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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l 09. 2020

실패, 두려움. 그 너머를 찾아서

실패, 두려움에 대한 나의 생각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설렘과 두려움. 긴장되는 순간이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시간들 속에서, 처음에 느꼈던 설렘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려움은 자신을 한 입에 삼킬 듯 돌진해 온다.


예전에 대학시절의 동아리 OB들과 함께 사회인 야구를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번아웃을 경험하고 뭔가 변화가 필요했던 나에게, 사회인 야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운동을 통해서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의 편안한 관계에 나를 집어넣음으로써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한동안은 주말이 기다려졌다. 신입생때 선배들이 사주던 밥과 술을 따라다니며 그저 즐겁게 웃었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즐겁게 시작하게 된 사회인 야구는, 그러나 서서히 나에게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엔, 형들이 나에게 3루수를 맡겼다. 어깨가 좋다는 이유였다. 나로서도 3루 강습 땅볼을 기가막히게 잡아 그대로 1루에 빨랫줄 송구를 하는 내 자신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딱 한 번. 그걸 성공하기도 했다.


3루와 유격수 사이로 쭉 뻗어오는 공을 향해 왼손의 글러브를 최대한 길게 뻗으며 달려가고 있었는데, 웬걸! 갑자기 글러브 끝에 공이 걸리며 묵직함이 느껴지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달려가는 힘을 이용해 몸을 빙글 돌리며 1루를 향해 공을 집어던졌고, 그 공은 1루 수비를 보는 한 선배의 멋진 캐치와 함께 심판의 아웃 선언으로 이어졌다. 난 그 수비 덕택에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받으며 한껏 우쭐해졌고, 그때부터 한동안 야구라는 것을 꽤나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때의 그 수비는 우연이었는지 난 수비에서 연속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타석에 들어가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타를 칠 수 없었다. 배트를 크게 휘두르기만 하던 나의 스윙은 날아오는 공의 반발력을 느껴보지 못한 채 허공만 가르고 있었다. 처음에 모두의 기대를 받던 나는 그렇게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수비 자리도 공이 잘 오지 않는 우익수로 옮겨가고 있었다.



처음에 느꼈던 즐거움은 어디로 갔을까? 주말에 사회인야구를 하러 가기 싫을 정도였다. 야구 글러브와 야구화를 사며 즐거워하던 처음의 설렘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에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두려운 순간들만 남아 있었다. 수비를 할 땐 상대 타자가 친 공이 나에게 오지 않기를 바랬다. 타석에 설 때는 상대 투수의 컨트롤이 흔들려 포볼로라도 1루로 나갔으면 하고 바랬다.


그렇게 편안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어느 날, 후배가 찍은 경기 영상에서 내가 타석에서 하는 행동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봐도 이건 아니었다. 프로 선수들 같은 스윙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 봐줄 만은 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내 스윙은 어정쩡하기 그지 없었다. 거기에 공이 맞는게 더 이상해 보였다.


그 영상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니, 적어도 그 전부터 나는 피상적으로나마 알고는 있었다. 나는 야구를 제대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실력이 나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회사생활이 힘들다 보니, 그저 피난처가 필요했었다. 그런 피난처에 가서까지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피난처에 가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아오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재미있게 놀다 와야 하는 취미생활이 나에게 또다른 스트레스를 준다면 이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 할까?’


이것이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이었다. 회사일에 지쳐 야구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싶었는데, 여기서 또다른 힘든 일을 만나게 된다면 그건 그만 두어야 맞았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나는 또다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했던 선후배들이 떠올랐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큰 기대를 받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전에 받았던 기대를 그런 식으로 져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면 그냥 도망가는 꼴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건 정말 싫었다.


약간의 고민을 했고, 결국 나는 뭔가 연습을 하기로 했다.



수비 연습은 나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수비의 경우에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우선, 멋지게 잡아내는 걸 포기했다. 그냥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공이 오면 알까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게 숙였다. 공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냥,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선에서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내 포인트는 타격이었다. 가장 연습하기 쉽고 결과도 확실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튜브나 방송에 나오는 타격 관련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매일 30여분 정도의 시간을 써서 하루 80~100개의 스윙 연습을 했다. 프로선수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은 양의 스윙에도, 회사에서 데스크잡만 했던 내 연약한 손가락에는 곧 물집이 터졌다. 대일밴드를 붙이고 빨간 목장갑을 끼고 스윙을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여기저기가 물집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누가 나에게 공을 던져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저 날아오는 공을 쳐내는 상상 만으로 몇주간 그렇게 스윙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 2주 정도를 연습하였을까? 그리고 나간 사회인 야구 리구 시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았다.


사실, 내가 친 공이 꽤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날카롭게 수비 옆을 파고들기도 했다. 단, 그 공들이 다 잡혔던 것이다. 다른 팀이었다면 안타가 되었을 공으로 보였다. 상대편이 꽤나 잘하는 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스윙을 보며 “허리가 제대로 돌아가네”라고 평가해 준 팀원들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뭔가 방향을 찾은 것 같았다. 다시 2주 정도의 연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은 야구장. 난 그날 2개의 3루타와 1개의 2루타를 쳤다. 사실, 상대 투수는 상당한 스피드를 가진 강속구 투수였다. 그걸 제대로 쳐낸 사람은 우리 팀에 2~3명 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단 4주 정도의 연습 만으로도 이렇게 바뀌는구나! 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야구가 재미있어 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내가 그때 야구를 통해 느꼈던 좌절과 스트레스. 그리고 그 이후 했던 연습. 이런 것들은 회사에서도 똑같이 경험했던 과정이었다. 학창시절에, 아니 내 인생에서 항상 일어나는 반복되는 패턴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난 뭐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뭔가를 실패하고 그걸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그걸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아니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나는 딱 노력한 만큼만 실력이 늘었다. 그걸 사회인 야구를 통해 한 번 더 경험한 것이었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패를 통해 느끼게 되는 두려움 역시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패와 그 두려움이 싫어서 [새로운 시작] 자체를 안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자신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고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방어막을 치지만, 결국 실패가 싫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긴, 누군들 안그러겠는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렇게 도망간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했던 대부분의 일들은 결국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나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시작이 문제였지 전진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일들이 훨씬 많았던 걸 생각하면, 실패를 피하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깨달음 이후, 나는 실패를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확히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 새로운 시작 이후 실패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는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계속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진하고 있다면 분명 맛있는 열매가 저 앞에 있다는 걸 난 이제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긴, 그 열매가 내가 원했던 열매와는 조금 다를 때도 많긴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인생이 아닐까? 실패를 거듭하며 찾아내는 건 결국 '자기 인생에 어울리는 지도'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변함 없이 새로운 실패를 꿈꾼다. 실패와 두려움 그 뒤에 올 맛난 열매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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