나 하지 않는...
그냥 머리에 완제품이 들어 있고 그것에 맞는 조립부품들을...
설명서에 기입한 대로 찾고 조립한다는 가정하에서 3~4시간...
장황하지만... 시작도 못한 일이고 이 일의 대드라인은...
금주 토요일이다.
컨셉도 못잡은 오늘이 아까 그 5층에서 먹은 식사시간 때문인 것 같다.
결재가 안나서 일이 진척이 없는 것도 아까 그 미세한 뒤틀림 때문인 것 같다.
돈이 돌지 않는 것도, 2년 전 사건을 다시 매듭지어야 하는 것도...
아까 그 이상한 느낌의 시간 때문인 것 같다.
아니.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어떤 미세한 미립자가 정교하게 잘 굴러가는 나의 일덩어리들을 건드린 것이면 좋겠다.
내 말은 내 일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오늘... 정말... 어딘가 허전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