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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l 12. 2024

[제단글] 청소와 권력

- 앱 제시단어 : 화장실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화장실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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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 나는 아내의 명을 받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열심히 했다. 사랑하는 그녀가 해달라는 일을 내가 마다할 리가 없다. 하얀 줄눈에 들어간 보일듯 말듯 한 핑크빛 잔여물은 내가 보아도 그리 호감은 아니었다.


그런데, 꽤나 열심히 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혼이 났다.


"왜 이런 곳은 청소를 안한 거야?"


오잉? 분명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도, 내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녀에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보다. 수도꼭지 금속 부분의 틈새, 하수구 입구 근처의 틈새에 끼어들어간 지저분한 잔여물들, 변기 받침대 뒷부분에 낀 물자국들... 화장실 청소는 해도해도 계속 뭔가 끼고 있는 느낌이었다.


몇 번의 꾸지람 이후엔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레벨의 무언가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점점 화장실 청소 하기가 두려워졌다.

어느 순간, 그녀는 화장실 청소를 자신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녀는 화장실을 말 그대로 때빼고 광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그것도 매번. 나로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변화였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 전 그녀의 방은 이렇지 않았는데? ... 나로선 알 수 없는 여성의 세계였다.

그 이후부터, 나는 청소와 관련해서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 강박이라고 해도 좋다. 청소와 관련해서 또다시 내가 그녀에게 혼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돈을 모아서 꽤나 성능이 좋다는 로봇 청소기를 사버렸다. 백만원이 넘어가는 굉장히 비싼 청소기였지만, 그녀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나도 그 돈을 잘 썼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혼이 날 수도 있는 청소의 분야는... 나에겐 쥐약이다. 물론, 내가 너무 지저분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에 비하면 모자란다는 것이겠지. 턱없이...


하지만, 계속해서 나는 오늘도 혼이 난다.

"오빠, 오빠 방 저 한 켠 구석에 쌓아논 것들 좀 치우면 안돼?"


가끔은 진정으로 나도 그녀를 좀 혼내주고 싶다. 나도 인간이기에 쌓인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틈이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몇 개 없다.

그 모든 것을 다 오케이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돈을 잘 벌어오는 것 밖에 남아있지 않다. 아, 이 쓸데 없는 중년 남자여! 참으로 불쌍하도다.


그래도, 가끔은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럼...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거겠지? 하하하.


나는 이렇게 그녀의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살아간다. 아마, 이게 행복일거야. 하하하.


모든 남성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P.S. 오늘의 단어는 화장실이었습니다. 제 삶의 한 단면을 약간 희화시켜서 적어본 것이구요,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그렇지 저는 정말 행복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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